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일 차
신조어는 지구상에서 반드시 사라져야 할 언어 중의 하나다. 아니다. 그건 언어라고 해선 안 된다. 모든 것에는 규칙이 있기 마련인데, 이 신조어는 가장 기본적인 틀을 무너뜨리고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신조(新造)'까지는 허용할 수 있다. 그게 바람직한 것에 의해 추동이 되었든 아니든 간에 최근에 새로 만들어진 건 명백하니까. 그러나 이 말도 안 되는 정체불명의 글자들에 감히 '어(語)'를 갖다 붙인다는 게 문제가 아닌가 싶다. 너무 고리타분하고 고지식한 소리라고 해도 할 수 없다. 우리말을 사랑하는 사람, 또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이 신조어를 멀리 해야 할 테다. 물론 사람마다 생각은 충분히 다를 수 있다.
일단은 불쾌하기 짝이 없으나 ‘신조어’라는 낱말을 그대로 쓰도록 하겠다. 내가 근무하는 곳이 학교다 보니 난 비교적 내 또래의 사람들에 비해 신조어를 많이 알고 있는 편이다. 이유는 단순하다. 모르고 있으면 내가 가르치는 아이들과 소통에 단절이 오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것도 내 변명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럴수록 올바른 언어생활을 위해 신조어를 쓰기보다는 아이들에게 정확한 우리말을 쓸 수 있게 해야 하기 때문이다.
평소에 나는 아이들과 소통을 잘하는 편이다. 그래서인지 그 빌어먹을 표현을 배우거나 굳이 외우지 않아도 자연스레 알게 된다. 어지간해서는 모르는 신조어가 없다고 생각했다. 우연히 여기저기를 기웃거리다 어떤 사람이 올려놓은 자료를 보게 됐다. 한국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MZ 신조어라는 글이었다. 그 글에선 총 11개의 낱말을 언급했다. 부차적인 설명에 노인들은 절대 모르는 낱말이라는 말까지 있어서 일부러 더 유심히 보게 되었다.
얼죽아, 플렉스, 중꺽마, TMI, 알 잘 딱 깔 센, 이왜진, 억텐, -며들다, 홀리몰리, 사바사, 고트(G.O.A.T)
2025년 11월에 게시된 글이었다. 그 말은 여기 있는 표현들 중에서 어떤 것들은 이미 유행이 지나갔거나 그새 새로운 표현들이 생겼다는 뜻이겠다. 신조어를 비교적 잘 알고 있는 나조차도 11개 중 8개밖에 모르고 있었다. 이왕 언급했으니 그 뜻도 한 번 적어보기로 하겠다.
얼죽아: ‘얼어 죽어도 아이스’의 줄임말, 차가운 음료를 선호하는 사람들을 뜻함
플렉스: 과시하거나 자랑하는 행위를 의미
중꺾마: ‘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의 줄임말, 포기하지 않는 정신을 강조한 말
TMI: ‘Too Much Information’의 줄임말, 과도한 정보를 의미
알잘딱깔센: ‘알아서 잘 딱 깔끔하게 센스 있게’의 줄임말, 상황에 맞게 센스 있게 처리하는 것을 뜻함
이왜진: ‘이게 왜 진짜야’의 줄임말, 뜻밖의 상황에 대한 놀라움을 표현함
억텐: ‘억지 텐션’의 줄임말, 과장된 텐션이나 에너지를 의미함
-며들다: ‘스며들다’를 사람 혹은 상황에 응용하여 대입, 무언가에 서서히 빠져드는 것을 의미
홀리몰리: 미국에서 많이 사용하는 감탄사 Holy Moly에서 나온 단어, 놀라움이나 충격을 표현
사바사: ‘사람 By 사람’의 줄임말, 개인에 따라 다름을 뜻함
고트(G.O.A.T): ‘Greatest Of All Times’의 줄임말, 역대 최고를 의미함
자, 어떤가? 괜찮아 보이는가? 많은 사람들이 신조어를 쓰는 이유를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런데 여기에서 우리가 생각해 볼 점이 있다. 신조어를 쓰는 사람들과 쓰지 않는 사람들 중에 굳이 의미를 부여하자면 누가 더 올바른 언어생활을 하는 사람들일까? 말하나 마나 쓰지 않는 사람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어쩌면 기를 써가면서까지 이들 신조어를 익히려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마치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알게 된 신조어를 익히고, 또 상황에 맞게 사용할 수 있을 때 아이들로부터 꼰대가 아닌 신세대로 인정받을 수 있다고 착각하고 있는 나처럼 말이다.
사실 신조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은 대부분이 젊은 사람들이다. 그들만의 일종의 문화적 공유를 위해 쓰고 있는 것이다. 이때 어정쩡하게 나이가 든 우리 같은 사람들은 우리 고유의 가치를 견지하면 될 일이지만 좀처럼 그러기가 쉽지 않다. 그러기엔 어쩐 일인지 시대에 뒤처지는 것 같은 생각도 들고, 무엇보다도 저런 신조어를 모르고 지낸다는 게 한물 간 사람 즉 퇴물이라는 걸 스스로 인정하는 것 같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나이 든 티를 내고 싶지 않다는 것이겠다.
모르겠다. 문화적인 공유를 위해 굳이 써야겠다면 뭐라고 할 수 있겠는가? 어떤 언어를 쓰든 그건 개인의 자유기 때문이다. 다만 앞에서도 말했듯 최소한 글을 사랑하고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이 신조어를 배격하는 마음가짐 정도는 가지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