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2026학년도 수능일이다.
나는 작년 둘째 아들 입시를 끝으로 수능과 이별했는데,
수능일이 다가오니 차가운 공기 속 긴장되고,
불안했던 마음이 바람결에 실려 되살아난다.
수능을 보는 아이를 생각하며 마음 졸이며, 기도하고 있을
부모들 생각에 절로 감정 이입이 된다.
작년 이맘때, 수능이 끝나는 시각!
퇴근하며 수능 고사장인 고등학교를 지나가는데,
학부모들이 교문 앞에서 행여 아이가 끝나고 비 맞을까 우산을 들고
초조히 기다리는 광경을 보았다.
그것은 엄숙하면서도, 숭고한 의식같았다.
마지막까지 한 문제라도 틀리지 않았으면 하는 침묵의 기도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그러면서 수능 학부모인 나는 저들과 달리 너무 태평인 것 같아 웃음이 났다.
물론 나 또한 하루 종일 아이와 함께
1교시, 2교시, 3교시, 4교시마다 긴장하며 기도했었다.
하지만 시험이 끝난 후이니, 알아서 오겠지 했다.
-- 원체 우리 아들들은 마중간다고 해도 부담스러워 한다.
심지어 둘째는 수능 끝나고 연락도 안 됐다. 끝난 수능을 기뻐하며 PC방으로 가버렸다.
올해 입시에서 비로소 자유로워진 내가 아직 어색하다. 수능 보는 아이와 부모가 예사로 보이지 않는다. 나는 아직 대한민국 입시에서 정신적으로 벗어나지 못했나 보다.
그래서 그 얘기를 해 보려한다.
기억이 가물가물해지기 전에
두 아이를 키우며 겪은 네 번의 수능,
대치동 입시 탈출기를.
기나긴 입시 스토리를 한 편에 담기 어려울 수 있겠다. 입시의 어두운 터널을 지나는 이들에게 작은 위로가 됐으면 하는 마음으로 시작해본다.
그 전에 먼저, 대한민국 수능일에 기도시 한편 투척!
https://brunch.co.kr/@ba01c41b62ab4e3/84
대한민국에서 수능은 역대급이 아닌 적이 없고, 입시 제도의 희생양. 실험대상이 아닌 적이 없다. 하지만 유독 내가 경험한 수능이 가장 역대급 입시 제도의 희생양인 것만 같은 건 단지 느낌 때문은 아니다.
우선, 나는 97학번으로, 역대급 불수능이라는 시험을 경험했다.
이전 해에 수능이 변별력이 없다는 비판을 받아, 작정하고 어렵게 낸 시험이었다.
언니들과 자취를 했던 나는
수능날 새벽, 언니가 싸준 도시락을 들고
고사장까지 한번에 가는 버스가 없어 2번이나 갈아타야했다.
당시에도 부모님이 자가용으로 아이를 태워주기도 하고, 고사장 앞에서 엿을 붙이고 기도하는 부모들도 있었다.
그 땐 괜찮았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혼자 씩씩하게 고사장에 갔던 내가 짠하기도 하다.
1교시 국어는 무난히 넘어갔다.
2교시 수학은 역대급 어려운 시험이었는데, 나에겐 다행이었다. 원래도 풀 수 있는 문제는 정해져 있었는데 잘 하는 아이들도 어려운 문제를 풀지 못해 운이 좋았다.
나처럼 애매한 아이들은 시험이 어려우면 덕을 보기도 한다.
라떼만 해도, 4교시 수리영역2 과목으로 통합과학과 통합사회를 모두 봐야 했다.
전형적인 문과 성향의 나는 통합과학 중 생물을 제외하곤 모조리 틀렸다.
다행히 통합사회를 다 맞아, 점수를 만회할 수 있었다.
수능이 끝나고, 어둑어둑해진 길을 허탈한 마음으로 걸어오던 생각이 난다. 틀린 문제가 하도 많아 망쳤다는 의심을 떨칠 수 없었다.
심란한 마음에 버스 두번 갈아타기도 귀찮고, 생각도 정리할 겸 터덜터덜 걸어왔었다.
그 땐 교복을 입고 수능을 치뤘다.
유난히 매서웠던 수능이 끝난 저녁, 교복 치맛속을 파고들던 바람이 더 시리게 느껴졌다.
스마트폰도 없던 시절, 집에 와서야 뉴스를 접했다.
'역대급 불수능'
뉴스에서는 이전까지 보지 못했던 문제 유형으로 내가 방금 보고 온 수능이
역사상 최악의 불수능이었음을 보도하고 있었다.
만점이 단 한명도 없을 정도로 그 해 수능은 어려운 시험이었다.
특히 내가 무난히 넘어간 국어야말로 역사상 가장 어려운 국어 문제 중 하나로 꼽혔다.
지금 표준점수로 치면 국어 표점이 158점이라고 하니, 얼마나 어려웠는지 짐작이 간다.
수능이 시작된 지 몇년 되지 않아, 변변한 문제집도 없이
<성문기본영어>와 <수학의 정석>만으로 공부했던 그 때, 처음 접해본 문제에 당황했다.
뉴스를 보며, 어려운 시험을 그리 어렵지 않게 치룬 내가 유리할 수도 있겠다는 안도감이 들었다. 전형적인 문과 성향의 내가 잘 본 국어 덕택에 다른 아이들보다 유리한 점수를 얻었다.
지금 수능은 그간 쌓인 데이터로 인해 점점 어렵게 낼 수 밖에 없는 구조가 되고,
문제 유형을 많이 접해본 아이일수록 유리한 시험이 되었지만,
당시만 해도, 운이 크게 작용했지 않나 싶다.
