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임지는 사람

by 정용수

이십여 년 전 직원 친목회 행사로 강원도 어느 스키장에 간 적이 있다. 대구에서 출발할 때 좋던 날씨가 스키장 근처에 왔을 때는 폭설로 바뀌어 스키장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언덕 지점에서 우리를 태운 관광버스가 눈길에 미끌어지는 위험천만한 상황을 맞이하였다. 도로 난간 끝에 걸린 버스는 계속 헛발질만 할 뿐 눈길에서 오도가도 못하는 처지가 되었다. 마침 그때 스노우 체인을 판매하는 트럭 한 대가 다가왔다. 우리는 반가운 마음에 체인을 구매하려고 했더니 가격을 턱없이 높게 불렀다. 알고 보니 겨울 한철 스키장을 찾는 사람 중 스노우 체인을 준비하지 않고 오는 사람들이 우리와 같이 위급한 상황을 만나게 되면 바가지를 씌우는 방법으로 돈을 버는 악덕 상인이었다. 그 당시 가격으로도 높은 사십만원 정도를 불렀던 것 같다(승객 1인당 1만원으로 계산..) 어려운 처지의 사람을 만나면 도와주는 게 인지상정인데 남의 불행을 이용해 돈벌이를 하려는 마음이 여간 괘씸하지 않았다. 직원들 대부분이 바가지 상혼에 욕을 하며 분개하자 체인 장사는 알았다며 돌아서 가려고 하였다. 하지만 버스기사분의 태도는 달랐다. 돌아서는 장사꾼에게 어떻게든 체인을 구매하기 위해 가격을 깎아 달라고 사정하며 매달렸다. 밤은 깊어 가고 눈은 계속 쌓여 가는 상황에서 불합리한 가격이지만 다른 방법이 없는 상황이었다. 결국 이십만원이 넘는 금액으로 타협하고 스노우 체인을 장착한 후 우리 버스는 무사히 스키장에 도착할 수 있었다.


살아가면서 한 번씩 그 일이 문득문득 생각난다. 가족 모임에서, 직장에서, 교회에서 의견 충돌이 있을 때 마다 지나치게 높은 이상적 기준을 주장하며 일을 어렵게 만드는 사람들이 있다. 상황 판단을 고려하지 않고, 현실에서 적용하기 어려운 기준들을 막무가내로 주장한다. 그런 사람들의 공통점은 비판은 잘하지만 정작 본인은 그 힘든 일에 잘 참여하지 않는다는 데에 있다.


가정에서, 직장에서 힘들고 어려운 일을 끝까지 담당해야 하는 사람들은 그렇지 않다. 최선의 방법이 안되면 차선의 방법이라도 찾아 일을 마무리하려 한다. 하지만 누군가는 그것조차 현실과의 타협이라며 비판한다. 그날에도 바가지 요금으로 체인을 구매한 버스기사분을 끝까지 비난하는 정의로운(?) 사람들이 제법 있었다. 그 기사분이라고 그 가격에 체인을 구입하는 것이 억울하지 않았겠는가.


이상과 현실은 조화를 이루어야 하지만 현실에 충실하지 않은 이상주의자들과는 점점 거리를 두게 된다. 누군가의 고마운 수고와 희생으로 평안한 하루를 살면서도 그 참혹한 현실을 어렵게 견뎌내는 사람들에게 자신도 실천하지 못하는 높은 이상적 잣대를 적용하여 비난하고 평가하는 일은 하지 말아야 한다. 오히려 힘든 삶의 현장으로 찾아가 작은 힘이라도 보태어 함께 노력하는 사람으로 살아야 한다.


힘들게 아침 밥상을 준비해본 사람만이 밥 한 공기에 담긴 정성과 고마움을 알 수 있다, 남이 해주는 밥만 받아먹고 산 사람은 밥 투정, 반찬 투정만 할 뿐 그 수고에 대한 고마움을 알기가 쉽지 않다.


최선의 방법을 몰라서가 아니라 어쩔 수 없는 현실 때문에 힘든 선택을 하는 경우가 우리에겐 종종 있다. 살아보니 세상은 논리로 다 설명할 수 있는 곳도 아니고, 우리들이 갖고 있는 논리들 조차 완전하지 않다는 걸 절감하게 된다. 투박하고 세련되지 않아도 묵묵히 현실을 견뎌내는 사람들이 세월 갈수록 너무 고맙고 감사하게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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