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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과 마주하며 성장하기

민낯

호메로스의 ‘일리아스’ 및 ‘오디세이아’는 서양 문화의 두 축 중 하나인 헬레니즘의 원천이라 불리고 있어서, 천병희 교수의 원전 번역본 일독을 시도하지만, 일리아스라는 바위산을 처음 등반하면, 정상이 보이기는커녕 아득함에 일리아스를 등반하는데 이러다가 ‘10년 걸리는 거 아냐’라는 의문이 들면서 산 아래에서 포기하게 된다.

일리아스라는 거대한 서사시에 막히게 되면, 그 후속편인 ‘오디세이아’는 펴보지도 못하고 바로 꼬꾸라진다. 2025년이 시작되고, 답답한 상황이 연속되고 있어, 사회적인 모임에 나가지 않으니, 나 스스로를 감옥에 집어넣으며 일리아스를 독파했고, 그 힘으로 ‘오디세이아’를 일독한다.

오디세이아는 일리아스와는 달리 ‘오디세우스’의 개인적인 이야기다. 즉, 앞부분은 오디세우스가 트로이 전쟁이 끝나고 10년이 흘렀는데도 고향 ‘이타케’로 돌아오지 않자, ‘텔레마코스’가 아버지를 찾아 떠나는 것을 그리고 있다. 중반부는 오디세우스 자신이 ‘이타케’로 돌아오기 전에 포세이돈에게 찍혀서 10년 동안 헤매는 여정 이야기이고, 후반부는 오디세우스가 이타케로 돌아와서 자신의 연적들을 제거하는 과정을 그린다.

오디세이아는 텔레마코스와 오디세우스의 성장 이야기다. 나는 성장소설(Bildungsroman)을 제시한 괴테가 자신의 소설 ‘빌헤름 마이스터의 수업시대’의 모티프를 오디세이아에서 찾지 않았을까 추정한다.

이제부터는 텔레마코스가 오디세우스를 찾아가는 이야기를 시작한다. 트로이 전쟁이 끝나고 대부분의 그리스 영웅들은 귀환했지만, 오디세우스만은 10년간 돌아오지 않자, 이타케의 통치자들은 오디세우스의 아내 ‘페넬로페’에게 치근덕거리며, 텔레마코스의 살림을 거덜 내고 있다.

텔레마코스는 이러한 현실이 너무 답답하기만 하다. 페넬로페는 구혼자들이 떼거지로 자신에게 돌격하지만, 이러한 구혼자들을 딱 잘라서 거절하지 않고, 어장관리하듯 상황을 살짝 즐기고 있다. 페넬로페는 여러 구혼자들에게 자신의 시아버지인 ‘라에르테스’의 수의를 짤 시간을 달라고 한다. 그녀는 낮에는 베틀에서 베를 짜고 밤이면 낮에 짠 베를 풀기를 4년 동안 반복하다가, 그것을 지켜본 하녀가 페넬로페의 계략을 구혼자들에게 꼰지르자, 이제는 노골적으로 페넬로페를 갈구기 시작한다.

텔레마코스는 20살이 되었지만 자신이 무용에 서투른 허약한 자라며 자책하면서 오디세우스를 찾아 떠나는 여행을 계획한다. 이에 구혼자들은 텔레마코스가 이타케를 떠나지 못할 거라고 비아냥댄다. 드뎌, 텔레마코스가 구혼자들에게 스스로 자신이 어른이 되었다고 선언하고, 혼자서 세상과 마주하겠다는 다짐을 하며, 새벽에 배를 타고 이타케를 떠난다.

일단 텔레마코스는 트로이 전쟁에서 가장 앞장서서 싸웠던 네스토르를 찾아가지만 네스토르는 아가멤논이 귀향해서 자신의 아내 클뤼타임네스트라와 그녀의 불륜 상대 아이기스토스에 의해서 비참하게 살해되고, 그의 아들 오레스테스가 교활한 아이기스토스를 응징해서 그들의 명예를 지킨 이야기만을 해준다.

그런데 클뤼타임네스트라가 아가멤논을 살해한 동기를 살펴보면, 과연 오레스테스의 복수가 명예를 지키는 것인지 의문이 든다. 아가멤논은 그리스군이 트로이로 출정을 앞두고 사냥을 하다가 ’아르테미스‘ 신을 모독하게 되고, 이에 화가 난 아르테미스가 그리스 군에 전염병을 퍼뜨려 출정하지 못하게 된다.

아가멤논은 예언자를 찾아가니, 그 예언자는 아가멤논의 장녀 이피게네이아를 제물로 바쳐야만 아르테미스를 달랠 수 있다고 이야기하니, 그는 자신의 아내에게 이피게네이아를 아킬레우스에게 결혼시키겠다고 속이고, 자신의장녀를 산 제물로 바친다.

