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에서 환희 빛으로 6
- 지공선사 김씨 관찰 일기
강소이(2023년 한국문학상 대상 수상 시인)
지공선사 김 씨는 오늘도 여든 살이 넘은 닳아진 무릎 연골을 안고 지하로 지하로 내려간다.
지하철 공짜 선비가 된 김 씨
door to door
급한 이들에게 급한 시간을 날아다 준다
때로 무거운 짐가방 어깨에 메고
때로 급한 서류 봉투를 들고 계단을 뛰어 내려가고 또 내려가 환승 열차를 기다려 갈아타고 갈아타며 다시 계단을 오르고 올라 열차를 누군가 급한 손에 급한 일을 전하려 지하철을 달리고 달린다
우리네 인생도 한 번에 목적지에 쓱 -
도달하지 못하는 거라서
환승역에서 환승하는 게 흔한 일이라
오늘도 김 씨는 환승을 습관처럼 갈아타고 갈아탄다
얼마 전 알게 된 문 씨 여인은 김 씨가 몇 번째 환승하는 여인이던가
문 씨를 가끔 만나러 가는 5호선 지하철엔 싸구려 시간들을 끓이는 곳 없어서
계단을 오르고 올라.
문 씨와 비싼 음식점엘 갔더란다
일주일을 일해도 얻지 못하는 문 씨의 한 끼 식사 스무 살 어린 문 씨와 색색의 식사
김 씨는 전철을 갈아타고 갈아타고 계단을 내려가고 올라가며 달리고 달린다
그리고 문 씨에게 몇십 년째 써온 시를 보여준다 여든 넘은 낡은 시
바람, 비에 젖어 누렇게 바랜 시 노트를
한 편 한 편 읽어주면서
무릎으로 쓴 시는 이미 떠나버린 열차처럼 모더니즘도 포스트모더니즘도 초현실주의도 초현실주의도 넘어가지 못하고
오랜 시간 곰삭은,
현대시로 바꿀 수 없다고 체념하며
시간을 꿰매고 이어가고 환승하려는 시인의 깡마른 등짝,
휘어진 푸른 꿈
오르고 오르면 숨 헐떡이는 계단 끝 어디쯤에서 꽃들에게 희망에 애벌레처럼
한편이라도 별빛 찬란한 시 한 구절을 건져낼 수만 있다면
김 씨는 오늘도 비바람 속을 오르내린다
눈보라 속을 오르내린다
신이시여.
단 한 편이라도 현대시로 갈아 탄, 눈부신 시 한 구절 쓰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