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자꽃은 밤에 핀다.
그로부터 1년 뒤, 한겨울.
박수진은 1년 만에 처음으로 지하 1층 국선 변호사실을 찾았다. 자신의 물건을 정리하기 위해서였다. 사무실의 공기는 여전히 차갑고 눅눅했지만, 그날따라 코를 찌르는 이질적인 향기가 가득했다. 살아있는 자의 숨을 옥죄는, 달콤하고도 서늘한 치자꽃 향기.
그녀는 자신의 옛 책상으로 향하다 말고, 안쪽 사무실 문틈으로 새어 나오는 불빛을 보았다. 문을 열자, 권도윤이 소파에 깊숙이 기댄 채 잠들어 있는 듯 보였다. 그의 책상 위에는, 프롤로그의 그날처럼 검은 상자가 열려 있었고, 시들지 않은 새하얀 치자꽃 한 송이가 놓여 있었다.
하지만 그는 잠든 것이 아니었다. 그의 셔츠는 흥건히 젖어 있었고, 그를 중심으로 바닥에 번진 검붉은 얼룩은 마치 거대한 꽃잎처럼 보였다. 박수진은 비명을 지르지 않았다. 그저 1년 전, 자신이 그토록 막으려 했던 이 끔찍한 결말을 망연히 바라볼 뿐이었다. 권도윤의 마지막 모습은 어떤 공포도, 고통도 아닌, 공허함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는 마치 모든 것을 깨달았다는 듯, 눈을 감은 채였다. 그의 눈꺼풀 아래에는 눈물 한 방울이 마른 흔적이 남아 있었다. 박수진은 핏자국으로 얼룩진 책상 위에서, 그의 손으로 쓴 유언장처럼 보이는 쪽지를 발견했다. 단 한 줄, "나는 정원사의 마지막 작품이었다."
'정원사' 김민석의 여섯 번째, 그리고 마지막 작품이었다.
법정은 결국 김민석에게 유죄를 선고하지 못했다. 그의 마지막 작품을 담을 법의 테두리는 존재하지 않았다. 언론이 한때 떠들썩하게 쫓았던 '이선우 게이트'는 아버지의 권력 아래 소리 소문 없이 묻혔고, 세상에서 완벽하게 증발한 김민석은 인터넷 괴담과 범죄 프로파일러들의 연구 자료 속에 유령처럼 남았다.
그로부터 몇 년의 시간이 더 흘렀다.
대검찰청 중요범죄수사부 부장검사실. 최진혁은 이제 대한민국에서 가장 날카로운 칼로 불리는 검사가 되어 있었다. 그의 책장 한편에는 '정원사 연쇄살인 사건'이라고 적힌 두꺼운 미제사건 기록철이 꽂혀 있었다. 그는 가끔 그 기록철을 꺼내보았다. 그 안에는 피해자들의 웃는 얼굴과, 그들의 끔찍한 마지막 모습, 그리고 한때 자신의 적이었던 국선 변호사 권도윤의 영정 사진이 함께 들어 있었다. 그 사건은 그의 검사 인생에서 가장 끔찍한 패배이자,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주홍글씨였다.
그가 씁쓸한 표정으로 기록철을 덮는 순간, 책상 위의 전화기가 날카롭게 울렸다. 현장감식팀 팀장의 다급한 목소리였다.
"부장님, 홍대 앞에서 변사체 발견됐습니다. 20대 여성입니다."
최진혁은 피곤한 눈을 감으며 말했다. "특이사항은?"
수화기 너머로 잠시 침묵이 흘렀다. 이내, 망설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 현장에서, 피해자의 입에 붉은 장미가 한 송이 물려 있었습니다."
최진혁은 눈을 떴다. 그의 눈에 다시, 지독한 싸움을 앞둔 검사의 불꽃이 타올랐다. '정원사'는 사라졌지만, 그가 세상에 풀어놓은 광기와 사상은 죽지 않고 새로운 씨앗이 되었다. 악마는 사라지지 않는다. 그저 다른 얼굴로, 다른 계절에 우리를 찾아올 뿐이다.
싸움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