이를 알게 된 클뤼타임네스트라는 아가멤논을 혐오하게 되고, 그가 귀국하자, 내연남 아이기스토스와 모의하여 그를 살해한 것이다. 아가멤논과 클뤼타임네스트라의 잘못을 비교해 보면, 나는 아가멤논의 잘못이 더 크다고 생각한다. 아가멤논은 자신의 과실로 인해서 그리스 군 출정이 어려워지자, 자신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서 부인과 장녀를 속이고, 이피게네이아를 산 제물로 바쳤던 것이다.

텔레마코스는 네스토르에게서 원하는 답을 듣지 못하자 메넬라오스를 찾아간다. 메넬라오스 역시 텔레마코스에게 자신의 형님 아가멤논의 살해를 이야기하고, 눈물은 흘리면서 슬픔을 토로한다. “빰에서 눈물을 흘리는 것이야말로/우리가 비참한 인간들에게 베풀 수 있는 유일한 명예니까요.” 계속해서 메넬라오스는 오디세우스가 겪은 고난에 대해 위로한다. “고난은 물론 그 자신의 몫이겠지만 그를 아쉬워하는 영원히 참을 수 없는/슬픔은 내 몫이겠지요.”

영화 ’트로이‘에서 메넬라오스는 덩치 큰 건달로 묘사하고 있어서, 형님의 살해를 슬퍼하는 첫 번째 대사에 놀라고, 텔레마코스를 위로하는 두 번째 대사에 한 번 더 놀란다.

텔레마코스는 메넬라오스 집에 모인 다른 사람에게서 오디세우스가 살아서 바다 어딘가에 붙들려 있다는 것을 듣게 된다. 그러면서 텔레마코스는 이타케로 돌아가 아버지의 귀환을 기다리며, 구혼자들을 복수할 결심을 다진다.

텔레마코스는 20살이 되어서도 아버지 오디세우스를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자신의 집에는 언제나 자신의 재산만을 축내고 있는 구혼자들이 득실대고 있고, 어머니 페넬로페는 우유부단한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텔레마코스는 자신을 ’무용에 서투른 허약한 자‘라고 생각하며 자책하지만, 홀로 이타케를 떠나 오디세우스의 전우 네스토르와 메넬라오스를 만나면서 점점 용감해진다.

19살에 서울로 대학 와서 홀로 살았다. 처음에는 모든 것을 나 홀로 결정해야만 되는 상황이 살짝 무서워서 선배들에게 조언을 구했지만, 그들은 자신들의 결정이 옳다고 생각하고 자신들의 결정을 조언했다.

처음 그 결정을 들었을 때는 그대로 따랐지만, 이러한 결정이 겹치면서 무언가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가 나중에는 선배들의 결정을 따르지 않고 직관대로 결정하니, 선배들은 자신의 결정에 따르지 않는 것을 서운해했다.

이러한 상황이 반복되니, 나중에는 아예 일언반구도 꺼내지 않았다. 일찍 세상과 마주하면, 독립심이 빨리 생긴다. 다만, 무언가를 결정하는 방식은 매우 거칠다. 우리 사회처럼, 유구한 세월 동안 유지되는 경우에는 관례가 다양하게 쌓여 있지만, 어른들의 조언을 들을 수 없으면, 그냥 직관적으로 판단하게 된다.

우리들 각자는 자신의 세월 속에서 홀로 살아간다. 시간은 각자의 영역에서 무심히 도 흐르며, 절대로 피드백되지 않는다. 그렇지만, 시간이 마치 피드백되는 것처럼 시뮬레이션하기도 하고, 다른 사람들에게는 인생 2회 차처럼, 충고하기도 한다.

메넬라오스의 대사 “고난은 물론 그 자신의 몫이겠지만 그를 아쉬워하는 영원히 참을 수 없는/슬픔은 내 몫이겠지요.”가 너무 멋지고 쿨하다. 오디세우스의 고난은 오디세우스의 몫이고, 메넬라오스는 오디세우스를 아쉬워하며 슬퍼하는 일만을 할 수 있다고 외친다. 메넬라오스처럼 다른 사람들의 고난을 그의 몫으로 보아주면서도, 그의 고난을 아쉬워하며 참을 수 없는 슬픔을 품을 수 있을 정도로 성숙해지길 기원한다.

2500년 전 그리스의 현인, ’헤라클레이토스‘는 사람들에게 충고한다. “같은 강물에 두 번 발을 담글 수 없다.” 너무도 멋진 말이다. 한강을 바라보면, 한강은 변함없이 고요히 흐르는 것처럼 보이지만, 헤라클레이토스는 그 변함없어 보이는 강물은 시시각각 흐르면서 동일하지 않다는 사실을 사람들에게 설파했다. 헤라클레이토스의 멋진 경구를 생각하면서, 세상 사람들에게 외친다. “무심히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자신의 직관을 믿으며, 세상과 맞서라!”

오디세이아:호메로스 지음/천병희 옮김/도서출판숲/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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