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의 모델

노력의 의미

by 간때
인생은 불확실성과 난수에 의해 결정된다.


나는 세상이 운에 기반한다고 생각한다.

운이란 내가 통제할 수 없는 변수. 이를 종교적 해석이라면 보이지 않는 신의 섭리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내가 대학병원에서 버티지 못하고 나온 것은 나의 노력이 부족하고 나의 의지가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 돌이켜 생각한다면 ‘그냥 운이 없었다.’


그 본질은 그곳에서는 간호사를 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설혹, 그곳에서 간호사의 매력을 느낄 수 있도록 인도해 주는 사람이 있었다면 다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직장이라는 곳은 그런 막연한 기대로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지금의 직장은 다르다. 물론 업무의 강도가 전 직장과 다르지만, 이곳에서는 좋은 사람을 만났다.


수간호사는 나를 단순히 병원의 부품인 간호사로 만들지 않고 나도 모르는 나의 잠재력을 그분께서 알아차리고 이를 위해 이유 없이 내게 수많은 인내와 노력을 통해 지금의 나로 성장하도록 도와주었다.

지금은 어느 정도 그분의 부하직원으로서, 그분의 뜻을 모두 알지 못하지만, 아마 물어보면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네가 내 품으로 왔기 때문이다.”

참, 어이가 없다. 이는 비아냥처럼 비난의 의도가 아니라 뜻 그대로이다. 왜냐하면, 내가 살아온 사고 논리 방식체계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차이는 물론 여러 변수가 복합적으로 맞물렸을 것이다. 통상적으로 이야기하는 대학병원은 업무 강도가 높아, 조직원의 감정적 여유가 없을 수도 있고 그 강도가 구조적으로 여유 없이 바로 현장으로 투입되어야 할 수도 있다. 또는 마침 그 시기에 업무 강도가 불특정 하게 높아 조직원이 예민해진 상태일 수도 있고 혹은 조직원들의 삶에 개개인마다 스트레스가 있어 이러한 것들이 맞물릴 수도 있으며, 앞서 누군가의 오류로 인하여 그 조직문화가 잘못 형성되었을 수도 있다. 혹은 나의 개인적 역량의 부족으로 그럴 수도 있다. 반대로 현 직장에서는 업무의 강도가 낮아서 저러한 요인이 없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것은 비로소 입체적으로 상황을 볼 수 있을 때 이야기할 수 있고 심지어 이는 조직부서 관리자가 해석해야 하는 것이고 그 순간 세상을 나의 시선으로 바라볼 때 있어서 모든 변수를 이해하고 극복할 수 있으면 좋으나, 그렇지 못한 경우가 다반사다. 즉, 개인이 통제할 수 없는 영역이다.


삶의 모든 것을 규명하고 행동할 수 없다. 이를 반대로 말하면 마치 우리 모든 행동이 본인의 자유의지로 형성된 것이라고 말하는 것과 동일하다. 자유의지론에 대한 해석은 여러 의견이 있으나, 적어도 나는 인간의 무의식적 반응, 반사적 반응, 감정적 충동적 반응(본능) 등으로 인하여 대뇌전두엽피질에서 발생한 인지적 행동을 매 순간으로 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이러한 전체적인 사고마저도 방어기제일 수도 있다. 대학병원을 그만둔 사실에 대해서는 변하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를 곧 실패로 받아들여왔었으나, 아직까지 이 경험이 실패가 아니라고 말하는 것은 미성숙한 내게는 어렵다. 사실 이 글을 작성하는 순간에도 막일했던 순간, 학부시절 어려운 것을 그래도 타인보다 노력한 점이 많다고 생각하는데 왜 못 버텼을까 라는 생각을 하고 있지만 5분 정도 고민하다가 결론이 나왔다. 내가 너무 스스로를 정량적 수치로만 평가한 나의 실수도 있는 듯하다.)


그러나 확실한 사실은 알 것 같다.


‘인생은 불확실하다. 무작위의 난수가 나를 매 순간 덮쳐온다.’


노력


그렇다면, 인생은 불확실하니까 그냥 운에 기대어 살면 되는가. 어차피 이것은 모두가 직감적으로 정답이 아님을 알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최근에 설명할 수 있게 되었다.


흔히 미디어에서 노력이란 물에서 숨을 참는 것과 같은 고통을 이겨내는 것을 심상적으로 많이 표현하는 듯하다. 흔히 스스로가 한정 짓지 아니하고 초월한 것을 말하고 이를 단순히 개인의 기준에서 노력이라고 평하지 아니하고 사회의 기준에서 노력을 했음을 존중받을 수 있을 만큼의 힘을 쓰는 것을 말하고자 하는 것 같다.


노력은 어려운 것을 힘을 주는 것보다 즉 노력 자체만으로도 힘들지만, 꾸준하게 힘을 주는 것이 매우 힘들다. 그 이유는 비가시적인 성과 구조 때문이다.


흔히 이야기하는 도파민 보상 체계가 아닐까.


그러나 대다수가 노력을 하면 결과가 바뀐다는 것을 안다. 즉, 어떤 대상물에 시간과 정성을 쏟는다면 결과물이 바뀜을 알고 있다.


그래서 나는 인생은 확률적으로 바라보며, 수렴 그래프로 바라본다.

(학부 때 수학은 쓸모없는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괜찮네)


image01.png 로그함수 (r143 판) - 나무위키


개인의 인생이 무수한 특정 일을 반복하면서 결국 특정한 값에 수렴이 된다고 생각한다. 즉, 개인의 성향, 성장배경, 기호, 무의식적 사고 등을 통해 흔히 우리가 말하는 ‘결국의 자기 때가 온다. 혹은 결국 지 인생 지 길 찾아간다.’라고 말하는 것처럼 말이다.


