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송합니다!
'문송합니다'라는 말을 아시나요?
*문송합니다 : 문과라서 죄송합니다!
최근 몇 년간 입시판에 떠도는 말,
"문송합니다!"
얼마 전 엔비디아의 CEO 젠슨황이 코엑스에서 삼성전자 이재용 회장, 현대차 정의선 회장과 깐부치킨 회동을 했던 일이 있었다.
젠슨황은 우리 나라에 GPU 26만장을 통크게 선물(?)하겠다며,
한국과 AI 산업을 이끌어갈 것임을 천명했다.
AI 산업 발전을 위해 꼭 필요한 GPU는 사고 싶어도 물량이 없어 못 사는
엔비디아의 희소가치를 높여주는 물건이라고 한다.
(공짜도 아닌데 선물이라는 표현이 웃기다.)
요즘 하도 이슈가 되어 각종 기사와 영상을 찾아봐도 문과인 나는 도대체 반도 못 알아듣겠다. 이렇게 신산업과 문물에 뒤처지는 문과 입장에서 세상이 하도 빠르게 변하는 게 두렵기만 하다.
코스피 4천 시대, 주요 업종을 보면 AI, 제약, 바이오, 원전, 방산 이라고 하니
도대체 문과 성향을 타고난 아이들이 설 자리는 어디일까?
기업들은 앞다투어 이과형 인재를 원하고
이에 발맞춰 대학의 정원 수도 이과와 문과 차이가 3배 이상이다.
그야말로 문과 아이들이 설 자리가 없다.
'문송합니다'는 이러한 사회를 대변하는 현상임이 분명하다.
책을 사랑한 아이
큰아들은 어린 시절부터 책을 무척 좋아했다.
물론 아이 신생아때부터 고개만 돌리면 볼 수 있게 아이 양옆으로 책을 진열하고, 밤낮으로 목 아프게 읽어준 책에 집착한 엄마의 영향도 있었다.
하지만, 그보다는 남편과 내가 모두 부인할 수 없는 전형적인 문과 성향인지라
유전자는 어찌할 수 없는 것 같다.
큰아들은 초, 중, 고등학교 때도 늘 남는 시간엔 책을 끼고 있었다.
군대에 가서도 모처럼 시간이 남으면 그동안 못 읽었던 책을 즐겨 읽는다.
물론 주로 문학, 역사, 철학책 위주고, 이과 아이들처럼 전문적 지식을 쌓는 과학책이나 백과사전류는 좋아하지 않았다.
-- 아이들 성향은 아주 어린 시절부터 드러난다. 꽂혀진 책을 꺼내오는 것부터 아이의 선호도를 알 수 있다.
아들은 중학교 때 사춘기가 와서 2년 정도를 방황하다, 중3때부터 정신을 차리고 공부에 매진하기 시작했다.
남자아이들은 한번 펜을 잡으면 끝난다고 누가 그랬던가?
그렇게도 안 하던 공부에 흥미를 붙이더니, 중3 1학기 중간고사부터 2학기 말 기말고사까지
계단식 상승을 했다. 기말고사에서는 수학 성적을 제외하곤 전교권에 드는 점수를 기록할 정도였다.
- 이 때 수학을 했어야 했는데, 빠르게 성적을 향상시키고 싶은 마음에 국어, 영어, 사회에 집중했다. 당장의 상승보다 수학을 했어야 했다.
대치동 아이들은 주로 초6 때 고등학교 과정을 끝내는 게 대부분이다.
고등학교 들어가기 전까지 고등학교 수학을 7번은 반복해야 한다는 게 정설이다.
수학에 영 흥미가 없었던 아들은 중3이 되어서야 제대로 된 수학학원을 다니기 시작했다.
"네? 문이과 통합이라구요?"
내가 문이과 통합이라는 걸 알게된 건 고등학교 입시 설명회에서였다.
문이과 인원수, 학교 특성이 입시의 유불리에 중요하게 작용한다는 걸 그 때 알았다.
딱 2003년생 고1부터 2015개정교육과정이 적용되어, 문과와 이과가 수학 포함 모든 과목을 섞어서 등급을 매긴단다.
이과 비율이 80%인 강남 남고에서 문과 아이들은 이미 -3등급을 맞고 시작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중3 12월부터 3개월간 그간 안했던 고등학교 수학(상)을 마스터해야 했다.
대치동 수학학원들은 보통 방학에 텐투텐이라고 하여
오전 10시에 가서 오후10시까지 수학을 하는 반들이 많다.
돈도 돈이지만 말이 텐투텐이지,
아이들이 집중하는 시간은 정해져 있을텐데 그 오랜 시간을 앉아있는 것도 힘들 것이다.
수학을 좋아하는 아이들은 수학 1문제로 하루종일 고민도 하니까, 긴 시간이 아닐 수 있겠지만, 수학이 싫은 아들에게 이 시간은 그야말로 고문이 아닐 수 없었다.
