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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용오차를 극복한 천상의 하모니

요하네스 케플러의 행성운동 3법칙

by 김대군

허용 오차


우리는 본능적으로 완벽을 꿈꾸지만, 현실은 언제나 그 꿈에서 한 뼘쯤 비켜나 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허용 오차’라는 사회적 약속을 만들어, 불완전함 속에서 질서를 유지하고 있다.


허용 오차는 현실을 인정하고 더 나은 상태로 나아가기 위한 실용적인 철학이다.


허용 오차의 첫 번째 얼굴은 ‘준수’를 통한 안정의 확보다.


항공우주 공학에서 ±2.5 마이크로미터의 공차(公差)는 생명을 지키는 절대적인 서약이다.


의약품의 ±1~5% 함량 오차는 건강을 지키는 경계선이며, 제조업의 6 시그마는 품질에 대한 사회적 신뢰를 구축한다.


스포츠의 공인 장비 규격은 공정성을, 여론조사의 표본오차는 불확실성을 인정하는 태도를, 건축의 법적 허용 오차는 시공의 현실적 한계를 담보한다.


이처럼 허용 오차는 현상을 유지하고 예측 가능한 세계를 만들기 위한 약속의 최전선이다.


허용 오차의 두 번째 얼굴은 ‘극복’을 통한 혁신의 추구다.


진정한 진보는 종종 이 ‘허용된 한계’에 의문을 제기하는 용기에서 시작된다.


GPS는 지구 궤도를 도는 여러 위성에서 보낸 신호가 수신기에 도달하는 미세한 시간 차이(나노초 단위)를 측정하여 위치를 계산한다.


전파는 빛의 속도로 이동하므로, 시간 측정에 아주 작은 오차만 있어도 거리 계산에 엄청난 오차가 발생한다.


만약 시계가 100만 분의 1초만 틀려도, GPS 위치는 300미터나 빗나간다.


우리가 차선을 구분할 정도의 정확도를 누리려면, 나노초(10억 분의 1초) 단위의 시간을 측정할 수 있어야만 한다.


그런데, 20세기 중반, 가장 정확한 시계는 수정(Quartz) 진동을 이용한 쿼츠 시계였다.


하루에 0.001초 미만(3년에 1초)의 오차를 보여 일상생활에서는 거의 완벽한 수준의 허용오차 범위 내에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 시계를 GPS에 적용하면 내 차의 위치가 수십 킬로미터의 차이가 나게 된다.


물리학자들은 1955년, 세슘 원자의 진동수를 기준으로 하는 원자시계를 발명하였고, 현대의 원자시계는 3억 년에 1초의 오차를 보이는 수준에 이르게 됐다.


이처럼 극도로 작은 오차의 극복을 추구한 결과, 오늘날 GPS기술이 가능하게 되었다.



요하네스 케플러(Johannes Kepler)


케플러는 인류사에 빛나는 위대한 수학적 사상가들의 계보를 잇는 인물이지만, 그가 처한 환경은 그 누구보다도 비참했다.


그는 1571년, 칠삭둥이로 태어나 평생 허약한 체질에 시달렸다.


어린 시절 앓은 천연두는 그의 시력을 여러 개의 상이 겹쳐 보이는 복시(複視)와 극심한 근시를 안겨주었다.


밤하늘의 별을 맨눈으로 정밀하게 관측하는 것이 천문학자의 가장 중요한 임무였던 시대에, 이는 치명적인 결함이다.


또, 천연두는 그의 손마저 망가뜨려, 정교한 관측 기구를 조작하거나 세밀한 도표를 그리는 일조차 어렵게 만들었다.


‘하늘은 한 사람에게 모든 재능을 다 주지도 않지만, 한 가지 재능도 주지 않은 채 내버려 두지도 않는다’는 말이 있다.


케플러는 "기하학은 신 그 자체이다"라고 말할 정도로, 그가 하늘로부터 부여받은 단 하나의 재능은 바로 ‘수학적 사고’였다.


그의 재능은 관측 기구를 조작하는 손이나 별을 포착하는 눈이 아닌, 오직 논리와 이성으로 데이터를 해석하는 두뇌에 있었다.


1594년, 케플러는 신학교에서 수학 교사가 되었다.


하지만 때때로 수학적 영감에 깊이 빠져들어 강의 도중 혼잣말을 웅얼거리는 일이 잦았고, 이로 인해 수강생이 적었다.


그는 궁핍함을 해결하기 위해 마치 '오늘의 운세'와 같은 점성술 달력을 만드는 일을 병행했다.


그리고, 당시 떠돌던 소문과 몇 년간의 기상상황을 근거로 1594년 겨울의 혹한과 터키의 침공 예언이 우연히 들어맞으면서 뜻밖의 명성을 얻게 되었다.


