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합성, 그리고 그 의미

굳이, 의미를 스스로 찾으려고 애쓰지 않아도 된다.

by 간때
인생의 의미를 잃었다.


나영석 PD가 그렇게 말했다.

“내 연출 인생이, 저렇게 저물어...”

“내일은 지은이가 떠오르겠지..?”


그러자, 지은PD가 말한다.

“해는 어느 방향에 있어도 아름답잖아요.”

- Na들이 중 한 장면 -


의미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한 일에 대하여 인정받고 싶어할 것이다. 매슬로우가 말한, 자아실현의 욕구처럼.

아마, 그 이유는 한 개인이 어떤 과업 혹은 결과물을 만들어 내기 위해서는 매우 큰 고통이 수반될 것이고 누구나 그 과정에 대해서 알아주고 “고생했다.”라는 말을 들음으로써 인정해주는 것을 거부하는 사람은 결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연출 인생’ 이 단어가 정말 크게 와닿는데, 인생의 큰 비중을 연출에 쏟았다고 느껴진다. 그렇게 삶아온 삶이 저물어 간다는 것은 삶의 의미를 잃어버린다는 의미라고 해석할 수도 있지 않을까.

또 다른 해가 떠오르는 것을 말하는 것을 통해, 화자는 이 현상을 당연한 자연의 순리라고 생각하기도 하나, 한편으로는 노을에 빗대어 표현하는 것을 통해, 서글픈 감정은 남아 있는 듯하다.


그때, 다른 사람이 해가 저물어 가는 것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해(sun)’라는 단일 객체, 자체의 아름다움을 표현한다.


나는 이를 곧, 인생의 의미 또는 업적이 사라지는 것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라는 관점의 전환을 제공함을 통해 상대방이 위로를 받는다고 느꼈다.


생각의 회로


미국 심리학자, 웨인 W. 다이어가 강연에서 말하길, 오랜지를 힘을 주어 짜게되면 오렌지 즙만 나온다. 이때, 힘의 강도에 따라 즙의 양이 다를 뿐, 사과의 즙은 나오지 않는다고 말한다.


즉, 부정적인 감정과 같은 대상물에서 생각의 강도에 따라 부정적인 대상물의 파생물질 절대량이 변화하지, 긍정적인 것과 같은 다른 객체가 나오지 않는다는 것을 말하는 것 같다.


그래서 나는 비로소 생각했다. 인간이 어떤 결과물 또는 성취에 이르기 위해서 부정적인 감정과 같은 시련은 반드시 겪는다. 이때, 위로를 받고 싶을 때가 있다. 더욱이 나는 의미를 찾고자 하는 경향이 있다. 이때 해야 하는 것은, 그 과정을 재정립하는 것도 있으나, 관점을 바꾸어 재해석도 중요하다는 사실을.


특히, 내가 선택한 결과를 바라고 한 행동이 실제로 내게 미치지 않았을 때.

마치, 간호사로서 살아가면서 환자 및 보호자에게 그들의 삶이 나아지길 하는 바람으로 호의를 베풀었으나, 이를 악용하여 권리적으로 행사하고 상대방을 이용할 때.


호의를 배푸는 과정은 철학적으로 선하다. (물론 과하면 다른 결과를 초래할 수는 있다.) 그러나, 원치 않는 결과를 마주하면 이 과정이 의미를 잃었다고 판단했다. 그 결과, 과정을 포기하게 됐다.


여기서, 다른 과정을 통해 새로운 삶의 의미가 찾아지면 좋겠으나 보통 의미는 잘 찾아지지 않는다.


생각은 행위를 수반한다.


'행위가 선이라면, 의미는 깨우칠 수 있다.'


소나무는 광합성을 통해 이산화탄소를 제거하고 산소를 생성하여 생명체가 살아갈 수 있는 최고의 기본요건을 이루어준다. 그 가치에서 우리는 식물의 중요함과 그 의미를 새긴다.

그러나 여기서, 소나무는 그 과정의 의미를 알고 수행하는 것인가.


그렇다면, 다른 동물은 어떠한가. 흔히 우리는 의미를 알고 있는 동물이 있고 그 존재의 특성과 성질 또한 연결 관계를 정확히 알고 있지 아니하여, 그 의미를 모르는 경우도 있다. 이때 흔히, “이유가 있겠지.”라고 넘긴다.


나는 이 과정을 통해, 개인이 스스로 행동하는 것에 대하여 의미를 모를 수도 있고 후에 돌이켜 생각하니, 숨겨진 의미를 찾을 수 있다는 사실을 비로소 깨우쳤다.

다시 말해, 반드시 개인이 의미를 두고 행동할 필요가 없으며, 지금은 보이지 않는 의미가 추후에 깨우칠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광합성


의미는 중요하다.


“인간만이 자신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의식하고, 그 의미에 대해 질문을 던지며, 스스로 의미를 찾는다. 단순히 존재하는 모든 존재와 달리 인간만이 실존이다. 인간이 스스로 의미를 찾지 않으면 이 세계와 자신의 삶에는 아무 의미도 남아 있지 않다.”

(조던 B. 피터슨, 12가지 인생의 법칙)


나는 그 의미를 찾지 못한 상태에 빠져있다. 그래서 나는 단순히 광합성을 하기로 했다. 선이라는 초월적 개념을 이루고자, 지금의 과정에서 알 수 없지만, 내가 기꺼이 해야 한다는 것을 추구하며 살아가겠다고 다짐한다.


이 행위는 과거부터 이어져온다.


성경 중 창세기에서 노아는 지금 당장 이룰 수 없다고 판단하는 큰 과업을 위해, 즉 초월적인 목표를 세우고 장기간 동안 지금 당장해야 할 것을 집중하며 살아갔다.

(종교를 떠나, 노아의 방주 사건은 개인이 초월적인 목표를 세우고 이루는 철학적 원형이라고 생각한다.)


이 글을 작성하는 지금도 내가 해야할 것, 내 삶의 의미, 앞으로의 삶, 아무 것도 모르겠다. 그러나 지금 당장의 시선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을 하겠다고 마음 먹는다.


세상의 이산화탄소를 통해 산소를 만들어, 누군가의 생명에 있어 중요한 재료가 되는 삶을 살아감에 있어, 훗날에 그 의미가 있기를 바라며.


나는 오늘도 광합성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