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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 영어 ‘실생활 영어 담론’의 허상

왜 입시의 본질인 변별력을 부정하는가

by Yong

수능 영어 ‘실생활 영어 담론’의 허상: 왜 입시의 본질인 변별력을 부정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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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능 영어 40%가 고교 교육과정 밖에서 출제되었다"는 분석은 교육계를 향한 비판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한국 입시의 구조와 언어 평가의 본질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 감정적 프레임에 불과하다.

이러한 주장을 내세우는 이들은 대개 '선한 척'하며 학생들의 부담을 덜고 실용성을 높이자는 명분을 내세운다. 그러나 그들의 논리에는 치명적인 허점이 있다. 이는 입시의 본질인 '변별력'을 부정하고, 현실을 파괴하는 감성적 대안만 요구하는 '착한 척'의 전형이다.


1. 국어와 수학은 침묵, 왜 영어만 '실생활 타령'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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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먼저 제기되는 의문은 이것이다. 왜 유독 영어에만 '실생활'을 요구하는가?

학교 국어 시험은 일상 대화가 아니며, 수학 시험은 분수의 의미를 설명하는 능력을 묻지 않는다. 모든 학과 시험은 해당 지식을 매개로 한 문해력, 추론력, 사고력을 평가하는 '시험 언어'로 존재한다.


영어도 마찬가지다. 수능 영어는 언어를 통해 사고 능력을 평가하는 '언어 지능 테스트'이지, 외국 공항에서 길을 찾는 능력을 측정하는 '실생활 회화 시험'이 아니다. 실생활 영어는 상황과 맥락, 비언어적 단서에 의존하며, 이는 OMR 카드나 CBT 시험으로는 절대 재현할 수 없다. 실용 영어는 현장에서 배우는 영역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어만 실생활을 언급하며 공격하는 것은, 영어가 국민 대다수에게 어려운 과목이기에 '쉬운 공격 대상'이자 정치적 구호로 활용되기 좋기 때문이다. '학생들의 부담을 줄이자'는 감성적 프레임은 가장 쉽게 대중의 공감을 얻을 수 있으며, 이는 곧 교육의 본질을 외면한 채 감정적 해소만을 위한 프레임으로 악용된다.


2. 변별력이 없는 입시는 고대 사회로의 회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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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시의 본질은 간단하다. 변별력, 즉 '누구를 뽑고 누구를 떨어뜨릴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이다.

수능이 조금만 쉬워져도 상위권은 동점자 폭증으로 변별력이 붕괴한다. 이는 곧 대학이 입시를 위해 자체적인 시험이나 '다른 기준'을 도입하게 만들며, 결국 입시 지옥은 더 심해지는 역설을 낳는다.


'착한 척하는 사람들'은 변별력을 낮추는 대안을 요구하지만, 그들이 제시하는 '학생의 인성 평가'나 '다양한 재능 평가'는 모두 현실에서 작동 불가능한 이상론이다.


만약 그들의 말대로 객관적인 시험을 없앤다면, 인재 선발은 결국 '고대 중국 한나라식 천거 제도'로 회귀한다. 즉, 인맥, 배경, 가문, 주변의 주관적 평판 등 검증 불가능한 요소들이 기준이 된다. 이는 인류가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해 '과거제(시험)'를 발명했던 역사의 교훈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행위다.

시험이 사라지면 금수저, 배경 좋은 이들의 스펙 꾸미기가 난무하게 되고, 서민과 지방의 학생들은 사회적 이동성 자체가 붕괴되는, 더 불공정하고 계급화된 사회로 돌아가게 될 뿐이다.


3. 공부는 성실함의 증거, 학벌은 신뢰의 최소 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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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논쟁 속에서 사람들이 외면하는 가장 중요한 진실은, 공부란 그 사람의 최소 6년 이상(중고등 과정)의 성실함과 자기 책임 이행을 나타내는 가장 객관적인 지표라는 것이다.

공부는 단순히 머리가 좋다는 뜻이 아니라, 규율, 인내, 책임감, 자기관리 능력이 쌓여야 가능한 일이다. 즉, 성실하게 공부해온 사람은 이미 인성적으로 훈련된 사람이며, 공부 성취는 '하기 싫은 일을 꾸준히 해낼 수 있는 능력'의 증거다.


따라서 기업이나 고용주 입장에서 학력과 경력을 보는 것은 '차별'이 아니라 리스크 관리의 언어다. 측정 불가능한 '인성'이나 '난 선한 사람이야'라는 슬로건을 믿을 수 없기 때문에, 고용주는 내 사업에 필요한 사람, 즉 예측 가능한 성실성과 책임감을 이미 증명한 사람을 뽑아야 한다.


대기업이 토익 점수를 최소 기준으로 걸거나, 삼성처럼 자체 시험(GSAT)을 도입하는 것은, 겉으로는 학벌을 가리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질적으로는 학벌 좋은 이들 중에서도 진짜 실력을 갖춘 인재를 정밀 선별하려는 냉철한 시스템이다. 이는 학벌 철폐가 아니라, 학벌 상위 집단 내부에서 지적 역량이 떨어진 '지뢰'를 가려내는 정교한 필터링이다.


결국, 입시에서 '변별력'을 제거하려는 시도는 선의의 탈을 쓴 채 사회의 근본적인 공정 시스템을 무너뜨리는 행위다. 우리는 감정적인 이상론이 아닌, 현실의 고통과 실무의 필요성을 반영하는 냉정한 기준 위에서만, 지속 가능한 사회를 건설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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