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의 의지ㅣ업(2009)

집값 어디까지 올라가는 거예요?

by 도쿄나무

※ 이 글은 영화와 사회에 대한 치명적인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미국에는 폭포 위에 지어진 유명한 집이 있다. 1991년 미국건축협회 최고 건축작품으로 선정되고 2019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도 등재된 `Fallingwater’가 바로 그것이다. 동양권에는 '낙수장'이라는 이름으로도 잘 알려진 펜실베이니아 주 숲 속의 이 건축물은 폭포와 집이 마치 처음부터 하나였던 것처럼 조화롭게 서서 방문객들을 반긴다.



영화의 주요 무대 또한 남아메리카 어딘가에 존재하는 가상의 거대한 폭포 ‘파라다이스 폭포’ 위이다. 풍선을 할아버지의 집이 바람을 타고 이곳까지 날아온 것이다. 그러나 이곳은 사람이 살 수 있는 공간이 아니다. 거센 비바람이나 뙤약볕을 직격으로 맞으며 집을 간신히 붙잡고 있어야 하는 곳이다. 폭포와 집은 서로 어우러지지 않을뿐더러 거대한 자연과 작은 집 한 채가 대조적이기까지 하다. 영화가 이러한 키 비주얼을 선택한 이유는 태곳적 자연의 신비를 간직하고 있을 것 같은 이곳의 이름에 이중적으로 암호화되어 있다. 바로 paradise + falls '낙원의 추락'이다.


영화의 개봉연도는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불리는 2008년 금융위기 직후이다. 은행의 무분별한 대출상품 판매로 인해 시장에 부동산과 돈이 과잉 공급됨에 따라 발생한 인플레이션이 원인이었다. 집이 풍선(버블)을 달고 낙원을 꿈꾸며 거대한 폭포 위에 올라갔고 폭포의 추락지점은 남미로 설정되어 있다. 경제위기 이후에 찾아올 극심한 빈부격차와 엘리트 중심의 구조, 만성적인 불안정으로 대표되는 남미화(Latin Americanization)에 대한 우려의 표현으로 볼 수 있다.



영화는 이 시기에 있었던 사회흐름과 인간군상을 은유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먼저 탐험가 찰스 먼츠는 당시 방만했던 은행가를 상징하는 인물이다. 사람들에게 모험을 종용하며 그 스스로를 선구자라고 인식한다. 이때쯤 미국에서 유행하던 말이 닌자론(NINJA Loan)이다. No Income, No Job, No Assets 고객의 어떤 것도 보지 않고 금융공학적 설계만으로 신용을 창출해 대출을 팔아 낸 것이다. 비판의 여론도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은행가들은 이것을 금융혁신이라고 자평했다.


주인공 칼과 엘리는 평범한 서민부부이다. 이들은 동물원의 풍선판매원과 조류사육사로 보인다. 경제적으로 무언가 일이 생길 때마다 저금통까지 깨야할 정도의 여건임에도 결혼과 동시에 내 집을 마련해 결혼생활을 시작했다. 그래도 이들은 운이 좋은 젊은 시절을 보냈다. 결혼하고 집을 구매한 후에 버블이 쌓이며 시장이 상승했기 때문이다. 이것은 부부가 결혼생활동안 쉬는 날이면 함께 오르던 초록잔디 언덕으로 표현된다.


우리나라를 포함한 동양권 나라들의 주식차트는 빨간색으로 상승, 파란색으로 하강을 표시한다. 이와 달리 미국을 포함한 서양권 나라에서는 초록색으로 상승, 빨간색으로 하강을 표시한다. 젊을 적 부부는 항상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상승하는 초록언덕을 올라간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엘리가 쓰러지던 날 오르던 언덕은 저녁노을로 빨갛게 물들어 있으며 이들의 상승도 그곳에서 멈추게 된다.



엘리를 떠나보내고 칼은 홀로 자신의 집 2층에서 일어나 계단 리프트를 타고 1층으로 내려와 주변 집들이 다 팔려 나가고 공사장이 되어버린 모습을 보여준다. 미국의 경제정책 기조가 인플레이션 억제를 위한 금리인상으로 급격하게 바뀌면서 대출상환이 불가능해진 서민들의 집이 모두 은행에 넘어갔고 대규모로 개발업자들에게 매각돼 재개발되었다


칼은 집을 통째로 풍선에 매달아 파라다이스 폭포로 도망친다. 그리고 그곳에서 모험가 찰스 먼츠의 사냥감인 새 케빈을 만난다. 케빈의 깃털색은 칼의 집에 매달린 풍선과 동일한 무지갯빛으로 케빈이 곧 버블을 상징화한 캐릭터임을 짐작할 수 있다. 은행이 대출을 팔아 거품을 만들고 다시 그 거품을 사냥해 집들을 회수해 갔음을 보여주는 하나의 장치다.



찰스 먼츠는 새 사냥에 직접 나서지 않고 그가 길들인 떠돌이 개들을 동원한다. 배우 앤드류 가필드가 주연을 맡았던 2014년 영화 '라스트 홈'(원제 99 Homes)에서 당시의 이러한 상황을 잘 그려내고 있다. 이 영화는 실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이후 수백만 명이 집을 잃었을 때 은행을 대신해 퇴거를 집행해 돈을 벌었던 ‘부동산 압류 전문업자’들의 이야기다. 이들의 일은 사회적으로 비난의 대상이 되었고 은행은 이를 방패 삼아 뒤에 숨었다.


찰스 먼츠와의 싸움을 끝낸 뒤 칼은 결국 집을 포함한 모든 것을 폭포 위에 놓아둔 채 꼬마 러셀과 비행선을 타고 돌아온다. 당시 집을 잃었던 사람들 중에는 자동차에서 생활해야 했던 사람들이 많았다. 이런 상황에서 칼과 러셀은 길거리에 앉아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지나가는 자동차를 세는 게임을 한다. 러셀은 파란색 차를 세고 칼은 빨간색 차를 센다. 파란색은 원래 칼의 색이다. 그가 어려서부터 항상 들고 다니던 풍선이 바로 파란색이며 블루칩 블루오션 등 긍정적인 경제용어에 사용되는 색이기도 하다. 이 파란색을 러셀에게 넘겨주는 것으로 칼의 세대의 행운이 다음 세대에도 전달되길 기원한다. 그리고 그 반대의 빨간색을 가져감으로써 기성세대가 짊어져야 할 책임의식 역시 잊지 말아야 함을 암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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