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빠 박세희 Jan 22. 2024

어쩌다 아이스하키

아이 덕분에 확장된 나의 세계

첫째 아이가 아이스하키를 하고 있다. 축구도 아니고..., 굳이 한국에서 아이스하키를? (물론 축구도 하고 있다.)


캐나다, 미국 또는 유럽 이외의 나라에서 아이스하키를 한다는 건 어떤 의미에서는 꽤나 낭비적인 일 같다. 엄청난 전기로 만든 빙상장을 이용해야 하고, 그나마도 집 주변에는 빙상장이 흔치 않아서 차로 멀리 이동해야 한다.


시작하게 된 계기는 정말이지 단순했다. 티브이를 보던 둘째 아이가 스피드스케이팅 시합을 보고 “나도 저렇게 스케이트 타고 싶어!”라고 했고, 항상 형에게 밀려 형 하는 걸 같이 해왔던 둘째가 처음으로 자기가 무언가를 하고 싶다고 한 말에 감동한 아내는 어린 아이도 스케이트를 배울 수 있는 곳을 끈덕지게 찾았던 것이다.


여러 빙상장에 전화를 걸어 봤지만 둘째 아이의 나이에 맞는 스케이트 강습을 제공하는 곳은 없었다. 돌아오는 답은 아이가 아직 스케이트를 타기에는 어리니 좀 더 큰 다음에 다시 연락을 달라는 것이었다. 넘어지면 크게 다칠 수도 있다는 게 이유 중의 하나였다.


그러던 중에 한 스케이트 강습장에서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 “차라리 하키를 가보세요. 하키는 보호장구를 다 하고 배우니까 괜찮지 않을까요?” 그 이야기를 듣고 집에서 가까운 곳 위주로 연락을 해봤고 일일 무료 강습을 해준다는 곳을 발견했다. 작년 4월의 일이었다.


첫 수업. 아이스하키 장비를 착용하는 것만으로 아이들을 신나했다. 갑옷 같다며 재밌어 했다. 스케이트를 신으면 키가 더 커지고, 장비를 착용하면 몸집이 더 커지는 것도 아이들의 마음에 들었던 것 같다. 하지만 처음 아이스링크에 들어섰던 날들을 기억하시는지? 아이들은 제대로 서지도 못했고 차가운 빙판 위에서 뒹굴기만 했다.


첫째 아이는 그렇게 뒹구는 것도 재밌어 했지만 둘째 아이는 일단 그렇게 커다란 아이스링크 장에서 엄마도 아빠도 없이 형 하나만 믿고 코치님과 있어야 한다는 게 적잖이 무서운 일이었던 것 같다. 둘째 아이를 위해서 시작했는데 정작 첫째 아이만 계속 하게 되었다.


주 1회씩 20km 차를 타고 가야 도착하는 링크장에 다니고 있었는데, 첫째 아이가 아이스하키에 재미가 좀 붙었는지 아니면 더 빨리 잘하게 되고 싶었는지 주 2회 수업을 듣고 싶다고 했다. 마음이 약해진 아내는 주말 수업에 더해 평일 수업까지 열심히 라이드를 하곤 했는데 지금은 다시 주 1회 수업으로 바꿨다.


1:1 레슨을 받고 싶다고도 했다. 잘하고 싶은 마음도 알겠고... 다 좋지만 여건이 허락치 않아서 그건 못해주겠다고 했다. 대신 한 번 할 때 제대로 배워보라고.


그렇게 이번 달로 9개월 정도가 되었다. 이제 스케이트를 아주 잘 타는 건 물론이고 약식이지만 대회도 나가고 스틱으로 퍽도 잘 잡고 재밌게 배우고 있다. 코치님과 팀을 잘 만난 덕분이라고 생각하고 늘 감사한 마음을 갖고 있다.


내가 이렇게 될 줄은 모르고, 예전에 친구와 대화를 하다가 친구가 “나는 아이가 아이스하키를 했으면 좋겠어. 멋지더라.“ 하는 말에 ”굳이 한국에서 아이스하키를 해야 할까? 어릴 적에 축구 같은 걸 잘 배워두면 성인이 되어서도 써먹을 수 있지만 아이스하키를 잘 배워서 어디에 써먹겠어?“와 같은 가성비 운운하는 말은 한 적이 있었다. 늦었지만 그 말은 취소할게, 친구야.


돌이켜보면 아이 덕분에 나의 좁았던 세계도 조금씩 확장이 된 셈이다. 이건 정말이다. 첫째 아이가 아이스하키를 하고 나서 달리 보이는 것들이 많다. 자주 가는 회사 근처 국밥집에 아이스하키 팀 사진이 걸려 있는 것도 알게 되었고(아마도 국밥집 사장님 아들이 아이스하키를 했던 것 같다), 집 근처 이비인후과 진료실에도 아이스하키 관련된 아이템이 놓여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의사 선생님이 취미로 아이스하키를 하는 것 같다).


작년 여름, 제주 가족 여행 때, 우리 가족은 하루 일정을 빼서 스케이트장에  갔다. 제주에도 스케이트장이 있다고? 있다! 모 국제학교의 운동시설로 빙상장이 있다. 주말인가 방학 중에는 외부에 오픈되어 외부인도 이용료를 내고 들어가서 스케이트를 탈 수 있다. 그때 첫째 아이와 스케이트 경주를 했는데 처참할 정도로 큰 차이를 내며 졌다. 그 뒤로 나는 아이의 아이스하키에 관해 아무 할 말이 없어졌다. 그저 코치님께 인사 잘 하자... 정도?


그러고 보니 이 하키 팀을 만나기 까지 열심히 리서치를 한 것도 제주 여행을 가면서 스케이트장을 알아 본 것도 모두 아내가 한 일이었다. 아내가 이 글을 볼 날이 올지 모르겠지만, 진심으로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다.


첫째 아이가 아이스하키를 언제까지 하게 될까? 본인이 그만두겠다고 하기 전까지는 강습료를 대고 라이드를 해주고 싶다. 아주 잘 하지 않아도 좋고, 인생에 도움이 되지 않아도 좋으니 그저 건강하고 즐겁게만 탈 수 있다면 좋겠다. 아마 아이스하키를 하는 아이를 둔 모든 부모의 마음이 이러하겠지.


이번 주말, 아이의 아이스하키 하는 모습을 짧은 영상으로 담아봤다:

https://www.instagram.com/reel/C2WaaKOxsP_/?igsh=MWl5cjBwc2k5aTc1NQ==​​​


매거진의 이전글 끝말잇기와 국어사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