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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맨인간 Sep 01. 2015

망설임

아이의 머릿속에는 이정표가 없다. 

아무것도 정하지 않기로 했기 때문이다.


아이는 지나가던 어른들을 보고 생각했다.

나이를 먹을수록 마음의 도화지가 얼룩지고 

생각은 움직임을 잃어간다고.


아이는 지레 겁을 먹었다.

자신의 새하얀 도화지에 때가 탈까 조마조마하며 

생각을 얼버무렸다. 


불안에 떨던 아이는 쥐고 있던 생각을 풀어헤치기 시작했다.

마구잡이로 형형색색 펼쳐지는 생각의 놀림을 가만히 두었다.

뻗어나가는 상상을 막았다간 유연성을 잃어버린다고 믿었기에. 


그러고선 새하얀 도화지가 얼룩질까 곧바로 지워버렸다.

완성된 그림은 아이의 도화지를 불완전하게 만들기에.


그의 생각은 거침 없이 떠돌아 다닌다. 

한 곳에 머물지 않아 생각은 미처 형체를 이루다 말지만

재빠르게 지우고서 하얀 도화지에 다시 새로 그리면 된다. 그리고 또다시 미련 없이 흘려보낸다. 


구속하는 것은 아이에게 있어 거추장스럽기만 하다. 

정렬된 생각보다는 소용돌이 치는 유연함이 더 편하다.

어찌어찌 운 좋게 만든 근사한 논리의 매듭도 그 순간 만을 위한 것. 

유연하게 돌아다니는 생각의 길목을 방해할까 풀어버린다. 


그렇게 아이는 순간을 그리고, 다시 지워가며 살아간다.


아이는 하얀 도화지에서 무엇이든지 그릴 수 있지만,

동시에 아무것도 그리지 못한다. 

무엇이 그려지는지 알 방법이 없으므로.


아이에게는 이정표가 없다.

그가 마음먹기 전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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