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관이라는 상상의 공동체

by andrei

영화를 만나러 가는 길은 언제나 혼자였지만 영화관에 들어선 순간부터 나는 혼자가 아니었다. 나를 아는 어떤 이가 영화관에서 날 기다린 건 아니었지만, 왠지 ‘아는 얼굴들’이 언제나 그곳에 있었기 때문이다. 정말 아는 사이는 아니라서 차마 아는 체할 수 없는 사람들, 하지만 영화관에 혼자 온 나를 쑥스럽거나 외롭지 않게 만들어주는 사람들. 나와 비슷한 마음으로 비슷한 표정을 짓고 있던 영화관의 사람들 중엔 나와 비슷한 추억을 가진 이들도 분명 있을 것이다. 이쯤 되면 그 극장들이 어떤 곳(들)을 지칭하는지, 그리고 어떤 얼굴(들)을 이야기하는지 느낌적으로 깨닫는 사람들도 있을 것 같다. 소격동 그리고 낙원동, 서초동 지금은 상암동, 봄에는 전주 영화의 거리, 가을에는 부산 센텀시티...... 혹시 당신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나요?


영화관의 얼굴들이란 실제로 존재하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한 번도 그들 가까이에 가본 적은 없다. 뭔가 우습다고 느껴질 수도 있는 표현인데, 이들은 ‘손에 잡히지 않는’ 사람들이었다. 영화사 책을 보니 시네마테크 프랑세즈에서는 씨네필들이 삼삼오오 모여 영화 공동체를 만들었다는데, 나는 그런 전설이 될만한 용기가 없었다. 영화관에서 익숙한 얼굴들을 우연히 본다는 건 영화관을 갈 때마다의 소소한 즐거움은 되었어도 거기서 더 나아갈 수는 없었다. 이들은 우연하게도 나와 취미와 취향이 비슷해서 이 장소에 오게 된 것뿐이니까. 반복된 우연이란 서로가 인연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는 계기가 아니라, 오늘 마침 낙원동과 상암동에 올 수 있는 영화 애호가 각자가 그저 영화를 정말 사랑하기 때문이라는 것을 각자가 증명하는 것에 그칠 뿐이었다.


뭐 그렇다고는 해도 영화관을 갈 때마다 영화를 기다리고 있는 얼굴들을 발견하게 되면 왠지 반가워지곤 했다. 왠지 모를 편안함까지 느껴졌다. 나에게 있어 영화관은 영화에 대한 추억에 앞서 영화를 기다리는 동안 수없이 봐왔던 사람들의 풍경으로 가득 차 있다. 영화관 앞을 서성대던 익숙한 얼굴들은 빛을 쏘아서 올린 영화의 세계처럼, 진짜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왠지 진짜 같고, 알 수 없는데 왠지 조금은 알 것 같고, 하지만 상상이 필요한 존재들이 되었다. 영화관의 간판이 항상 켜있는 것처럼, 영화관 사장님이 유독 좋아하는 영화 포스터만큼은 로비 어딘가에 변함없이 걸려있는 것처럼, 영화관의 얼굴들은 언제나 그렇게 있었다.


혼자 온 나를 외롭게 한 적이 없었던 익숙한 얼굴들은 마치 못으로 고정해 걸어둔 포스터들과도 같았다. 물론 언제나 똑같은 포스터가 걸려있는 것은 아니었다. 어제 본 그 사람이 오늘은 오지 않은 적이 있고, 한동안 오지 않다가 몇 달 만에 본 사람도 있었다. 그런가 하면 ‘이렇게 자주 와도 되는 걸까?’ ‘저 사람은 회사를 안 다니는 걸까? 할 정도로 매번 보는 얼굴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영화관 구석에서 영화를 기다리며 혼자 피식대고는 했다. “저분은 오늘도 왔네.” “왠지 이 영화는 저분도 보러 올 줄 알았어.” 여기까지만 해도, 그래 서울은 좁으니까 그럴 수도 있지 하고 생각했다. 나 혼자 기적 같고 놀라웠던, 때론 이런 익숙함이 웃기기도 했던 경험은 부산과 전주로 ‘영화 원정’을 떠나기 시작했을 때엔 거의 까무러칠 지경까지 이르기도 했다. “여기서 만나게 되다니!” 똑같은 영화관의 문지방이 닳아 없어질 정도로 수 없이 많이 드나드는 동안, 예상치도 못한 곳에서 마주치게 된 나의 기억 속 ‘영화관의 얼굴들’도 어느새 저마다의 특별한 인장을 내 머릿속 영화관에 깊게 새기고 있었다.


아무래도 나는 이런 인연을 희망했던 것 같다. 영화 보는 게 쉽지 않던 그 옛날, 프랑스 문화원을 제집처럼 드나들며 영화에 빠져 지냈다는 어떤 영화 평론가의 글을 읽은 적이 있다. 항상 프랑스 문화원에 가면 나처럼 영화를 보던 사람들이 있었고, 그러다가 말을 걸었고, 친구가 되고, 어느새 우리 모두는 영화를 만들거나, 영화에 대한 글을 쓰는 사람이 되었다는 이야기. 나도 그런 친구가 필요했던 것 같다. 영화는 어두운 곳에서 나 혼자 보는 것이기는 해도 영화를 빠져나온 순간 이후로는 상상 속 영화에게만 말을 걸어야 했기 때문이다. 그런 외로운 순간들이 이어지다가 영화에 대한 사랑도 조금씩 흐려졌다. 만약 나에게 아는 체할 수 있는 누군가가 있었다면, 그럼 나도 영화를 만들거나 영화 글을 쓰는 사람이 될 수 있었을까? 이조차도 여전히 상상에 맡겨야 할 것 같다.


‘상상의 공동체’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다. 영화관을 수없이 드나드는 동안 나는 영화를 꿈꾸면서 동시에 상상의 공동체를 꿈꾼 것은 아닐까. 내가 동질감을 느꼈던 익숙한 사람들과 어떤 공감을 나눌 수 있는 날이 온다면, 나는 이 말을 내가 애정하는 영화관(들)의 사람들에게 붙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