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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가 배신으로 바뀌는 순간, EV5

by Yong

기대가 배신으로 바뀌는 순간, EV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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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나는 현대기아차의 전기차 행보에 진심으로 감탄했다. EV6를 시작으로 EV9, 그리고 EV3에 이르기까지, 그들은 '기술을 아낌없이 담는다'는 철학으로 소비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상위 모델의 혁신적인 기술을 하위 모델에도 과감히 이식하는 모습은, "우리나라 기업도 드디어 달라졌구나"하는 믿음을 주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그 기대는 EV5의 등장과 함께 산산조각 났다.

물론 EV5 실패할지 어떨지는 나는 알 수 없다. 관심 가지고 지켜본 입장에서의 아쉬움의 토로일 뿐이다.


사양 장난질과 소비자의 분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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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V5는 출시 전부터 수많은 비판에 휩싸였다. 세계 최고 품질의 국산 배터리 대신, 원가 절감을 위해 중국산 CATL 배터리를 탑재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물론 CATL 배터리 자체에 큰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저가형 배터리를 사용했으면 그에 상응하는 가격 인하가 뒤따라야 마땅한데, EV5의 가격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더 큰 문제는 '사양 장난질'이었다. EV9에서 호평받았던 냉장·온장 기능 콘솔 박스가 중국 내수용 모델에는 탑재되면서, 국내 출시 모델에서는 삭제되었다. 경영진은 "사람들이 아직 그 기능에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고 멍청하게 판단했겠지만, 그것은 소비자의 생활 패턴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 오만이었다. 마트에서 장을 본 신선식품을 보관하고, 이동 중에도 시원한 음료를 즐길 수 있는 이 기능은 단순한 캠핑용 옵션이 아니라, 전기차 시대의 새로운 일상을 상징하는 핵심적인 편의 장치다. 한번 그 편리함을 경험한 사람은 결코 내연차로 돌아갈 수 없다.


이 모든 정보는 이제 더 이상 비밀이 아니다. 출시 전부터 수많은 자동차 인플루언서들이 중국형과 국내형 모델을 비교 분석하며 정보를 쏟아냈고, 소비자들은 차가 나오기도 전에 이미 분노하기 시작했다.


"어차피 살 거잖아"라는 오만의 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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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현대기아차는 국내 시장의 독점적 지위를 이용해 '수작질'을 부려왔다. 소비자들은 불만을 가지면서도 "어차피 살 사람은 산다"는 냉소적인 체념 속에서 지갑을 열었다. 하지만 시대는 변했다. EV5의 초기 판매량은 기아의 예상을 처참하게 빗나갔다. 사전 계약 건수와는 비교도 안 되는 저조한 실적은, 더 이상 소비자들이 기업의 오만을 용납하지 않는다는 강력한 경고였다.


심지어 같은 기간, '중국산'이라는 치명적인 약점을 안고 국내 시장에 진출한 BYD의 특정 모델은 수천 대가 넘는 판매고를 올렸다. 이는 단순히 한 모델의 성공과 실패를 넘어, 브랜드에 대한 '신뢰'가 무너졌을 때 시장이 얼마나 냉혹하게 등을 돌리는지를 보여주는 심각한 현상이다.


아쉬움과 질림, 그리고 남겨진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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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EV5의 부진이 그 거대한 공룡 기업을 흔들지는 못할 것이다. 그들은 앞으로 가격 인하나 할인 행사로 판매량을 만회하려 할 것이다. 나 따위가 감히 걱정할 기업도 아니다. 단지 아쉬울 뿐이다. EV3까지의 행보를 보며 '우리나라 기업이 그러면 그렇지'라는 오랜 불신을 거두려던 참이었는데, EV5는 그 기대를 무참히 꺾어버렸다.


기술은 세계 최고 수준에 도달했을지 몰라도, 소비자를 대하는 얄팍한 태도는 여전히 구시대에 머물러 있는 것 같아 씁쓸하다. 기술의 후퇴가 아니라, 철학의 후퇴다. 너무나 눈에 보이는 이런 수작질을 반복하는 모습에 이제는 질려버린다. 그것이 EV5 사태가 우리에게 남긴 진짜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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