그래도 워낙 의지가 강했기에, 고등학교 준비를 위한 방학을 알차게 보냈다.
그리하여 치룬 고등학교 첫 중간고사에서 그래도 방학 때 열심히 한 덕분이지
아들은 나쁘지 않은 수학 등급을 받았다.
워낙 엉덩이 힘으로 성실하게 공부하는 아이였다.
하지만, 그 이후 저축된 수학 선행이 전혀 없었던 아들은 매 시험마다 수학 때문에
아무리 타 과목을 잘 해도, 등급 평균이 깎였다.
수학 시험이 어렵기로 유명한 학교였다.
그렇게 견고한 상위권이 포진된 학교에서 처절하게 공부하는 아들을 보며,
대책없이 그저 다른 아이들이 잘 하면, 우리 아들도 잘할 거라는 믿음 하나로
이사왔던 나의 선택이 잘못이었나 생각했다. 아이한테 미안했다.
아직 고등학교 진학을 안한 학부모라면,
대치동 진출을 고민하고 있다면,
좀더 신중하게 여러 요소를 고민하면 좋겠다.
나와 같은 실수를 범하지 않도록...
피눈물 나는 수시러
수시를 준비하는 아이들은 고등학교 3년 내내, 잠시도 방심할 수가 없다.
시험이 끝나면 생기부를 채우기 위해 혼자 매 수업 시간,
하루종일 피피티 발표를 한 적도 있다고 한다.
고3 1학기 기말고사가 끝날 때까지, 수능 준비가 아닌 내신에 집중해야 한다.
그러고 나면 수능이 남아있다. 수시 중 어떤 대학은 수능 최저 점수를 맞춰야 한다.
수시 준비하는 아이들이 정시도 잘한다고 누가 그랬던가?
거의 7월 이후 시작된 수능 공부는 수시와는 문제 유형이 많이 다르다.
수능에 맞는 공부를 그제야 시작해야 한다.
물론 기본 개념은 잘 알고, 학습 수준은 높지만
수능은 수능만의 문제 푸는 스킬이 필요한 시험이다.
하다못해 시간을 재가며 풀지 않으면, 국어나 영어는 시간 배분이 잘못 되어 뒷문제를 못 푸는 경우도 생긴다.
- 나는 우리 나라 입시 제도에 문제가 매우 많다고 생각한다.
수시는 학교 생활을 제대로 하지 않을까봐 교사들이 선호하는 제도가 아닐까 한다.
그러니 일찌감치 수시를 포기한 아이들은 학교를 자퇴하고, 정시 공부에 매진하기도 한다.
최근 바뀐 입시는(우리 나라 입시는 어째 몇 년을 못가는 것 같다.)
학교 내신도 들어간다고 하니, '수시 포기러'도 없게 되었다.
정시는 내신과는 아예 다른 영역이라 수시 따로, 정시 따로 공부해야 한다.
정시는 당일의 시험 컨디션, 원서 지원 작전 등
실력과 별개로 그냥 전략과 운에 따라 희비가 교차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정시 과목을 학교에서 가르쳐 주는 곳은 잘 없다.
메가스터디나 대성마이맥 같은 온라인 학습사이트를 따로 결재하고,
커리큘럼을 따라 공부해야 한다.
중3, 고 3년을 학교에서 공부해도 따로 수능을 위한 커리큘럼을 해야 하는 시험이라면
문제가 있지 않나? 진짜 수학능력을 평가하는 시험일까?
아들 고 2때 담임선생님이 하시던 말씀이 생각난다.
"어머님, 수능은 아이큐 테스트에요. 인성 이런 거 상관 없어요. 그냥 정해진 시간에 문제만 잘 풀어내는 아이 선별하는 거에요. 저는 훈이처럼 인성도 훌륭하고, 학습 능력, 태도 다 완벽한 아이가
서울대 가는 게 맞다고 생각하는데..."
선생님은 아들이 모든 면에서 훌륭하다며,
학교 추천 전형으로 서울대 가기엔 부족한 등급을 아쉬워하셨다.
여튼 피눈물나는 고3을 지나, 하필 9월 모의고사 이후 다리까지 다치는 바람에
제대로 수능 준비도 못한 상태에서 아들은 2024 수능을 보았고,
진정액까지 먹을 정도로 수능 시험을 떨었던 아들은 수능을 망치고 말았다.
- 현수생들은 6모나 9모 성적보다 실제 수능이 훨씬 등급이 낮아질 수 있음을 명심하길 바란다.
수시에 기대를 걸었다.
9월 모의고사를 기준으로 가능성있는 대학보다 상향지원한 수시 6개 대학.
하지만, 수능 최저를 못 맞춘 1개는 아예 면접기회조차 박탈,
최저를 맞춰 면접을 본 대학도 탈락.
최저 없는 마지막 희망이었던 대학도 예비 3번에서 탈락.
그렇게 허무하게 6개의 수시에서 모두 광탈 후,
아들은 그토록 하기 싫었던 '생재수 생활'을 시작했다.
- 3화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