수능을 잘 보더라도, 나에게 맞는 입시 전형을 알고 원서를 잘 써야 한다.
지금이야 실시간으로 지원자 명수까지 확인되는 세상이지만,
당시엔 직접 원서를 가지고 가서 마지막 눈치작전으로 원서를 넣으면
미달된 과 덕분에 좋은 대학에 합격하기도 했던 시절이었다.
두 아이 입시를 치뤄보니 원서 지원이야말로 입시의 꽃이다.
좋은 점수를 맞아도,
설사 좋은 점수가 아니더라도,
내게 맞는 유불리를 따져 최상의 결과물을 내는 게 입시의 핵심이다.
모든 것을 스스로 결정해야 했던 나는 고3 담임과의 상담 끝에
'너는 교대나 가라, 여자는 교대가 최고다.'라는 말과 함께
점수가 남아돌아 전액 장학금을 받으며 대학에 진학했다.
-- 내가 자식교육에 집착하게 된 건 아마 이 때의 결핍 때문이지 않나 싶다.
부모로서 내 자식만큼은 내가 겪은 결핍을 겪게 하고 싶지 않아,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교육 환경을 제공하려고 했던 것 같다.
적어도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선택의 순간을 함께 의논해 줄 사람이 있다는 게
위안이 되었으면 싶어 자식 교육에 매달리는 엄마가 된 게 아닌가 지금도 생각한다.
-- 교대에 가서 초등 교사가 된 게 나에게 최상의 선택이었는지도 모른다. 무엇이 최선이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큰아들은 고 3때 2024학년도 수능을 치뤘다.
2024학년도, 그러니까 2023년 11월 수능 또한 역대급이라 할만큼 국어와 수학이 어려운 시험이었다.
2009개정 교육과정에서 처음 치르는 문이과 통합의 실험 대상이었다.
여러모로 문과 아이들에게 불리했다.
날고 기는 의대 준비하는 이과 아이들과의 수학 등급 싸움에서 "문송합니다"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큰아들은 자신이 수학 머리가 없는 게 유전자 때문이라며, 아무리해도 안 되는 킬러 문항들에 좌절했었다.
- 나는 지금도 왜 문과와 이과가 통합해야 하는지, 머리 자체가 다른 아이들이 똑같이 평가받아야 하는지 의문이다. 문과와 이과는 생각 구조 자체가 다르다. 그만큼 잘 하는 분야도 다르다. 우리 나라 입시는 똑같은 잣대로 평가하여 문과 아이들을 밀어낸다. AI시대라 수학이 중요해졌다고 하지만, 그만큼 강조되는 게 인문학이다. 인문학 없는 기술 발전은 인류를 파멸로 이끌 것이다.
- 이과 아이들이 그들에게 맞는 과를 선택하면 아무 문제가 없다. 문제는 이과 아이들이 문과 대학으로 일단 대학 레벨을 높여 들어온다는 것이다. 경제, 경영학과 뿐 아니라 어문계열까지 이과 아이들의 문과 침공은 공공연한 일이다.(이들은 일단 대학 레벨을 높여 들어와 복수전공을 선택하거나, 재수, 삼수를 하기 위한 발판으로 삼는다.)
큰아들은 강남에 있는 남고를 다니며, 이미 내신에서도 수학 때문에 엄청난 피해를 보았다. 이과 비율이 80%이상인 학교에서 문과 아이가 이과 아이를 이기는 수학 성적을 맞기 어려웠고, 국어, 영어를 잘해도 수학 때문에 등급 평균이 크게 깎였다.
'문송합니다'는 괜한 말이 아니었다.
그 해, 입시에서 문과 아이들은 수시에서 수능 최저를 제대로 맞추지 못해, 1차를 합격하고도 떨어지는 결과들이 나왔다. 수시 뿐 아니라, 정시에서도 이과 중위권 아이들이 수학 점수를 무기로 문과 상위권 대학으로 밀려들었다.
지금도 기억난다. 큰아들 고3,
12월 29일 수시 발표 마지막 날,
가족과 함께 합격을 자축하기 위해 미리 예약해두었던 여수 콘도에서
예비 3번에서 끊긴 대학의 혹시나 모를 합격 전화를 기다리던 저녁 9시.
아무도 말하지 못하고 앉아있던 침묵 속,
피가 마르고 속이 타들어가던 그 때가 지금도 생생하다.
대학을 쉽게 보낸 부모들은 이 마음을 모를 것이다. 3년 내내 최선을 다해 노력해도 안 돼 좌절한 순간들, 저렇게 노력했으면 좀 붙여줘야 하는 게 아닌가 싶었던 순간들.
하지만 지나보니 그 시간들이 아이에게 꼭 필요했던 시간이 아니었나 싶다.
그리고 노력에 대한 보상은 반드시 찾아온다는 것 또한 알게 되었다.
- 2화에서 계속 -
오늘 수능 본 모든 학생들, 부모님들 정말 고생많으셨습니다.
수능이 끝이 아니라, 시작이죠.
이번 주부터 논술, 면접 등등 짜여진 수시 일정과 결과 발표,
정시 지원 등 피말리는 다음 단계가 아직 많네요.
오늘은 이미 끝난 시험으로 아쉬워하기보다,
수고한 아이를 다독이며
맛있는 치킨이라도 먹으며 위로해주시면 좋겠어요.
부모보다 더 힘든 건 아이일테니까요!!!
이 글을 본 모든 분들, 화이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