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를 좀 봐주세요
1Q84.
하루키에 살짝 지쳐 있어서 한동안 떨어져 있을 때였습니다.
드디어 전권이 나왔다곤 하는데 뭐, 당분간 안 보기로 했으니까.
그러든지 말든지.
그러곤 어느 날인가 최애 만화책 '요츠바랑' 신간 소식에 교보에 가게 됩니다. 무심히 둘러보다 한 곳에 시선이 닿자 마음이 내려앉습니다.
'1Q84' 한참을 그저 바라보다 조심스럽게 들어보았죠.
높이, 두께, 무게, 질감 그리고 가장 인상 깊었던 책등과 표지에 새겨진 제목의 서체, 권마다 다른 서체의 색과 거기에 맞춘 가름끈까지. '참 예쁘다. 이렇게 예쁜 책을 본 적이 있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죠.
확고한 존재감. 그냥 갖고 싶다. 내 소박한 책장에 꽂아보고 싶은 욕심에 마음이 급합니다.
어땠을까요. 그 아이 하나 앉혀놓았다고 더 이상 (제 눈에는) 소박하지 않은 책장이 된 것 같았죠. 그리고 손이 바빠집니다. 전체 배열을 다시 하기 시작합니다. 책의 높이로, 책등의 색감으로, 등글자의 서체로, 띠지의 높이로 이리 꼽고 저리 꼽았다가 다시 장르별로, 작가별로... 정리가 되겠습니까. 타협점이 생기고 혼란 속에도 자리가 잡힙니다. 달라진 것도 없는데 그저 예뻐서 뿌듯합니다.
저 날을 시작으로 마음이 시끄러우면 책장 정리를 합니다. 중심도 옮겨보고 키도 세워 보죠. 얼굴 한번 보고 등 한번 쓰다듬고 가름끈이 자리한 곳 한번 읽어주고 띠지도 정리합니다.
그리고 띠지에 촘촘히 적힌 작가의 마음 한번 읽고 편집자의 바람도 읽어 봅니다.
'손에 잡히고 눈에 들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구나.
네, 다행히 저에게 와주었습니다.'
글을 쓰고 짓는 것에 대해 배운 적이 없어 맞고 틀림은 모르나 나름의 규칙과 형식을 갖기 위해 노력을 해보고 있습니다. 비록 아마추어라 할지라도 나만의 규칙이 있으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죠. 물론 생각과 실천은 좀 다른 문제라 항상 엉망이 되곤 합니다만 꾸준히 애는 써봐야죠.
글감을 정했으면 꽤 애를 써서 제목부터 짓습니다.
표지가 없으니 제목이라도 예쁘게, 솔직히는 눈에 띄게 지으려는 욕심이고 부끄럽지만 속내를 제목에 담아 '저 이런 이야기도 괜찮을까요?'라고 말을 걸기 위해서겠죠.
이보다 정성을 좀 더 들이는 게 소제목이고요. 어처구니없지만 잘 전해질지 확신하기 힘든 마음의 8할을 먼저 고백하고 시작하는 샘입니다.
(혼자만 그렇다고 생각하는) 마음의 8할은 전했으니 생각을 담아 단어를 나열하여 그 마음을 설명하려고 다시 애를 씁니다. 네, 뜻대로 될 리가 없겠죠.
이렇게도 써보고 저렇게도 바꿔봤다가 문장을 들어내어 옮겨도 보고 마음에 들지 않아 되돌려 다시 읽어 봅니다. 그렇게 나열한 단어와 생각들이 제목으로 전한 속내에 대해 단 1할의 설명, 혹은 변명이 되었다면 마음속에 칭찬 도장하나를 꾹! 찍어줍니다.
참 잘했어요? 설마요! 찍힌 문구를 소리 내어 읽어봅니다.
"그나마 다행이네요!"
누가 읽기나 할까 걱정이 드는 것도 사실이지만 혹여라도 읽는다면 재미는 둘째치고 제대로 읽히기만 했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있습니다. 부족한 음식이어도 잘 차려놓으면 들여다는 볼 텐데 하는 아쉬움과 나름 차린다고 차려도 이게 최선일까 하는 의심은 운이 좋아 몇 년을 쓴다고 해도 쉬이 없어질 것 같진 않습니다.
애초에 부족한 음식을 잘 차려보겠다는 마음 자체가 틀린 걸 지도 모르고요.
음, 여기까지 생각하니 차라리 안심이 됩니다.
그래도 고민은 하고 있으니, 읽을 누군가를 생각하고 있다는 게 참, "그나마 다행입니다"
고민으로라도 정성 들여 감싸 보면 애쓴 마음이 조금은 보일까요.
다큐 속 어시스턴트가 입고 있던 티셔츠에 새겨진 문구가 생각나네요.
no sight but on sight
info.
다큐_ 「책 종이 가위」2020년
좋아하는 문장_"마음이란 건 정말 다양하니까요"
무서웠던 문장_"하지만 이게 최선일까요?"
epil.
눈과 귀가 즐거운 영화입니다.
그리고 아주 멋진 상상을 하게 하는 영화입니다.
음, 누군가의 손에 닿을 여러분의 책 표지 디자인을 상상해 보신 적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