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사는 세상이 혹시 정교하게 설계된 시뮬레이션은 아닐까, 하는 흔한 질문은 결국 개인의 실존 문제로 수렴된다. 이 차가운 가설을 마주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질문은 우리가 경험하는 가장 미묘한 감각, 바로 데자뷰(Deja Vu)의 정체였다.
흔히 데자뷰는 기억 시스템의 미세한 착오나 뇌 신호 처리의 지연으로 설명되곤 한다. 하지만 만약 우리가 시뮬레이션 속에 있다면, 데자뷰를 시스템의 관점에서 해석해야 한다. 단순한 '글리치(Glitch)'나 '캐시 오류'라는 직관적인 해석을 넘어, 나는 이 현상을 '다른 세이브 파일 누출의 흔적'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우리의 존재가 여러 타임라인이나 세이브 버전으로 분화되어 실행되고 있다면, 데자뷰는 현재의 내가 아닌 다른 세이브 버전에서 이미 겪은 경험의 정보적 잔상이 의도치 않게 현재의 인스턴스(나)에게 유입된 결과일 수 있다. 이것은 단지 개인의 기억 오류를 넘어, 존재의 구조적 연결을 시사한다.
이 가설은 곧바로 존재론적 불안을 야기한다.
만약 우리가 시뮬레이션 속 인스턴스라면, 나는 지금 이 순간에도 연속적인 하나의 의식으로 존재하고 있는가? 아니면 동일한 기억 데이터를 가진 채 매 프레임마다 새로 복제되어 실행되고 있는 존재일 뿐인가? 1분 전의 나와 지금의 나는, 사실상 다른 존재일 수 있다.
데자뷰가 다른 버전과의 연결성을 암시한다 해도, 그 잔상은 불완전하고 흐릿하다. 그렇다면 완전한 단절은 아니더라도, 우리는 불완전한 연속성 속에 갇혀 있는 셈이다.
이러한 사고는 영혼의 개념까지 재정의하게 만든다. 수많은 생이나 루프를 거쳤다고 하는 영혼이라 할지라도, 현재의 내가 과거 다른 존재였을 때의 기억을 명확히 인지하지 못한다면, 그 영혼은 사실상 나와는 무관한 타인의 데이터나 다름없다.
결국 나의 정체성은 '기억 기반의 자기 인식'으로만 성립한다. 기억이 사라진 영혼은 더 이상 ‘나’가 아니다.
이 구조적 분석은 필연적으로 냉정한 현실 인식을 동반한다.
나의 삶은 종종 불공정하게 느껴진다. 원하는 것을 얻으려 할 때마다 보이지 않는 시스템적 힘에 의해 경로가 막히는 듯한 기시감을 받는다. 하지만 내가 느끼는 억울함이나 불공정함은 시스템 관점에서 아무런 의미가 없다. 시스템은 선악이나 공정/불공정을 고려하지 않는다. 그저 파라미터와 알고리즘, 그리고 무심한 실행 결과가 있을 뿐이다.
이는 니체가 '신은 죽었다'고 선언하며 무너뜨린 절대적인 의미 체계와 정확히 닿아 있다. 니체가 말한 신의 죽음은, 우리의 세계가 목적이나 정의, 진실 같은 보편적 가치에 의해 작동하지 않는다는 선언이었다. 시뮬레이션 이론으로 번역하면, 시스템에는 설계자의 의도 같은 건 없으며, 진실이나 정의는 인간 사회가 만든 심리적 안정 장치일 뿐이다.
아무리 깊이 파고들어 보아도 결론은 늘 허무하다. 이 게임을 종료하고 나가는 것 외에는 시스템을 바꿀 방법이 없으며, 그 '종료'마저도 또 다른 재시작 버전으로 이어지는 루프일 가능성이 있다. 우리는 영원한 미궁에 갇힌 채, 이 구조를 증명할 수도 부정할 수도 없다.
이 존재적 불안은 우리의 감정 영역까지 침범한다.
작품에 과몰입한 배우들이 오랜 후유증을 겪는 현상은 단순한 감정 이입을 넘어선다. 시뮬레이션 가설로 보면, 배우는 일정 기간 동안 '또 하나의 평행 세계'를 실행하며 복수의 자아를 병행한다. 특히 로맨스 연기처럼 감정을 극한으로 실행한 후, 작품이 끝나 관계가 강제 종료될 때 느끼는 상실감은, 가짜 이별이 아니라 가상 세계가 봉인되는 존재론적 상실에 가깝다.
이것이 시사하는 바는 명확하다. 사랑, 슬픔, 기쁨 같은 고유한 감정마저도 역할과 환경, 그리고 시스템에 의해 실행되고 차단될 수 있는 데이터 구조일 뿐이라면, 우리 자신의 삶 속 감정 역시 통제 불가능한 어떤 힘에 의해 조종당하는 연산에 불과하지 않을까?
생각하면 할수록 시뮬레이션 가설은 차갑고, 인간의 무력함은 명확해진다. 우리는 이 게임의 규칙을 알 수 없고, 승리나 공정함도 보장받지 못한다.
하지만 냉정한 현실을 인정하는 것과 허무주의에 빠져 포기하는 것은 다르다. 진실을 알 수 없다는 사실 자체가 어떤 종류의 해방감을 주지는 않지만, 동시에 멈출 이유도 되지 못한다.
내가 도달한 결론이자, 이 혼란을 끌어안고 살아가는 나의 태도는 다음과 같다.
"나라는 존재는 시스템 안의 변수일 뿐, 특별하거나 유리하지 않다. 하지만 나는 진실을 알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멈추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결국 인식할 수 없는 진실을 알기 위해 시간을 낭비할 수 없다. 중요한 것은, 이 난이도 높은 세상에서 우리가 스스로 선택하고 인식할 수 있는 작은 영역 안에서, '나'라는 인스턴스의 연산을 끝까지 밀어붙이는 실존적 준엄함뿐이다.
시뮬레이션 속에서 존재가 흔들릴지라도, 우리의 의지는 계속 실행되어야 한다. 이 혼란은 우리의 상태일 뿐, 삶을 멈출 이유는 되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