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대 갈라치기의 비겁함: '영포티' 프레임

by Yong

세대 갈라치기의 비겁함: '영포티' 프레임에 갇힌 40대의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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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언론은 '영포티'라는 용어를 앞세워 마치 이 세대가 MZ세대와 대립하는 새로운 기득권층인 것처럼 묘사한다. 하지만 이 담론은 실체 없는 허구이며, 실제 구조적 혜택을 누린 50~60대(영피프티·식스티)에게 가야 할 책임의 화살을 40대에게 돌리려는 비겁하고 치졸한 전략에 불과하다.

나는 40대의 생애 경험을 통해 이 프레임이 얼마나 악의적인지 증언하고자 한다.


1. 40대는 '혜택 세대'가 아니라 '계약직 시대의 직격타'를 맞은 세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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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은 40대가 과거의 풍요를 누리고 현재의 자리를 독차지했다고 묘사하지만, 이는 역사 왜곡이다.

명문대 출신이 대기업을 골라 가던 시대는 50대 이상의 이야기다. 지금의 40대는 1998년 IMF 전후로 사회에 진출했다. 이는 정규직 채용 자체가 사라지고 계약직, 파견직이 기본값이 된 비정규직 시대의 첫 타자였다. 우리는 '88만원 세대'의 핵심 연령대로서, 같은 학력과 노력을 쏟아도 윗세대와 같은 위치에 오를 수 없는 구조적 단절을 목격했다.


심지어 같은 집안, 당시 명문대인 같은 대학을 나온 두 사촌 형제의 2년 터울 사례만 봐도 이 절벽 효과는 명확하다. 먼저 졸업한 형은 대기업 복수 합격 후 은행을 선택했지만, 불과 2년 뒤 동생은 대기업 채용 자체가 사라져 7급 공무원 시험으로 방향을 틀어야 했다. 이는 개인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졸업 연도'가 인생의 분기점이 된 냉혹한 시대의 구조다.


2. 권한 없는 실행자, 책임만 진 중간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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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대는 조직 내에서도 권력을 가진 세대가 아니었다.

디지털 전환의 실무를 몸소 담당하고 시스템을 굴린 것은 컴맹인 50대 이상 상사 대신 지금의 40대였다. 하지만 승진 구조는 연공서열에 막혀 있었다. 50~60대 '베이비붐 세대'의 잔류와 50대 임원 풀에 가로막혀, 40대는 실무 능력이 있어도 관리자 자리에 오르지 못하고 중간에서 책임만 떠안는 ‘완충재’ 역할을 수행했다.

현재 대기업에서 40대는 임원급이 아니라 팀장급이며, 인사 결정권이나 조직 개편 권한은 거의 없다. 그럼에도 언론은 이들을 '자리를 안 비켜주는 기득권'으로 묘사하며, 청년 실업과 고용 경직의 책임을 40대 개인의 욕심으로 치환시킨다.


더욱 잔인한 현실은, 지금 이 40대가 영피프티와 함께 정리해고의 1순위 대상이 되고 있다는 점이다. 임원도 못 가본 채, 연봉이 높다는 이유만으로 조직 유지 비용을 떠안으며 가장 먼저 퇴출되는 이중적인 사용을 당하고 있다. 기득권이라면 이토록 쉽게 잘려나갈 이유가 없다.


3. 우리가 끝낸 문화, 그들이 뒤집어씌우는 프레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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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포티' 프레임이 특히 모욕적인 이유는, 40대가 실제로는 혐오했던 문화인 것을 그들이 만든 세대로 오인받고 있기 때문이다.

대학가의 막무가내 군기 문화나 강제적인 회식·술자리 문화는 50~60대 조직 문화의 잔재다. 이들은 '군대 가보면 안다'는 검증 불가능한 거짓 신화를 앞세워 그 문화를 정당화했다. 하지만 실제로 군대를 다녀온 40대는 그들이 말한 '군대식 폭력'이 사실이 아님을 깨달았고, 스스로 다음 세대에게는 이 문화를 물려주지 않기로 결단하며 군기 문화를 사실상 근절시킨 세대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론과 예능은 '영포티 꼰대', '20대에게 추파 던지는 40대' 같은 자극적인 밈을 반복 생산하며, 40대를 그들이 가장 혐오하고 끝낸 문화의 주범으로 묘사한다. 심지어 예능에서 '영포티'의 상징처럼 소비되는 연예인들은 실제 40대 대다수가 겪은 취업 전쟁이나 조직 경험이 전무한 사람들이다. 이들은 40대를 대변할 능력도 방어할 경험도 없기에, 프레임이 더욱 쉽게 사실처럼 굳어진다.


4. 갈등을 이용하는 정치적 도구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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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세대 담론, 특히 'MZ vs 영포티'의 대립 구도는 자연 발생한 싸움이 아니라, 책임 회피를 위한 구조적 도구다.


청년 실업, 노동 불안정, 자산 격차 같은 근본적인 구조 문제를 해결하려면 정책과 기업 시스템을 건드려야 한다. 그러나 이는 비용이 크고 기득권의 저항이 심하다. 따라서 정치권과 언론은 'MZ 담론'을 통해 청년의 분노를 동원하는 동시에, 그 분노의 화살을 안전한 중간 세대(40대)에게 돌리는 전략을 택한다.


이러한 갈라치기는 남녀 갈등, 세대 갈등 같은 해결할 의지가 없는 갈등을 반복 활용하여, 진짜 책임자들에게 가야 할 비판을 흐리게 만든다.


결국 영포티라 불리는 40대는, 개인적 성공 사례는 있을지언정 전체적인 흐름과 분포로 볼 때 성공이 예외가 되어버린 첫 세대이며, 가장 치열하게 일하고 책임졌지만, 이제는 구조적 책임을 피하기 위해 소비되는 희생양이다.


우리는 꼰대의 넋두리를 하는 것이 아니라, 기억이 지워지고 있는 역사적 사실을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40대는 유령이 아니며, 지워진 맥락을 다시 붙여 세대적 증언을 해야 할 의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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