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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과 엄마의 대치동 입시 탈출기 3

할 놈은 한다, 될 놈은 된다?

by 마음리본

할 놈 할, 될 놈 될?


자식 키우는 엄마들 사이에 떠도는 말이 있다.

결국 할 놈은 하고, 될 놈은 된다는 것?

아무리 부모가 자식에 대한 욕심으로 최상의 환경을 제공하고,

조기교육과 적기교육으로 최선을 다해도

결국 아이의 타고난 성향과 운은 무시할 수 없다는 말이다.


하지만, 유난한 부모 밑에서 최고가 된 경우도 많이 본다.

세계적인 소프라노 조수미나 영원한 금메달리스트 피겨여왕 김연아,

축구스타 손흥민 선수를 봐도

부모의 적절한 환경 제공과 훈육, 교육이 없었다면

지금의 성공은 상상할 수 없을 것이다.


모든 부모들이 내 아이가 가진 재능을 최대한으로 발현해 주길 원한다.

나 또한 그 중에 하나였다.

아이의 타고난 성향, 재능에 맞고 아이가 행복한 일을 하는 삶을 살았으면 했다.

적어도 그 꿈을 이루는데 부모가 방해가 되거나, 결핍이 되길 바라지 않았다.

그냥 그런 마음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대부분의 부모는 도대체 아이의 재능이 무엇인지 잘 알지 못한다.

어떤 부분을 개발시켜줘야 가진 달란트를 100% 발휘할지 모른다.


큰 아들은 어린 시절, 각종 스포츠를 좋아하고, 잘했다. 남편은 매우 가정적인 사람이라, 퇴근 후면 양복 차림으로 아이들과 바로 공원에서 만났다. 이제 막 걸음마를 뗀 아이와 드넓은 시민체육광장에서 축구공을 이리저리 굴리며 놀았다.

조금 큰 후엔 아빠와 티키타카가 가능해져

아빠가 뻥 찬 공을 받아 다시 되돌려주는 놀이(?)도 했다. 지금으로치면 축구 패스 연습이겠다.


야구를 좋아했던 아빠와 아들은 캐치볼도 열심이였다.

초등학교에 들어간 후엔 각종 어린이 야구용품을 장만하여

진짜 글러브로 공을 주고 받고, 방망이로 공을 쳐 놀이터 담장을 넘기기도 했다.


초등 고학년이 되어선 친구들과 날마다 운동장에서 땀 뻘뻘 흘리며

축구를 하더니 급기야, 축구선수가 되고 싶다고 했다.

큰아들은 한번 한다고 하면 어떻게든 시도를 할 때까지 조르는 경향이 있다.

나는 '매도 먼저 맞는 게 낫다'고 진짜 축구에 재능이 있는지 시험해 보고 싶었다.

계속 미련을 갖기 보다는 경험한 후 빨리 포기하게 하는 법?

나름대로 계산된 교육법이었다.

마침 인근 초등학교 축구팀 스카우터에게 명함을 받은 터였다.

아들은 테스트 경기를 뛴 후, 축구 선수 되길 포기했다.

이유는 '형들이 욕을 너무 많이 한다는 것'

바른 생활 사나이였던 아들 기질상 축구팀의 선후배 문화가 영 적응이 안 되었나 보다.

내심 속으로 기뻐했다.


하지만, 아들의 운동에 대한 열정은 그치지 않았다.

이번엔 야구 선수가 되고 싶다고 했다.

남편도 큰 아들이 축구보단 야구에 더 소질이 있는 것 같다고도 했다.

야구는 사실, 접근성이 매우 떨어지는 운동이다. 아무 곳에서나 공만 있으면 할 수 있는 축구와 달리,

야구는 공이 여기저기서 날아들면 위험해서, 할 수 있는 곳이 사설 야구팀 밖에 없다.

당시 집에서 사설 야구팀까지는 너무 멀었다.

