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실, 사랑 그리고 숨어있는 삶의 질서에 관한 이야기
원제: Why Fish Don't Exist: A Story of Loss, Love, and the Hidden Order of Life
룰루 밀러 지음, 정지인 옮김, 곰출판 (2021)
얼마 전 읽은 책, 루루 밀러의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내게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과학자의 집요한 삶을 따라가며,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이 얼마나 임의적인가를 묻는 책이었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민들레 법칙과 과학에 대한 저자의 성찰이 오래 마음에 남았다.
“어떤 사람에게 민들레는 잡초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는 그 똑같은 식물이 훨씬 다양한 것일 수 있다. 약초 채집가에게 민들레는 약재이고, 간을 해독하고 피부를 깨끗이 하며 눈을 건강하게 하는 해법이다. 화가에게 민들레는 염료이며, 히피에게는 화관, 아이에게는 소원을 빌게 해주는 존재다. 나비에게는 생명을 유지하는 수단이며, 벌에게는 짝짓기를 하는 침대이고, 개미에게는 광활한 후각의 아틀라스에서 한 지점이 된다." (p226-227)
민들레라는 식물이 누군가에겐 성가신 잡초이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귀한 약재가 되고, 아이에게는 소원을 담아 보내는 친구가 된다. 나비에게는 생명을 이어가는 수단이 되고, 벌과 개미에게는 생존을 위한 터전과 지도가 된다.
이 문장은 우리가 사물에 붙이는 이름이 얼마나 제한적인지를 보여준다. ‘잡초’라는 말은 그저 인간의 관점일 뿐, 민들레의 여러 얼굴과 모든 가능성을 담지 못한다.
현상학적으로 사물은 고정된 본질을 갖지 않고, 바라보는 존재와 맥락 속에서 의미를 획득한다. 불교의 연기(緣起) 사상 역시 같은 이야기를 전한다. 민들레는 홀로 잡초가 아니라, 무수한 관계와 인연 속에서 늘 새롭게 정의되는 존재이다.
우리가 무심히 밟고 지나치는 풀 한 포기조차 이토록 다채로운 의미를 품고 있다면, 사람은 또 어떨까?
어떤 이에게는 꼴도 보기 싫은 방해꾼이지만, 다른 이에게는 삶을 지탱하는 힘이 될 수 있다. 민들레의 예시는 곧 우리의 삶을 비추는 거울이기도 하다.
“물고기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또 무엇을 잘못 알고 있을까? 과학자의 딸인 나로서는 깨닫기까지 오래 걸리긴 했지만, 내가 물고기를 포기할 때 나는 과학 자체에도 오류가 있음을 깨닫는다. 과학은 늘 내가 생각해 왔던 것처럼 진실을 비춰주는 횃불이 아니라, 도중에 파괴도 많이 일으킬 수 있는 무딘 도구라는 것을 깨닫는다.” (p267)
우리는 과학을 흔히 ‘진리를 밝혀주는 빛’으로 여긴다. 하지만 저자는 과학을 완전한 체계가 아니라, 인간이 만들어낸 불완전한 도구라고 말한다.
실제로 과학의 역사는 오류와 전환의 연속이었다. 코페르니쿠스가 지동설을 내놓기 전까지 인류는 수천 년 동안 천동설을 ‘진리’라 믿었지만, 결국은 짧은 시간 내 뒤집혔다. 토머스 쿤이 말한 ‘패러다임 전환’처럼 과학은 직선적으로 축적되는 지식이 아니라, 기존 질서가 무너지고 새로운 질서가 세워지는 단절의 연속이다.
또한 “과학은 윤리적으로 중립적인가?”라는 물음에는 반드시 그렇다고 답할 수 없다. 핵분열은 전기를 밝히는 길을 열어 주었지만, 동시에 원자폭탄이라는 파괴의 무기를 만들었다. 유전학은 수많은 생명을 구하는 희망이 되었지만, 한편으로는 ‘우생학’이라는 이름 아래 인종차별을 정당화하는 도구로 쓰이기도 했다.
그래서 과학은 빛을 비추기도 하지만 동시에 그림자를 드리우기도 한다. 저자가 말한 “무딘 도구”라는 표현은, 과학을 맹목적으로 숭배하기보다 그것의 한계와 위험을 인정하고 책임감 있게 사용해야 한다는 메시지로 다가온다.
민들레를 잡초라 단정 짓는 순간 우리는 그 다채로운 얼굴을 놓치게 된다. 과학을 절대적 진리의 횃불로만 여기는 순간, 그것이 남긴 오류와 상처를 외면하게 된다.
두 사례가 전해주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세계는 단 하나의 정의로 고정될 수 없으며, 인간이 만들어낸 분류와 지식은 언제나 불완전하다는 사실이다.
민들레를 다양한 맥락에서 바라봐야 하듯, 과학 역시 그 성과와 실패 그리고 빛과 그림자를 함께 이해해야 한다.
이제 질문은 독자인 우리들에게 돌아온다.
민들레를 잡초로만 볼 것인가, 아니면 수많은 의미의 집합으로 바라볼 것인가?
과학을 절대적 진리로 믿을 것인가, 아니면 불완전한 도구로 받아들일 것인가?
나는 그리고 당신은,
무엇을 ‘잡초’라 부르고, 무엇을 ‘진리’라 믿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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