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이나 공부에 대한 기사 아래 달리는 댓글 중, 나는 "인성도 없이 암기만 잘하는 애들이 판검사 되니 나라가 개판이지"라는 문장이 가장 한심하고 피상적이라고 생각한다. 이 문장 하나에는 지식에 대한 무지, 현실에 대한 편협함, 그리고 뿌리 깊은 열등감이 도덕적 언어로 미화되어 있다.
이것은 단순히 감정적 비난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가장 위험한 반지성주의와 정치병적 사고가 결합된 형태다.
이 댓글이 작동하는 방식은 간단하다. 이는 "부자는 악하다"는 오래된 정서적 프레임과 구조적으로 똑같다. 자신이 성취하지 못한 위치(공부, 부)를 도덕적 언어로 폄하함으로써 자기 위안을 얻는 방식이다.
이들은 사실 엘리트 집단의 비윤리성 자체를 비판한다기보다, 그 집단이 누리는 사회적 보상과 지위에 분노한다. 그 결과, "나는 저만큼 노력했는데도 저 위치에 갈 수 없었다"는 박탈감은 "공부는 못했지만, 나는 적어도 인성은 있다"는 정신승리로 전환된다. 이 도덕적 우위는 자신이 겪은 현실의 좌절을 합리화하고, 타인의 성취를 깎아내림으로써 심리적 균형을 유지하려는 방어 기제다.
더 나아가 이들은 특정 비리 정치인이나 부패 법조인의 사례를 들먹이며 '극소수의 일탈 사례'를 '집단 전체의 본성'으로 일반화한다. 이는 전형적인 대표성 오류이자, 복잡한 사회문제를 '엘리트 탓'이라는 단순한 선악 구도로 재단하려는 정치병적 사고의 발현이다. 그들이 비판해야 할 것은 제도의 실패와 권력 감시의 부재이지, 그저 시험을 잘 치른 개인의 인성이 아니다.
"암기만 잘해서 판검사가 됐다"는 말은, 사실상 공부를 제대로 해본 적 없는 사람의 착각이자 폄하에 가깝다. 공부는 지능의 문제가 아니라 6년 이상 지속된 성실함과 책임감의 기록이다.
중·고등학교 6년 동안 학교에 빠지지 않고, 하기 싫은 숙제와 공부를 등한시하지 않으며, 성적을 꾸준히 유지한다는 것은 단순한 암기력만으로는 불가능하다. 이는 곧 규율, 인내, 책임감, 자기관리 능력이라는 인성의 핵심 요소가 내재되어 있음을 증명한다. 공부의 과정 자체가 충동 통제와 회복 탄력성을 훈련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사교육 현장에서 15년간 아이들을 지켜본 나의 체감은 오히려 그 반대다. 요즘은 공부를 잘하는 아이일수록 생활 태도와 자기 통제력이 뛰어나 인성이 좋은 경우가 훨씬 많다. 습관이 불안정하고 감정 기복이 심한 학생은 결국 일정 시점에서 성적이 무너지기 마련이다. 공부를 지속적으로 잘하기 위해서는 성숙함이 필수적이라는 것이 현장의 진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암기만 잘했다"고 깎아내리는 것은, 정작 자신은 그 최소한의 노력을 기울이지 않은 것에 대한 자기기만이며, 지적 노동 자체를 폄하하는 반지성주의적 태도다.
결국 "인성을 최우선으로 뽑아야 한다"는 주장은 이상적으로 들릴지 몰라도, 현실의 기업과 고용주에게는 경제적 자살 행위나 다름없다.
인성이란 상황과 맥락에 따라 달라지는 추상적인 개념이며, 이를 객관적으로 측정하거나 검증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사람을 일단 써보고 판단해야 하는데, 이는 해고 제한과 막대한 교육 투자비 손실, 조직 내 갈등 비용 등 감당할 수 없는 리스크를 초래한다. 기업은 도덕적 구호가 아니라 생존의 논리로 사람을 뽑는 곳이기 때문에 망할 위험을 감수할 수 없다.
따라서 기업이 학력이나 자격증, 경력을 보는 것은 '차별'이 아니라 리스크 관리의 메카니즘이다. 학력은 6년간의 성실성, 책임감, 규율 적응 능력을 이미 증명한 기록이며, 이는 미래의 행동을 예측할 수 있는 가장 신뢰 가능한 지표다.
대기업은 이 리스크 관리 시스템을 정교하게 설계해왔다. 겉으로 "학벌 안 본다"고 선언하지만, 토익이나 자체 시험(예: 삼성 GSAT)의 최소 점수를 높게 걸어놓는 방식으로 학벌이 자연히 걸러지는 시스템을 만든다. 특히 GSAT 같은 시험은 학벌 철폐가 아니라, 학벌 좋은 이들 중에서도 꾸준히 논리력과 문제 해결 능력을 갈고 닦은 진짜 실력자를 정밀 선별하기 위한 필터다.
이러한 ‘인성 타령’은 내가 며칠 전 올린 글의 PC주의의 감정적 함정과도 맥락이 닿아 있다. PC주의를 감성적으로 받아들인 이들은 모든 사안을 '좋은 사람 vs 나쁜 사람'의 도덕적 프레임으로 판단하려 한다.
실제로 실무 경험이 없는 이들은 "인성, 정의, 감성" 같은 추상적 가치를 실무 능력보다 우선시하여 판단한다. 그 결과, 감성 위주의 인사를 했던 정권들에서는 실무 능력 부족과 조직 내 책임 회피가 빈번해지는 현상을 낳았다.
게다가 그들이 그렇게 쉽게 비난하는 법조인들 중 대다수는 과중한 업무량에 비리나 사기 따위를 생각할 겨를조차 없다. 대부분의 판사들은 하루에도 수십 건의 사건 기록을 검토하며, 인간의 한계 안에서 최선의 합리적 판단을 내리려 애쓰는 고강도 판단 노동자들이다. 그들의 비리는 개인의 인성 문제라기보다는, 그들에게 비인간적인 업무를 떠넘기는 시스템의 구조적 문제가 원인일 때가 더 많다.
결국 "인성도 없이 공부만 잘했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하지 못한 노력에 대한 합리화를 위해 타인의 성취를 도덕적으로 깎아내리는 행위이자, 현실의 복잡한 논리를 감정으로 단순화하는 편협한 사고방식의 산물이다. 세상은 말로는 인성을 외치지만, 실제로는 언제나 검증된 신뢰와 책임감을 기준으로 삼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