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는 지어낸 이야기
햇살 좋은 휴일에 오랜만에 춘승과 낮술을 했습니다.
스티븐 킹에게 태비사가 있었듯이 (뭐, 그 정도는 아니어도) 언제나 응원과 조언을 아끼지 않는 몇 안 되는 든든한 조력자이죠.
맥주의 시원함과 풋콩 껍질의 짭짜름함에 기분이 좋아질 찰나,
훅, 질문이 들어옵니다.
"사실이라 치고, 각색은 있을 거잖아요?"
[오롯이 저의 시점이기에 완곡, 또는 왜곡된 표현도 있겠지만 짧은 대화를 옮겨 봅니다]
"각색 까지는 아니고 뭐라고 해야 할까.
일단 그 당시 내가 느낀 감정은 사실이고, 내 시점에서 그 사실을 인지했잖아요. 그러면 인지된 사실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지어요. 이걸 지어낸 이야기라 하면 지어낸 이야기가 맞고, 또 내가 지은 이야기도 맞고"
"그러니까, 지어낸 이야긴 거잖아요. 당신 시점에선 사실이어도 읽는 사람 관점에선 '설마?'가 생길 수도 있는 거고. 어떤 측면에선 의심도 할 수 있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내 말은 읽는 사람에 따라 어떻게 보일지에 대한 고민도 필요하지 않냐는 거예요"
"무슨 햇병아리한테 날고 있는 새의 고민을 물어봐요. 자기 말처럼 관점에 따라선 공감도 있고 반발도 있겠죠. 어떤 측면에선 의심도 할 거고. 그런데 일단 어떤 이야기든 쓰여야만 읽고 읽은 사람의 관점으로 판단을 하는 거잖아요. 아마 쓰여진 모든 이야기가 다 그렇지 않을까? 물론 신경이야 당연히 쓰죠. 고민도 하고. 근데 이야기를 생각하고 쓰는 모든 순간이 심사와 평가는 아니잖아요. 누가 생각하고 어떻게 쓰겠어"
"음, 좋아, 오케이. 그럼, 아예 소설 같은 걸 써보는 건 어떨까?"
"아니, 나도 쓰고 싶지 소설, 되겠어요? 아니, 난 그것보다 지금 막 생각난 건데요, 내가 지은 글에 나오는 자기의(춘승)의 존재는 과연 믿을까 하는 생각부터 드는데요. 오! 뭐야. 키리시마야? 진짜 춘승으로 이야기 한번 써볼까요?"
"그러니까. 내가 그래서 그러는 거예요. 내가 맞는데 읽으면 나 같지가 않아서 그래. 고민 좀 해봐요"
"아! 혹시 영화 '아무도 없는 곳' 봤어요?
보면 4명이 각자의 이야기를 하거든요. 그리고 4명의 이야기를 듣는 '창석'이라는 인물이 있어. 근데 이 창석은 4명의 이야기를 듣는 내내 의심도 신뢰도 공감도 아닌 모호한 안타까움만 보이거든요"
"알아요. 본거야. 모든 이야기가 창석 본인 얘기잖아요. 창석과 창석 주변의 이야기를 창석 주변의 시선과 관점으로 쓰여진 이야기? 난 그렇게 봤어요, 그 영화"
"딱, 그거 같아요. 지어낸 이야기도 관점에 따라 솔직한 고백이 되고 신기한 이야기도 털어내면 추모가 되고 그래서 잘 만들어진 이야기는 결국 믿게 되어 위로가 되는 그런 이야기. 아무도 없지만 이야기가 있어 위로가 되는. 그렇게 쓰여 가치가 있는 그런 이야기 한번 지어 보고 싶은 거죠"
"그땐 그렇고, 지금은 또 다르니까. 맥주 마시잖아요. 몇 잔 째야..."
"그러니까. 이런 이야기를 누가 읽고 믿겠냐고"
info.
영화_ 「아무도 없는 곳」 2020년
좋아하는 문장_"제가 방금 지어낸 이야기니까요"
기억나는 문장_"저도 뭔가 쓰는 걸 좋아하거든요"
epil.
만약 글을 짓는다면 아마 저보다 훨씬 잘 지을 양반입니다.
중간중간 욕도 많이 먹었지만 맥주 마시며 글을 갈무리하는 것도
꽤 재밌습니다.
tmi.
'키리시마'는 영화 '키리시마가 동아리 활동을 그만둔데'의
스토리상 주요 배역이긴 하나, 단 한 번도 등장하지 않는 캐릭터입니다. 정말 단 한 번도 나오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