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 학부모님으로부터 "카드 할부 가능한가요?"라는 조심스러운 질문을 받았다. 개인사업자인 나는 솔직히 내 사업장의 할부 수수료 체계조차 제대로 알지 못한다. 하지만 그 질문을 듣는 순간, "다들 어렵구나" 하는 동질감과 함께, 까마득한 옛 기억이 떠올랐다. 바로 학창 시절, 등록금이 밀리던 나의 모습이다.
내가 학교를 다닐 때만 해도, 등록금이 밀린 학생을 교무실이나 행정실에서 대놓고 불러 세우는 일이 흔했다. 지금처럼 '배려'나 '프라이버시'라는 개념이 희박했던 시절, 학교는 행정 절차라는 이름으로 아이들에게 집안의 가난을 공개적으로 확인시켰다. 물론 당시엔 일부러 등록금을 밀리는 집은 없었다. 모두가 형편이 어려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 잔인한 통보 방식은, 어린 학생의 마음에 지울 수 없는 낙인을 새겼다.
물론 요즘 학생들은 이런 경험을 알지 못한다. 대학을 제외하면 등록금이라는 개념 자체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그때와 비교하면 분명 좋은 세상이 되었다. 하지만 나는 묻고 싶다. 과연 이것이 어떤 정치인의 선의나 '착한 정책' 덕분일까?
등록금이 사라진 것은 제도의 선의라기보다, 우리나라가 그 시절보다 훨씬 부자가 되었기 때문이다. 국가 경제 규모가 커지고 세수가 늘어나야만, '무상 교육'이든 '무상 급식'이든 실현할 수 있다. 가난했던 시절엔 학생들에게조차 잔인하게 등록금을 통보하던 나라가, 이제는 그 부담을 세금으로 떠안을 여력이 생긴 것뿐이다.
나는 이 지점에서 현재 정치인들이 외치는 수많은 슬로건들의 허상을 본다. 그들이 내세우는 공약들이 아무리 선하고 정의로워 보여도, 결국 핵심은 '그것을 실현할 재원이 있는가'이다. 하지만 그들은 선거철마다 재원 마련 계획도 없이 달콤한 약속만을 남발한다. 이념과 가치를 내세운 정치 논쟁은 공허하다. "무엇을 해주겠다"는 약속보다 "그 돈을 어디서 마련할 것인가"가 훨씬 더 중요하지만, 그 불편한 진실은 늘 외면당한다.
결국 정책의 진정성은 이념이 아니라, 실현 가능한 재원 계획에서 비롯된다. 그 단순한 진실을, 나는 등록금이 밀려 교무실 앞에 서 있어야 했던 그 시절부터 이미 뼈저리게 알고 있었다. "다들 어렵다"는 말이 일상이 된 지금, 우리는 화려한 슬로건이 아니라, 우리의 삶을 실질적으로 지탱해 줄 수 있는 정직한 계획을 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