이때, 개인의 노력은 이 수렴값을 높이는 작업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이를 입체적(구체적)으로 생각하면 어떻게 될까.


image02.png 정규 분포 - 나무위키


어떤 일을 반복적으로 수행하거나 혹은 어떤 일을 내게 지속적으로 마주한다면, 정규분포도와 같은 삶이 되지 않을까.


image03.png 갈톤 보드 (이항분포) - 자바실험실


이러한 수많은 난제들이 나를 맞닥뜨리면서, 결국은 정규분포도와 같은 삶의 형태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는 곧, 내가 우연히 성공과 더 가까운 영역에 들어갈 수 있고, 혹은 실패의 최하점 순간까지 확률적으로 갈 수 있다.


그러니 모든 순간을 일희비희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 요지다. 물론 쉽지는 않다. 인간이 모든 순간에 이성적으로 접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를 인지행동치료 기법으로 향상할 수 있지 않을까.)


다시 한번 수렴 모델을 본다면, 성과를 y 축으로 설정하고 시간을 x 축으로 설정하자. 개인의 기량과 혹은 성장배경 등에 따라 함수의 형태 및 기울기는 다르다. 그러나, 이는 중요하지 않다. 이는 통제할 수 없는 영역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비로소 본인이 삶의 끝자락 다가갔을 때 알 수 있는 것이므로 지금은 알 수 없다.


이항분포실험에서도 주황색 점 즉, 삶을 맞닥뜨리는 것에 있어서 형태는 또한 중요하지 않다. 이는 통제할 수 없는 영역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


삶을 변화하기 위해서는 세이노의 가르침에서도 말하듯, 크로노스를 카이로스로 변화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즉, 통제 불가능한 시간(크로노스)을 통제 가능한 시간(카이로스)으로 변화하는 것과 같이, 우리의 정규분포도 축을 성공의 방향으로 지속적으로 옮기는 노력이 필요하다.


image04.png 수학 공식 | 고등학교 > 정규분포의 뜻과 성질 – MATH FACTORY


즉, 노력을 통해 성공과 가깝게 축을 이동하고 꾸준히 스스로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꾸준히 하면서 표준편차를 줄여야 한다.


그렇다면, 스스로가 성공이 무엇인지는 모르고 또한, 거대한 성공을 이룰 수는 없어도 적어도 그쪽으로 향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지금 당장 해야 할 것들을 루틴 화하고 꾸준히 시행함으로써 축과 표준편차를 줄이고 이후, 본인이 해야 할 것들이 루틴으로 더욱 빠른 시간에 정리가 된다면, 다른 것을 추가하여 편차가 점차 늘어난다면 성공확률도 압도적으로 늘어나지 않을까.)


지속


물론 지속은 어려울 것이다. 이미 숏폼, 술, 이성 등에 대뇌를 젓갈처럼 쾌락에 절인 나는 너무나도 힘들다.

그렇지만, 나는 스스로를 마약 중독 재활센터에서 달리기 마저 못하고 토하는 사람처럼 본인 스스로를 갉아먹지 않고 앞으로 계속 나가려고 한다.


‘브루스 올마이티’ 영화에서 어릴 때는 웃고 넘어간 장면이지만 쓸모없던 숏폼이 괜찮은 도움을 준 순간이 있다. (마치 정규분포도에서 운이 좋아 성공에 가까운 곳으로 향한 것처럼?)


image05.png https://youtu.be/4a1zkMDm-zM?si=UY3CL0CNso5k3vOS

‘수프를 가른 것은 기적이 아니고 속임수 마술이다. 10대가 마약대신 학업에 열중하면 그게 기적이다.’


“10대가 당연히 학업에 열중해야 하는 것이 아니냐.”라고 말한다면 개신교에서 금기시하는 율법주의적 관점이라 생각한다. 어릴 때 컴퓨터 게임 그만하라고 하던 부모마저도 지금은 유튜브에서 손을 못 떼고 있다.


세상의 유혹거리는 너무나도 많기에 어쩌면 이것이 정말로 기적일 수도 있다.


나 또한, 일시적인 쾌락을 위해 인간관계를 하는 것을 뿌리치고 (물론 며칠을 너무 아쉬워할 수 있지만) 집으로 향하는 것이 기적일지도.


모든 자기 계발서들이 똑같이 이야기한다.

스스로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루틴으로 만들고 이를 꾸준히 해 나가라.

이것을 정말 다양한 각도로 다방면으로 다르게 설명하는데 결국은 이 모델을 세워놓고 15도 각도에서 이 모델을 관찰하면서 설명하고 30도 각도에서 이 모델을 관찰하면서 설명하는 것과 다를 게 없다.


어쩌면 모두가 다 그렇게 살고 있는 것이 아닐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책을 읽는 이유가 노력과 지속성을 더 다듬기 위함이 아닐까.


사실 이러한 점을 알고 실천하려고 애를 쓰고 해야 하는 것을 실천해야 한다고 살고 있다가 실패하고 (최근에 이별해서) 포기하고 있는데, 책을 읽으면서 동시에 글쓰기도 할 줄 알아야 사고력이 향상된다고 하여, 브런치로 다시 돌아왔다.


그리고 나는 이 글을 끝으로 이렇게 적고 싶다.

(아 운동 가기 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