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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숏츠

Last Day on earth

우울한 날들을 견디고 이겨라, 기쁨이 찾아올 테니

by 임경주


글을 쓰고는 싶은데 뭘 써야 할지 몰라 멍을 때리고 있다가 브런치 작가님들과 교류하고 있는 단톡 방에 누구 한 분 소재 좀 올려주세요. 저 멍 때리고 있어요. 했더니 위스퍼 작가님께서 음악, -Last Day on earth (Tai Verdes 곡)- 이라고 하셔서 콜! 하고 음악을 소재? 주제로 글을 쓰고 있다.

외국인 회사를 28년 째 다니고 있고, 회사에서 사용하는 언어는 99.9프로가 다 영어인데 나는 정작 영어를 할 줄 모른다. 비영어권 고객을 만나면 그나마 자신감이 생겨서 혀를 꼬아보지만(그 자식들도 영어 드럽게 못하니까, 서로를 위로하며), 영어권 고객을 만난 상태에서 내 뒤를 지키고 있는 영어 겁나게 잘하는 똑똑한 부하가 있으면 내 혀는 완전히 굳어진다. 뇌도 굳어진다. 기분 참 더럽다. 그래도 뭐, 어떻게 직장생활을 하고 있는지 참 신기하다. 잠깐 얘기가 옆으로 샜다.

음악이나 글이나 시간예술로는 공통점이 참 많다고 생각한다.

아마도 내가 영어를 모르는 것처럼, 음악을 만드는 작사자와 작곡가들은 글쟁이 작가들을 위대하게 볼 것이고 우리 작가들은 또 음악을 만드는 작가들을 높게 볼 것이다.

2분 30초에서 3분에 가까운 음악 안에는 시와 같은 가사와 함께 보이스부터 시작해 우리가 자세히 알지 못하는 여러 악기들이 들어가 하나의 곡을 완성하는데 사람의 귀가 참 신기한 게 내가 듣고 싶은 것만 골라 들을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이다.

난 주로 음악을 들으면 가수의 보이스만 집중해서 듣는다. 다른 건 관심 없다. 가사부터 시작해 이 곡에 사용된 모든 악기는 오직 가수의 목소리를 위해 존재할 뿐이다.

어쩌면 이것은 내가 지나온 인생을 살아온 부분과 겹칠 것이다.

난 오직 1프로의 특별한 삶을 위해 99프로의 평범한 삶이 1프로의 뒤를 받쳐주고 그 1프로를 위해 존재할 뿐이라고 생각해왔다. 그렇게 살아왔다.

그 1프로는 오직 글이었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 그 작은 아이가 어느새 군대를 다녀오고 어른이 되어가고 있고, 나도 이젠 늙고 지쳐가고 있으니 사람 생각이 참 간사한 게 뒤바뀌게 된다.

이제는 1프로를 제외한, 내가 무시했던 99프로가 진짜 삶 같다. 이 99프로의 삶이 이제는 나에게 너무나도 소중하다.

위스퍼작가님이 추천해주신 음악,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Last Day on earth- 영어를 몰라 가사가 무슨 내용인지 알아보니 “인생의 마지막 날에 무엇을 할 것인가?” 이 질문을 유쾌하고 솔직하게 다룬 곡이라고 한다.

그래서 생각해본다.

인생의 마지막 날에 난 무엇을 할까?

1973년 7월 14일 첫 출근길이 떠오른다.

울 아들 두 달 반 만에 몸을 뒤집고는 배밀이를 했을 때가 떠오른다.

첫 장편소설 위소를 탈고하고 고즈넉한 새벽녘 베란다에서 맥주 한 캔을 땄던 기억도 떠오른다.

한데, 인생의 마지막 날에 뭘 할까? 아무리 생각을 해보아도 답이 없다. 한그루의 사과나무를 심어야 할까?

꼬리의 꼬리를 물고 늘어지는 그 생각 끝에 결론을 내린다.

난 아직도 그 1프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여전히 내 마음은 인생의 마지막 날까지도 우울한 날들을 견디고 이겨내고 있을 것 같다.

우울한 날들을 견디고 이겨라, 기쁨이 찾아 올 테니.

견디고 견뎌내면 내 인생의 마지막 날, 그 기쁨은 과연 찾아올까?

오지 않아도 상관없다.

난 과정을 중요시 여기는 사람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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