[신입기자 생존기] 보이지 않아도 보이는 것들 2

방송 이후 김남술, 김태연 씨를 다시 만나다

by 송승원 기자

시각장애인 이동권 보도 이후 도로를 관찰하는 습관이 생겼다. 점자 블록이 깨지지는 않았는지, 움푹 꺼진 곳은 없는지, 전동킥보드가 통행을 방해하고 있지는 않은지 살펴보기 위해서다.


그럴 때마다 시각장애인에게 도로는 너무 험난한 곳이라는 것을 느꼈다. 다음 보도에 참고하고자 그 모든 모습을 눈에 담아둔다.


어느 날도 그렇게 길을 보며 걷다 문득 김남술, 김태연 씨와 활동지원사님들이 생각났다. 황구연 활동지원사님에게 전화를 걸었다. 몇 차례 신호가 오가다 반가운 목소리가 들린다.


"기자님. 잘 지내셨어요? 지난번 방송 이후로 여기저기서 전화가 오더라고요. 관심 가져주셔서 감사해요."

"제가 더 감사하죠. 네 분 모두 많이 움직이시고 인터뷰까지 진행하시느라 고생 많으셨어요. 그래서 혹시 실례가 되지 않으면 네 분께 식사를 대접하고 싶은데 괜찮으실까요?"

네 분 모두 가능하다는 답을 받고 일정을 잡았다. 식당은 찾아본 뒤 알려주기로 했는데 장소를 정하는 데 꼬박 하루가 걸렸다.


처음에는 정갈한 한정식을 알아봤는데 생각해 보니 반찬이 너무 많으면 활동지원사님의 보조가 있어도 식사가 힘들 것 같았다. 전골류는 뜨거운 데다 국물이 흘릴 수도 있어 어려울 것으로 예상됐다.


시각장애인이 운영하는 유튜브를 찾아보니 이런 이유로 대체로 단품을 선호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비빔밥은 자주 접했을 것 같아 나름 색다른 규동을 대접하기로 했다.


처음 만났던 아파트 단지에서 네 분을 다시 만났다. 다들 따듯한 미소로 환영해 줬다. 식당은 도보로 5분 떨어진 곳에 있어 산책도 할 겸 천천히 걸어가기로 했다.


지난번에도 느꼈지만 김남술 씨와 활동지원사님은 체력이 정말 좋았다. 김태연 씨와 이현지 활동지원사님보다 2백 보는 앞서 있었다. 나는 후발대와 걸음을 맞춰 이동했다.


김태연 씨가 작고 예쁜 강아지와 함께 산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아침에는 강아지와 놀아주며 시간을 보내고 틈틈이 산책과 요가로 건강을 챙긴다. 친구들과 수다 떠는 것도 좋아한다.


시야에 제한이 있을 뿐 몸을 움직이고 소통하려는 의지는 확고했다. 이현지 활동지원사님이 옆에서 시각장애인을 위한 체육 및 여가 활동 지원이 부족하다고 하소연했다.


집에 머무르는 게 본인의 선택이라면 존중받아야 한다. 하지만 더 활동하고 싶어도 여건이 되지 않아 포기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루를 꼬박 고민해 고른 규동.


식당에 도착해 소고기 규동 다섯 그릇을 주문했다. 황구연 활동지원사님에게 규동을 선정하기까지의 우여곡절을 하소연하자 "기자님도 이제 이 세계에 한 발짝 들어오셨네요"라며 웃었다.


음식이 나오자 황구연 활동지원사님은 젓가락을 쥔 김남술 씨의 손을 잡고 음식 종류와 위치를 하나씩 설명했다.


"밥 위에 간장에 볶은 소고기랑 양파가 얹어져 있고 삶은 계란도 있어요. 바로 옆에 된장국이 있고요. 여기로 손을 뻗으면 양배추 샐러드랑 김치가 있어요. 천천히 드세요."

대화 주제가 김남술 씨의 삶으로 흘러갔다. 김남술 씨는 음악적 재능이 뛰어나다. 드럼과 색소폰, 피아노 등 다양한 악기를 다룰 줄 안다. 대금의 대가에게 사사를 받았을 정도로 음악에 진심이었다.


재능을 살려 악단에서 활동했지만 그 과정에서 많은 풍파를 겪었다고 한다. 당시에는 시각장애인에 대한 태도가 지금보다 훨씬 냉담했다. 듣는 내가 속이 아렸다.


김남술 씨는 지금은 좋은 사람들을 만나 즐겁게 생활하고 있다며 되려 나를 달래준다. 점자와 음성 지원 소설을 즐기기도 하고, 일본 대중가요와 중국 전통 음악을 감상하며 시간을 보낸다고 한다.


좋은 사람을 만나고 여유를 갖기까지 참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김남술 씨가 앞으로 더 행복하고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기를, 빈 반찬 그릇에 반찬을 채워주며 빌었다.


김남술 씨의 질투를 유발했던 쿠키.


식당 맞은편 카페로 이동했다. 커피와 쿠키를 주문했다. 김태연 씨의 손이 계속해서 비어 있는 게 눈에 밟혔다.


"김태연 선생님. 제가 쿠키 왼손 위에 올려드려도 괜찮을까요?"

그러자 김남술 씨가 장난스럽게 말을 걸었다.


"송 기자님. 나한테는 안 주고 김태연 씨한테만 쿠키 주고. 김태연 씨는 좋겠네."

"어유. 선생님은 드시고 계셔서 못 드렸죠. 이제 손이 비셨네. 더 맛있는 거 제가 오른손 위에 올려드릴게요."

지켜보던 황구연 활동지원사님이 김남술 씨에게 맛있는 점심에 쿠키까지 호화를 누린다며 오늘 생일 맞았다고 팔을 툭툭 쳤다. 그 모습이 재밌기도 하고 정겹기도 해서 피식 웃음이 나왔다.


김남술 씨와 김태연 씨가 일을 하러 갈 시간이 다 돼 다음을 또 기약하며 헤어졌다. 감사한 시간이었다. 회사로 돌아가는 길에 이 마음을 잊지 말아야겠다고 오랫동안 다짐했다.


그 마음을 두고두고 간직해 김남술 씨와 김태연 씨가 보이지 않아도 볼 수 있는 것이 무례와 불행이 아닌, 친절과 행복일 수 있도록 도움을 줄 수 있는 기자가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