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가의 빛, 길 위의 문장

아직 오지 않은 여행을 위해 쓰는 등불

by 문 달

비행기 창가에 앉으면 나는 먼저 창과 마음을 닦는다. 반짝일 준비를 마친 사소한 장면들이 천천히 제자리를 찾는다. 그 옆에 브런치의 빈 페이지가 조용히 열린다. 여행은 늘 길 위의 이야기였고, 글은 그 이야기에 숨을 불어넣는 일. 나는 오래된 습관처럼 메모장을 펼쳐 그날의 하늘과 바다, 낯선 도시에서 만난 표정들을 눌러 담는다.


브런치에서 기록을 시작하고 알게 됐다. 글은 도착지가 아니라 출발이라는 것을. 누군가의 퇴근길 지하철에서, 차창에 스며드는 저녁빛처럼 조용히 번지는 문장. 내가 꾸는 꿈은 그런 문장을 오래 쓰는 일이다. 흩어진 파편을 한 결로 엮어 언젠가 한 권의 책으로 묶는 일. 첫 장을 넘기는 손끝에서 나를 낯설게 만들고 다시 친근하게 만드는 일.


나는 거창한 영웅담보다 소박한 순간의 고도를 믿는다. 호텔 창문을 타고 들어오던 노을의 온도, 공항 게이트 너머로 퍼지던 안내 음성, 체크인 줄에서 나란히 서 있던 사람들의 작은 한숨, 어느 골목의 라면 국물에서 올라오던 김. 그런 것들이 내 글의 뼈대를 세웠고, 브런치는 그 뼈대를 부러뜨리지 않고 자라게 도와준 공간이었다. 읽는 이가 잠시 멈춰 숨을 고르고 자신의 하루를 조금 다정하게 바라보게 한다면, 그게 내가 이루고 싶은 작가의 꿈이다.


글을 쓰는 일은 결국 누군가와 마주 앉는 일이다. 화면을 스크롤하던 손을 잠시 멈추게 하고, 그 손을 가진 하루를 상상하는 일. “오늘은 많이 힘들지 않았나요?” 마음속으로 그렇게 묻고, 대답을 기다리듯 문장을 천천히 놓는다. 스포트라이트 대신 낮게 깔린 스탠드 조명처럼, 과장하지 않고 오래 머무는 빛을 좋아한다. 책상 위 머그컵 가장자리의 물 얼룩, 페이지 모서리의 미세한 까짐, 그런 사소함에 기대어 문장을 세운다. 요란하지 않지만, 쉽게 꺼지지 않는 온도.


브런치 10주년 전시는 자연스레 ‘빛’을 떠올리게 한다. 활주로 가장자리를 따라 이어지는 유도등, 항로를 지켜주는 등대, 창가를 스치는 새벽빛. 한 줄의 문장이 누군가의 항로를 아주 조금 수정해 줄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불꽃처럼 번쩍이는 대신, 손바닥만 한 등불로 남아 밤을 건너는 속도를 늦추어 주는 일. 전시장의 벽에 내 문장 한 줄이 붙어, 낯선 사람의 발걸음을 잠시 붙잡는 상상을 해본다. 그 사람이 눈을 들어 다른 작품을 보고, 그 사이에 마음 한 칸이 환해지는 장면까지.


쓰는 방식에도 나만의 리듬이 생겼다. 빨리 달리는 대신 걷는 속도를 택한다. 걷는 동안 단어들이 뒤에서 숨을 고르고, 문장이 앞에서 길을 찾는다. 마음에 드는 문장을 여러 번 지워보고, 끝내 살아남은 단어들로만 다시 세운다. 좋아하는 문장을 잘라내야 하는 날도 있지만, 그 상실이 오히려 다음 문장에 공기를 만들어 준다. 침묵의 여백을 남기는 일이 가장 어려우면서도 가장 큰 효용을 준다는 것도, 기록을 거듭하면서 배웠다.


어느 날 내 글 아래에 이런 말이 달렸다. “아직까지 엄마와의 여행을 해보지 못했거든요.” 짧은 한 줄이 오래 울렸다. ‘아직까지’라는 단어에 붙은 시간의 무게와, 그 뒤에 조심스레 놓인 마음. 나는 가오슝의 햇빛 아래에서 엄마의 모자를 바로잡아 주던 순간을 떠올렸다. 횡단보도 앞 깜박이는 초록 사람, 손바닥에 전해지던 체온, 국물의 김에 안경이 뿌옇게 서리던 웃음. 그 사소한 장면들이 그 한 줄과 섞이며 새 의미를 얻었다. 글이 누군가의 아직 오지 않은 여행을 향해 작은 다리가 될 수 있다면, 그 다리는 이미 단단하다고 믿기로 했다. 언젠가 그 독자에게도 창가의 빛이 닿기를, 떠나지 못하는 날들에도 서로의 곁을 더 따뜻하게 지킬 수 있기를, 조용히 빌었다.


오늘도 나는 빈 페이지 앞에서 한 사람의 마음과 마주 앉는다. 방금 지나친 장면을 붙잡아 조용히 눌러 담고, 내일의 나에게, 그리고 아직 만나지 못한 독자에게 도착하기 위해. 작은 등불 하나를 더 켜듯, 한 줄을 더 건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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