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상 가는 날

by 정용수

문상 가는 날

낯익은 영정 앞에 설 때마다

가슴 한 곳이 철렁 내려앉는다


정리하지 못한 원고,

화해하지 못한 사람,

완납하지 못한 연금,

풀지 못한 서운한 마음들


무엇 하나 완성한 것도 없이

사랑만 받다가

도움만 받다가

고마운 것 하나

남기지도 못한 채

나도 훌쩍 떠나게 될까 봐

한 번씩 느껴지는

부정맥 박동에도

마음이 서늘해진다


영정 속 주인들과

내 나이가 이렇게

점점 좁혀지다 보면

언젠가 내 영정 앞에

사람들이 서는 날도

곧 올 텐데


그날의 국밥과 수육도

누군가의 허기진 한 끼를

넉넉히 채워 줄 수 있을까


세월 갈수록

영정 앞에 서서 드리는

내 기도의 단어들이

점점 단순해지는 것이

그래도 다행스러워

돌아가는 발걸음이

무겁지만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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