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즈상 수상자에게 배우는 배움의 목적
최근에 아주 인상깊게 읽은 책이 하나 있다.
사실 이공계인이라면 대부분이 읽어봤을 법한 도서이긴 한데 나는 이 책의 존재자체도 몰랐고 심지어 우리학교 교수님이 번역을 맡은 책인 것도 처음 알았다. 바로 그 유명한 히로나카 헤이스케의 학문의 즐거움.
배우는 것은 누구에게나 어느정도 고통을 수반한다. 때로는 머리가 터질 것같기도 하고 심지어 나는 중학생때 수학문제 한문제가 잘 안풀려 며칠을 끙끙대다가 울기까지 하였다. 그러다 너무 허무하게 풀려서 그랬던 자기 자신이 부끄러워졌던 적도 있다.
이렇게 부끄러운 경험은 나와같이 평범한 두뇌를 가진, 하지만 수학과 과학을 좋아하는사람에게만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였다. 수학문제 풀다가 울다니!
책을 읽다가 놀란 점은 수학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필즈상 수상자인 작가도 아주 평범한 나와 매우 비슷한 경험을 유년시절에 했다는 점이다. 히로나카는 중학교 시절 아주 독특한 교육철학을 갖고 있던 수학선생님 '타니가와 미사오'로부터 배운 일화를 설명한다. 그 선생님의 별명은 '탄젠트'. 별명부터가 삼각함수라니 아주 비범한 분이 아닐 수 없다. 그 분의 교육방식은 문제를 푸는 방법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문제를 푸는 과정의 발상을 배우도록 한다는 점이다. 작가는 이로부터 많은 것을 배웠다. 한번은 수학시험에서 혼자만 100점을 받았는데 아주 재밌는 점은 문제의 답을 틀렸는데도 그 점수였던 것이다. 답은 틀렸지만 발상이 훌륭했기 때문에 100점을 받은 것이다. 풀이과정을 아주 적합하게 떠올렸지만 계산실수 한번에 모든 점수를 잃는 대부분의 시험과는 크게 다르다.
헤이스케는 한번 그 선생님이 낸 문제를 일주일 동안의 고민으로 총 세가지 경우로 나누어서 풀었다.(일주일동안이나..?) 나 또한 안풀리는 문제는 늘어져라 잡고 있는 특성이 있는데 그렇기에 헤이스케에 공감하였다.
본론으로 들어와서 '우리는 왜 배우는가?' 에 대한 생각을 독자들도 해본적이 있는가? 좋은 성적을 받기 위해, 꿈을 이루기 위해, 주위에서 시켜서, 스펙을 쌓기 위해 다 좋은 답이다. 그러나 헤이스케는 그 본인도 완벽한 답을 알고있지는 않지만 오랜세월 깊은 배움의 길을 걸었던 경험을 비추어 다음과 같이 말한다.
... 그것은 지혜를 얻기 위해서가 아닐까? 즉 공부하는 과정에서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살아가는 데 있어 대단히 중요한 지혜라는 것이 만들어진다고 생각한다. 이 지혜가 만들어지는 한 공부한 것을 잊어버린다 하더라도 그 가치는 여전한 것이다. ...(중략)... 그러므로 많이 배우고 많이 잊어버리고, 다시 많이 배우라고 말하고 싶다.
책을 쭉 읽어나가며 의아했던 점은 헤이스케가 스스로 기억력이 별로 좋지 않다고 생각한다는 것이었고 그가 이러한 쉽게 발생하는 망각에 대해 의연한 태도를 갖고 있다는 점이었다.
인간의 두뇌는 기억한 것의 극히 일부분밖에 끄집어내지 못한다. 이것을 나는 인간만이 가지고 있는 '여유'라고 생각한다. 지혜라는 것은 사실 사람의 두뇌에 있는 이 여유에서 만들어진다.
배웠지만 다음날에 대부분 잊어버린 경험, 천재가 아니고서야 누구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게 지극히 당연한 것이고 그렇기에 오히려 지식보다 더 중요한 지혜라는 것이 생길 수 있다는 말이다. 또한 잊어버리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꾸준하게 반복하는 자세가 중요함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이어지는 내용은 배움에 있어 '노력'과 '끈기'의 중요성이다.
한 가지 일에서 성공을 이루기 위해서는 노력과 끈기가 필요하다. ... 집중적으로 일에 몰두하는 태도는 예술가에게는 좋은 방법일지 모르지만, 학자에게는 특별한 재능이 없는 한 적합한 방법이 아니다.
매우 놀란 대목 중 하나다. 평소에 '몰입', '플로우','딥 워크'같은 심리학적 개념에 대해 관심이 많았던 나이기에, 단기간에 고도로 몰입하고 성과를 내는 것을 좋다고 여기고 있었다. 그러나 적어도 배우는 사람에게는 한번에 확 집중하고 쉬고와 같은 기복있는 공부보다는 매일매일 아주 조금씩이더라도 '유연하게 지속하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고 헤이스케는 말한다.
다음은 내가 책을 다 읽고 든 생각을 정리한 것이다.
배움에 있어 '노력'이 가장 자연스러운 도구이다. 갑작스러운 공부, 급한 공부는 단기간에 보면 그럴듯 해보이지만 인간의 자연스러운 배움의 원천은 아니며 결국에는 '포기하지 않고 지속하는 것'이 가장 큰 무기이다.
조금 다른 얘기지만 재미있는 비유 하나가 생각나 이 얘기를 하고 글을 마칠까 한다. 일본은 우리보다 몇십년 앞서 고도압축성장을 경험했고 버블경제 또한 겪었다. 비록 버블이긴 했어도 자본이 모일때 발전한 그 지역의 인프라 및 기술은 남는다. 마찬가지로, 비록 우리가 배운것을 잊어버리더라도 그 과정에서 얻은 메타지식, 바로 '지혜'는 우리 머리속에 남는다.
정보가 넘쳐나는 시대에 우리의 진짜무기는 그 모든 정보를 하나하나 알고있는 게 아니라 깊이 있는 배움을 통해 얻은 지혜가 아닐까? 정보의 소음에 옅어져 가는 지혜의 가치를 당신 마음속에 간직하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