직장을 다니는 나로서는 매번 아이를 데려다주고, 데려올 수가 없었다.

그렇게 아들의 야구 선수에 대한 꿈도 포기해야 했다.


남자아이들 사이에서는 운동 잘하는 게 상당히 큰 메리트다. 중학교 시절 아들은 반별 축구 대항전에서 종종 영웅이 되었다. 마지막 골을 넣어 반을 승리로 이끈 주인공이 되곤 했다.

군대에서도 축구를 잘 해서 여기저기 불려다닌다고 한다.

(그게 이득인지는 잘 모르겠다.)


인생은 아이러니


대치동 입시 탈출기를 쓰다가 뜬금없이 왠 아들 운동 스토리인가 할 것이다. 이유가 있다.

고 3년 내내 역사를 좋아해 '사학과'를 목표로 생기부를 준비했던 아들은

결론적으로 재수를 통해 스포츠 관련학과에 들어갔다.


성실한 아들은 재수 생활도 누구보다 성실하게 했다. 재수 학원 비용이 아깝지 않을만큼...

수능이라는 시스템에 익숙치 않았던 아들은

재수학원에서 매달 모의고사를 보고, 매일 시간 안에 푸는 연습을 하며 수능 시험에 최적화되도록 훈련되었다.

원체 사탐은 변동없이 잘 했고,

국어, 영어도 각종 기출문제를 섭렵하고 시간 배분, 멘탈 관리 등에서 자신만의 노하우를

계발할 정도의 경지에 이르렀다.


문제는 수학이었다. 재수 생활, 가장 많은 시간을 수학에 할애했다.

수학은 하루 아침에 되는 과목이 아니다.

지금같이 중킬러 이상의 문제를 풀어내기 위해선 엄청난 시간을 쏟아부어야 한다. 고민하며 문제의 고비를 넘기는 시간이 충족되어야 한다.

다른 아이들이 초등 때부터 했던 시간을 만회하기에 시간이 부족했다.

그래도 워낙 성실해서 빨리 답을 내고 싶고, 결과를 확인하고 싶은 마음을 참고

수학의 산을 넘기 위해 노력했다.


결과가 나오기 시작했다.

묵묵하게, 견뎌낸 시간들이 모의고사 성적으로 확인되었다. 소위 말하는 sky대학에 충분히 지원가능한 점수가 나왔다.


고3 수능 보기 전에는 눈빛부터 흔들리는 게 느껴졌다. 수능날 아침, 고사장을 들어가는 아이의 모습에서 자신감이 없고 불안한 마음이 엿보였다.

재수 때는 달랐다. 수능 보기 전, 어떤 문제든 빨리 풀고 싶은 묘한 기대감 같은 게 있었다.

마치, 내신을 준비하며 모든 문제집을 통달한 후 나오는 자신감 같은 것?

만반의 준비를 마치고 전쟁에 출전하는 장수 느낌이었다.


두번 째 수능을 마친 후, 시험이 끝난 아이의 전화기 속 목소리에서

시험을 잘 본 사람의 자신감이 비쳤다.

집에 와서 국어, 수학, 영어 등을 차례대로 채점했다. 아들은 그동안의 노력을 보상받듯 환희로 가득찼다. 걱정했던 수학도 선방했다. 4점짜리 주관식 1문제는 운이 좋게 찍어 맞췄다.(수능은 이렇듯 찍기신이라도 임하면 자신의 실력보다 좋은 점수를 맞기도 하는 시험이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자신있게 술술 푼 '생활과 윤리'에서 어이없는 점수를 받았다. 항상 1등급을 놓치지 않았던 사탐의 배신이었다.

확신에 차 푼 문제들이 모두 답을 비껴갔다.

영어 시험 채점까지 꿈에 부풀던 기대가 깨어지는 순간이었다.

정시는 1~2문제로 대학 레벨이 달라진다.

우리가 아는 서울의 중상위권 대학 차이가 사탐 몇 문제로 갈린다.


