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빌런연구소 1부

프롤로그

by 김해피

팀장이 되면 그동안 잘못된 관행을 바로잡을 수 있을 줄 알았다.
현실은 기대와 전혀 달랐다.

나는 빌런과 전쟁 중이었다.


팀장이 된다는 건 단순히 승진이 아니었다. 위로는 임원의 요구를 맞추고, 아래로는 팀원의 불만을 달래야 했다. 여기에 회사의 기술개발 로드맵과 그룹의 장기 전략까지 조율해야 했다.
기술자에서 관리자, 그리고 정치인이 되어야 하는 자리였다.


그러나 가장 큰 난적은 기술도, 예산도, 로드맵도 아니었다. 사람이었다.


어느 날, 팀원 추천으로 들어온 5년 차 경력자가 있었다. 전공·경력만 보면 깊이는 없었지만 적응시간을 준다면 나쁘지 않아 보였다. 그러나 그가 남긴 건 ‘성과’가 아니라 ‘곡소리’였다.


첫 번째 사건

주간회의에서 간단한 신규 개발 업무를 맡아줄 수 있는지 물었다.
대답은 단칼에 “못 하겠습니다.” 이유는 ‘개발언어가 다르다’였다. 난이도도 낮고, 그의 기술 수준이면 가능한 일이었는데 말이다. 그날 오후, 다른 팀원들이 나를 붙잡고 불만을 터뜨렸다.


두 번째 사건

회의 도중 갑자기 자리에서 사라졌다. 이유를 묻자 “전세 집 보러 가야 해서요.”
그날, 사유서를 받았다.


세 번째 사건

해외 전시회 기간, 팀의 상사인 임원과 팀원 몇몇이 전시회 준비 중이었고 그가 만든 SW에 문제가 있어 긴급 기술 지원 요청이 왔다. 해외특성상 시차가 있어 본인 개발 결과물에 대한 오류이기에 대기를 요청했고 그는 “대기 못 하겠다”며 정시 퇴근했다.

결국 내가 밤새 상황을 지켜봐야 했다.


이후에도 그는 회의에서 시계를 보며 지루하다는 제스처를 하고, 동료 발언 중 몸을 일부러 흔들었다. 신규 입사자를 ‘학사’라는 이유로 깎아내리고, 협업 대신 독단으로 외부와 소통하다 문제를 터뜨렸다.


결국 그는 타 팀으로 발령 났다. 하지만, 그 팀에서도 여전히 곡소리가 난다는 소문이 들려왔다.


나는 그때 알았다. 빌런은 자리를 옮겨도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그들의 존재는 어쩌면 조직의 필연일지도 모른다.

이에, 나는 준비하고 있다. 빌런연구소를 열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