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렸다고 말하는 두고 온 것들

영화_ 「창밖은 겨울 」 2022년

by 글짓는 날때

조금 성급했던 입춘이 지나고 다시 창밖은 겨울입니다.

지난 어느 계절보다 많은 글을 읽고 이야기를 들어서일까요.

벌써 2026년의 두 번째 달에 서있는 게 조금 낯선 느낌입니다.


유달리 마음 소란했던 12월과 1월을 보냈습니다.

처음엔 계절 탓이려니 생각했죠.

유독 마음을 소란스럽게 하는 글들이 눈에 들고

읽히는 이유가 뭘까 궁금헀습니다.


예를 들면 이런 이야기들입니다.

잊어버리고 잃어버린 것에 대한 후회와 아쉬움,

전하지 못한 말, 이루지 못한 소망,

그리고 상실한 것에 대한 이야기들.


마음은 소란스러우나 눈에 들어온 이상 열심히 읽어 봐야겠죠?

차분히 읽어보니 눈길이 가고 멈춰서 들을 수밖에 없겠더라고요.

네, 마치 나의 마음과 닮은, 나의 속내를 적은 듯한 이야기였습니다.

그저 이야기에 공명한 마음을 소란스럽다 생각한 거죠.


그리고 그 글들을 읽으며 새삼 알게 된 것도 있답니다.

간직하려는 마음만큼 잊으려는 마음도 적지 않다는 것과

간직하고 싶다고 혹은 잊고 싶다고 해서 그 또한 마음 대로 되지 않아

가끔 자신을 속이기도 한다는 것을요.

음, 이런 거예요.

잃어버린 것에 대해 묻는 이에게 이렇게 답하는 거죠.

"잃어버렸나 봐. 차마 버리지도 못했는데 차라리 다행이지 뭐"

그러곤 이내 울먹이며 속상해합니다.

"어디에 두었지? 분명 버리지 않았는데. 잊어버린 거 알면 속상해할 텐데"


그나마 쉽다고 믿었던 나를 속이는 일, 그러나 결코 속일 수 없는 마음.

버릴 수 없어 잃어버린 척할 수밖에 없는 안타까움과 상실한 것에 대한 그리움.

그런 마음들을 애써 감추지 않고 앞으로도 한참을 더 아프겠다고

솔직하게 고백하는 글들이었죠.


가끔은 미련하다는 생각도 들고 조금은 바보 같다는 생각에

이제 더 이상 안부를 묻지 않겠다고 다짐하던 어제와

여전히 안부를 물을 수 있어 다행인 오늘에 안도하는 일이

나의 일 임을, 상실한 사람의 당연한 일임을

그 소란함 속에서 다시 알게 되었고요.


이제 더 이상 마음이 소란스럽지 않습니다.

미련하다 바보 같다 생각도 들지 않고요.

내려놓은 아픔도 두고 온 슬픔도

분명 누군가가 나와 같이 마음에 담을 거니까요.

그리고 어느 날 그 누군가의 마음을 다시 나의 마음에 담겠죠.

나의 것은 아니지만 어떤 마음인지 이젠 아니까요.


그러니 걱정하지 마세요.

그곳에 두셨기에 마음에 담았습니다.

담긴 마음은 버려진 것도 상실한 것도 아닙니다.

나누어 담기고 그렇게 기억될 겁니다.

상상하신 것보다 많은 사람의 마음에

이미 담겼습니다.


영화 "창밖은 겨울" 中, 석우가 주은 MP3를 분실물로 접수하는 영애의 말.


#02_왜-안버렸다고-확신하세요_제가-아는사람거랑-굉장히-비슷해요.png 영화 "창밖은 겨울" 中 버린 게 아니고 두고 간 것이라고 믿는 석우


#06_버려진mp3를-듣는-영애.png 영화 "창밖은 겨울" 中 누군가 두고 간 찾지 않는 MP3를 듣는 영애




info.

영화_ 「창밖은 겨울 」 2022년

그럼에도 기억나는 대사_"버릴 수 있음 버리는 게, 못 버리는 것보다 낫지"


epil.두 번째 브런치 북을 엮은 후.

집착, 그 뒤에 오는 후회


집착 또는 아집이었다.

이렇게 읽어줬으면 하는 간절함에 대한 아집이 맞다.

어디에도 친절함은 없었다.


영화 속에서 드러난 나의 마음, 떠오른 생각들을 담아낸

20편의 글을 브런치 북으로 엮기로 하고 제목을 지어본다.

"영화관에서 마음을 묻다"

나의 마음을 묻든, 물어보던 마음을 묻든 나쁘진 안았다.


그리고 브러치북으로 엮기 전 글 하나하나를 보다 이런 생각이 들었다.

"친절하지 않다"


글을 열자마자 보이는 건

모호한 장면하나 모호한 제목 하나.

그 제목을 물고 있는 말꼬리(소제목) 하나.

어떤 영화를 보고 그런 생각까지 간 건지

혹은 어떤 마음으로 그 영화를 보게 된 건지.

글을 다 읽기 전엔 알 수가 없다.


글이라면 그래도 된다고 생각했다.

마음을 담고 싶었고 마음을 담았다고 생각했다.

역시 읽는 사람은 전혀 배려하지 않은 것이다.

나만 좋은 글이었다.

[그런 글을 읽어주셨다니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마음을 조금 덜고 친절함을 담자.

"읽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러나 소개된 영화들은 저의 글보다 좋답니다"

소젝목의 자리에 영상들의 제목을 대신 넣으려 했다.


그리고 든 생각 하나.

"그러고 싶지 않다"

이 무슨 변덕이란 말인가.


글을 쓰던 시간에 머물던 마음을 침해하기 싫다.

마음을 담아 지어 낸 제목과 그 마음을 이어준 소제목, 어느 것 하나 들어내기 싫다.

심지어 그 순간을 읽어주신 마음들 제목의 의미마저도 헤아려 주신 고마움을

침해하기 싫었다.


타협.

그 순간에 쓰인 글과 공유된 마음은 그 시간 그곳에 오롯이 두기로 한다.

대신 품을 들여 서랍에 옮겨 담고 마음 한 조각 덜어내고 친절을 믿기로 한다.

그리고 그 글들을 엮어 기어이 브런치 북을 발행한다.


그래서 마음이 편한가 하면 그렇지도 않다.

그대로 엮어 발행했어도 되지 않나 하는 후회가 생긴다.

이미 읽으신 분들껜 다시 들춰보게 하는 수고가 생겼을 것이고

처음 읽으시는 분들께도 내가 전하고자 했던 마음 역시

나의 이상한 고집으로 덜어진 것이다.


결국 그 누구에게도 친절하지 못했고

나에게도 후회가 되는 브런치 북을 발행하게 되었다.

그럼에도 찾아주시고 읽어주신 마음에

지울 수 없어 그대로 돌 수밖에 없음을

넓은 마음으로 헤아려 주시길 바랄 뿐이다.




이 브런치 북에 담긴 글들을 읽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하며 진심으로 죄송함을 말씀드리고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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