절망에 빠졌다.

'생재수'는 돌아갈 곳이 없다는 걸 의미한다.

반드시 정시 3장 중 1곳은 안정적으로 붙는 대학을 써야 한다.

아니, 더 이상의 재수는 싫었던 아들은 진학사 7칸이 뜨는 매우 안정적인 곳을 쓰려고 했다.

여기서 나의 모험이 시작되었다.


당시, 나는 고 2 공부 안하는 둘째 아들 때문에, 체대입시를 알아보고 있었다.

그러면서 우연히 들른 까페에서 큰아들 점수보다 낮은 아이도

sky 체육관련 과 커트라인이 충분하다는 댓글에 솔깃했다.

당장 체대 학원 상담을 알아보았다.

점수는 아주 충분하니, 실기 준비를 하자고 했다. 아들이 가고자 하는 대학은 영어 비율이 높고, 사탐 비율이 낮아 아이에게 최적화였다.


시간이 얼마 없었다.

2주 간의 실기 준비,

어린 시절 그토록 좋아했던 축구 종목을 실기 시험 기준에 맞춰 연습했다.

그리고 본 실기 시험. 아들은 연습한 기량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했다.

채워야 할 갯수를 채우지 못하고, 골도 연거푸 실수했다.

결국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세게 찬 골이 큰 소리를 내며 골인되었고,

그 때 심사하는 교수님들이 놀라 쳐다보았다고 한다.


시험을 보고 난 후 아들에게 전화가 왔다.

"엄마, 망했어요. 세상이 나를 싫어하는 것 같아요."

부모는 아이가 절망할 때, 마음이 무너진다.

그토록 긍정적이었던 아이,

다시 해 보겠다고, 괜찮다고, 항상 희망을 찾던 아이 마음이 무너지던 날,

엄마 마음 속은 피눈물이 났던 걸 아들은 알았을까?

할 수 있는 모든 최선을 다한 후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았을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얼마나 진을 쏟았는지, 더이상 할 수 없을 만큼 공부하고, 애를 쏟았는지

알기에 아들의 절망하는 마음이 더없이 헤아려졌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하지만,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했던가?

그토록 최선을 다해 노력한 아들에게 하늘은 가장 좋은 것을 주려고

이 순간을 허락한 게 아닌가 싶다.

어릴 적 부터 스포츠를 사랑했던 아들,

어쩌면 아들의 진로는 이미 이렇게 정해져 있던 건지도 모른다.

아들은 Y대 스포츠응용산업학과에 합격했다.

대학 진학 후 가장 행복한 인생의 계절을 보내고 있다.

적성에도 너무 잘 맞고, 재미있게 할 수 있는 일. 내가 그토록 찾아주고 싶었던.

나는 방법을 몰랐지만

하늘은 이미 다 예견하고 있었을 지도 모른다.


내가 생각한 방법이 최고라고 생각했지만

아닐 수 있다.

지금의 실패가 오히려 나중에 봤을 때, 큰 전환점이 될 수도 있다.

아무도 미래를 확신할 수 없다.

그러니 뜻대로 원하는 일이 다 된다고 자만하지 말아야 한다.

뜻대로 되지 않았다고 원망하지도 말아야 한다.


아들과 나는 실패를 통해 많은 것을 얻었다.

세상이 자신의 뜻대로만 되지는 않는다는 것과 실패한 사람의 절망스런 마음도 헤아리게 되었다.

또, 최선을 다해 노력하면 결과에는 반드시 보상이 있다는 것도 알았다.

그보다 더, 자신이 아무리 잘해도 하늘이 돕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

그러니 현재의 성공이 오로지 나의 영광만이 아님을, 하늘에 대한 겸손을 알게 되었다.


우리가 할 일은

주어진 위치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며 겸손할 것.

그 때 하늘은 기회를 열어주고, 길을 안내해 준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4화에 계속.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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