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낯
11월 도서는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이다. 평소 야구에 관심이 많은 나는 이 소설을 처음 접했을 때는, 야구의 신변잡기 정도로 생각했다. 읽다 보니, 작가의 치열한 삶에 대한 신조가 점점 커지면서, 묵직함을 던져준다.
주인공은 82년 프로야구 출범할 즈음에 삼미 슈퍼스타즈의 어린이 팬클럽에 가입하고 열렬하게 삼미 슈퍼스타즈를 응원한다. 그는 고등학교 1학년까지 계속 삼미 슈퍼스타즈를 응원하다가 결국 깨닫게 된다. “소속이 인간의 삶을 바꾼다.”
이 소설을 읽는 내내 나에게 화두를 던진다. 과연 소속이 우리의 삶을 바꿀까? 그는 어른이 된 이후에 자신의 힘겨움의 근원을 삼미를 응원했던 어린 시절의 기억에서 찾아낸다. 삼미 슈퍼스타즈는 늘 졌지만, 주인공은 자신의 절친과 늘 그들을 응원했다.
그는 늘 패배하는 것, 주류에서 밀려나는 것, 사라져 가는 것에 마음을 주었다. 세상은 강한 자를 밀어주고, 승자의 목소리를 키워주며, 소속이 높은 자에게 길을 열어주는데, 그는 어릴 때부터 그 반대편에 서 있었다. 삼미 때문에 힘들어진 것이 아니라, 삼미를 사랑할 수 있었던 그 마음 때문에 현대 사회의 승자독식 구조와 어울리지 않았던 것이다.
그는 대학 원서를 쓰면서, 토로한다. “나는 교육의 목표 역시 ‘소속’을 가리는 데 있었다.” 한국 사회에서 대학 입시는 지식 평가가 아니라 미래의 신분을 나누는 소속 배정 의례였다. 대학은 지성의 공간이 아니라, 사회적 계급장을 발급하는 기관으로 변했고 교육은 그 계급장을 따내기 위한 도구가 되었다.
그는 열심히 공부해서 결국 일류대 경영학과에 입학한다. 그리고 잔인하게 폭로한다. “일류대를 졸업한 사람들의 소속감은 일반인들의 상상을 훨씬 상회한다. 아마 마음 같아선 이마 한복판에 ‘일류대’라는 문신이라도 파고 싶을 것이다.”
한국 사회에서 일류대는 단순한 학교가 아니라 사회가 개인에게 부여하는 가장 강력한 표식이다. 주인공은 비판자가 아니라 한국의 학벌 구조에 발을 들여놓아 버린 피해자이자 공범이다. ‘이마에 문신을 새기고 싶은 마음’에서 그 자신이 학벌 구조의 포로가 되었음을 인정하고 있다.
우리의 삶을 바꾸는 소속
어디에 발을 들여놓느냐에 따라
삶의 바람결이 달라지네
같은 재능을 지녀도
서 있는 자리가 달라지면
보게 되는 하늘의 모양이 달라지고
당도할 수 있는 길의 폭이 달라지네
그러나 소속은
우리의 영혼까지 빚지는 못하네
흘러가는 바람처럼
환경의 모양만 바꾸어 놓을 뿐
마음의 불씨는 여전히
우리가 지켜야 할 빛을 기억하네
오늘의 나를 만든 것도
내일의 나를 빚은 것도
머물렀던 자리가 남긴 여운
소속은
삶의 바람을 바꾸는 바람이지만
나라는 줄기는
그 바람 속에서도
조용히 흔들릴 뿐이네
그는 대기업에 취업한 후에 돈을 버는 것의 본질을 깨닫는다. “시간이 없다는 것은, 시간에 쫓긴다는 것은-돈을 대가로 누군가에게 자신의 시간을 팔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돈이란 것은 노력의 대가도, 재능의 보상도, 성취의 표식도 아니라, 내 시간의 조각을 잘게 잘라 누군가에게 넘긴 결과물이라는 사실을 눈치챈다. 그가 말하는 이 깨달음은 단순한 직장인의 투덜거림이 아니라, 인생의 질감이 확 바뀌는 순간이다.
그의 통찰은 너무 서늘하다. 누군가가 더 많은 돈을 받는다는 건 그만큼 귀한 시간을 판다는 뜻이고, 누군가가 적은 돈을 받는다는 건 시간의 가치가 외부에서 낮게 평가된다는 뜻이다. 돈은 결국 내가 누구에게, 어떤 방식으로 얼마만큼의 삶을 넘겼는가의 기록이다.
그는 소설의 말미에서 “더 이상 치기 힘든 공을 치거나 잡기 힘든 공을 잡기 위해 똥줄을 태우지 않는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이 문장은 이 소설이 끝내 전하려는 조용한 해방의 선언일까?
그는 삼미 팬으로서 패배를 사랑했고, 일류대의 문턱에서 소속의 매력을 알며, 대기업에서 자신의 인생을 팔아 돈의 본질을 깨닫고, 그 모든 소속이 한 인간을 어떻게 몰아붙이는지를 배웠다. 그런 그가 마지막에 던지는 메시지는 명확하다. ‘더 이상 소속의 기준을 맞추어 스스로를 괴롭히지 않겠다.’
작가는 자본주의의 폐해를 말하려 했던 것일까? 작가는 자본주의를 거대한 이념으로 비판하지 않고, 하루를 팔아 살아가는 보통 사람의 감정을 들여다본다.
시간을 팔아 돈을 얻는 삶, 소속이 능력을 대신하는 현실, 조직이 개인을 규정하는 구조, 일류대와 대기업이라는 계층 사다리, 끝없는 경쟁이 만드는 초조와 불안, 이 모든 것을 거대한 자본주의의 탓으로 돌리지 않고, 현대인이 어떻게 자기 시간을 잃어가는가를 보여준다.
자본의 바람
자본의 바람은
늘 앞에서 불어
사람들의 등을 재촉하네
대학의 문턱을 넘는 순간부터
우리의 이름은 소속으로 불리고
그 소속은 미래의 지도처럼
우리 삶의 길목을 미리 그어놓네
회색 빌딩 아래 들어선 날
우리는 인생을 잘게 잘라
누군가에게 건네고
그 대가로 받은 돈이
삶의 무게가 된다는
사실을 서서히 배우네
더 빨리, 더 높이, 더 많이
잡히지 않는 공마저 잡으라며
우리의 영혼을 조이네
어느 날,
손끝에서 힘이 빠져나가는 순간
비로소 터득하네
더 이상 불가능을 붙잡기 위해
나를 태울 필요가 없다는 것
자본의 속도에 뒤처지는 것이
패배가 아니라 해방이라는 것
우리는 소속에 기록된 이름보다
조용히 남아 있는 심지가
더 오래 살아남는 존재
자본의 바람은 세차게 불어도
그 바람 속에서 흔들릴 뿐
우리는 끝내 꺼지지 않네!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박민규/한겨레출판/2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