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큰 깨달음은 저절로 알게 되는 것
종교의 종자는 으뜸을 뜻한다. 종가, 종손 이럴 때 사용되는 걸 보면 종자가 무엇이든 어디에 쓰이든 으뜸이라는 말은 맞는 말 같다. 여기에 교는 가르칠 교다.
그러니까 종교는 으뜸 되는 가르침이라는 말이다.
수많은 가르침이 존재한다. 좋은 말, 악을 감화시키는 말, 교훈이 되고 사람의 인생을 180도로 뒤바꾸는 소중한 가르침이 이 작은 지구 80억 인구 머릿수만큼 존재한다. 당장 주위를 둘러보아도 육아서, 자기 계? 개발, 철학서, 사상집, 뭐 이름만 대도 다 아는 수많은 책들과 강의 동영상이 널리고 널려 있다. 흔하고 흔하다.
그중 으뜸이라는 것이다. 종교가.
종교는 신, 신도, 교리? 이렇게 세 가지가 충족되어야 한 국가에서 사이비가 아닌 정식종교로 인정받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근데, 이 조건은 참 웃기는 조건이다.
죽음이 뭔지 모르는 인간의 나약한 마음을 볼모로 삼아 돈을 착취하고 가정을 파괴하고 모두가 보는 앞에서 딸이 사랑하는 엄마의 뺨을 때리게 하고 결국엔 죽음으로 몰아가는 사이비도 충분히 충족하는 조건이다.
여기에서 불교는 아이러니한 것이, 이 세 가지에서 하나가 없는데 종교다.
신이 없다. 근데 이 작은 지구, 모든 나라에서 종교로 기능하고 있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을까?
그 이유는 바로 지금으로부터 2580년 전? 청년 싯다르타의 보리수 아래 숭고한 깨달음에 있다.
불교는 부처 불, 즉 다시 말해 부처의 가르침을 말한다.
그러면 도대체 뭘, 도대체 뭐 어떤 대단하고 엄청난 것을 깨달았기에 그 가르침이 세상 모든 가르침을 뛰어넘어 으뜸 되는 가르침으로 자리를 잡고 셀 수도 없이 많은 절을 세우고 스님을 뭐가 커서 큰스님으로 부르게 했을까?
우리와 같은 한 인간의 깨달음이 도대체 뭐라고 신격화가 되어 거대한 불상이 만들어지는 것일까?
불안하고 나약한 인간들은 그 불상을 돌며 기복기도를 빌고 또 빈다.
도대체 그 깨달음은 뭘까?
그 깨달음은 연기다.
연하여 기한다.
A라는 원인으로 인하여 B라는 결과가 일어난다.
오늘날의 논리이고 과학이다.
우리가 태어나서 글 한 줄 안 읽고 크는 환경일지라도 자연스럽게 엄마가 하는 말을 따라 말을 배우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당연하게 알게 되고 받아들이는 사실이다.
이것이 2500년 전 젊은 싯다르타가 보리수나무 아래에서 금식의 금식과 금욕의 금욕, 희로애락, 고집멸도, 생사고락을 다 이겨내고 쟁취한 깨달음이다.
이 세상은 모든 것이, 연하여 기한다.
지금 우리가 다 알고 있는 사실을 말이다. 나 같은 멍충이도 알고 있다.
그래서 하는 말인데, 제발 쓸데없는 사상이나 철학에 빠져 그게 도대체 뭔 멋인지는 모르겠지만 이제 나이도 좀 먹었으면 사춘기도 아니고 그런 말들의 대잔치와 염세의 장난질에서 빠져서 더 이상 내가 오늘 사네 내일은 죽네 하며 허우덕 거리지 말고, 금 같은 시간 날려 먹지 말고 본인 할 일이나 잘하시고 제발 실속 차리시라.
진짜 이런 사람이 존재한다면 옆에 있는 사람은 또 뭔 죄란 말인가?
뭐 이런 사람 없겠지만, 정말 이런 사람 있다면 제발 정신 차리시라, 그런 말을 하고 싶은 것이다.
근데, 솔직히 위에서 언급한,. 정신 못차리는 인간…
바로 나를 두고 하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