이 소문은 당대 최고의 천문학자였던 튀코 브라헤(Tycho Brahe)의 귀에까지 들어가게 되고, 튀코의 초청을 받아 조수로 일하게 된다.


이는 그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전환점이었다.


튀코는 망원경이 발명되기도 전에, 맨눈으로 당시 최고의 정밀도를 자랑하는 방대한 천문 관측 자료를 축적한 '관측의 왕'이었다.


튀코는 케플러의 천재성을 인정하여, 당시 최대 난제였던 화성의 궤도 분석을 주문했다.


그런데, 1601년 튀코가 갑작스럽게 사망하면서, 그가 평생에 걸쳐 만들어 논 모든 관측 자료는 케플러에게 상속되었다.


프라하 소재. 하늘을 응시하고 있는 관측가 튀코와 수학자답게 삼각자를 들고 있는 제자 케플러의 동상

By Matěj Baťha - 자작, CC BY-SA 3.0, https://commons.wikimedia.org/w/index.php?curid=6951118 출처 위키백과



허용오차와 케플러


케플러는 스승이 남긴 보물을 바탕으로, 특히 예측이 어렵기로 악명 높았던 '골칫덩어리'인 화성의 궤도 연구에 매달렸다.


그 역시 당시의 모든 학자들처럼 행성들의 궤도가 완벽한 원(圓) 일 것이라고 굳게 믿었다.


하지만 아무리 계산을 반복해도, 자신이 원궤도를 가정하여 계산한 화성의 위치와 튀코의 실제 관측 데이터 사이에 아주 미세한 오차가 계속해서 나타났다.


이 오차는 가장 클 때가 ‘8분각(arcminute)’으로 아주 미세했다. 보통의 학자였다면 이 정도의 오차는 관측 실수로 치부하고 넘어갔을 것이다.


이 허용오차와도 같은 ‘무시해도 될 법한 작은 차이’는 케플러를 무려 8년간의 끈질긴 계산과의 사투로 이끌었다.


그는 스스로 이 과정을 "화성과의 전쟁"이라고 불렀다.


컴퓨터는커녕 계산기조차 없던 시대에, 그의 무기는 오직 자신의 두뇌와 펜, 그리고 종이뿐이다.


그가 남긴 계산 노트는 A4용지 기준으로 수천 페이지에 달하며, 하나의 계산을 확인하기 위해 무려 70번 이상 반복했다는 일화도 전해진다.


그는 이 과정을 "마치 말똥 더미에서 쓸 만한 것을 골라내는 일"과 같다고 토로했다.


마침내 그는 이 고독한 전쟁에서 승리했다. 화성의 궤도가 원이 아닌 약간 찌그러진 ‘타원’이라는, 당시로서는 생각하기 어려운 진실에 도달한 것이다.


그 ‘허용 오차’의 극복은 타원 궤도라는 혁명적 발견과 새로운 우주관의 탄생으로 이어졌다.


이 발견은 인류에게 위대한 ‘행성 운동 3법칙’을 선물했다. 즉, 타원 궤도의 법칙, 면적 속도 일정의 법칙, 조화의 법칙 등이 그것이다


이 법칙들은 행성이 ‘어떻게’ 움직이는지는 완벽하게 설명했지만, ‘’ 그렇게 움직이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원인은 설명하지 못한다.


이 위대한 질문 ‘왜?’에 대한 답은 다음 세대의 아이작 뉴턴이 ‘만유인력’의 법칙을 통해 찾아냈고, 케플러의 발견은 뉴턴에게 결정적인 디딤돌이 되어주었다.


아인슈타인은 케플러를 "과학 연구의 기본자세를 보여주는 특히 훌륭한 예"라고 하며 뉴턴만큼이나 존경했다고 한다.



케플러가 본 ‘천상의 화음’


아인슈타인은 "신은 교묘하지만 악의적이지는 않다"라고 말했다.


이는 우주가 비록 그 비밀을 쉽게 드러내지는 않지만, 인간의 이성으로 이해할 수 있는 합리적이고 아름다운 법칙에 의해 지배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신념은 케플러의 세계관과 궤를 같이 한다.


케플러는 우주를 '기하학자이신 신'의 창조물로 보았고, 행성들의 운동 속에서 '천상의 화음'이라는 음악적, 수학적 조화를 찾으려 평생을 바쳤다.


케플러는 행성마다 움직이는 속도에 따라 대응되는 (音)이 있다고 생각했다.


공전 속도가 느린 토성은 낮은음을, 속도가 빠른 수성은 높은음을 내며, 모든 행성이 어우러져 태양계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오케스트라처럼 ‘천상의 합주’를 연주한다고 믿었다.


그는 각 행성에 음계를 대응시켰다. 수성은 반음계적인 빠른 선율을, 금성은 단조로운 한 음을, 화성은 완전 5도를, 목성과 토성은 장 3도와 단 3도를 낸다고 보았다.


지구가 내는 음정은 ‘(Fa)’와 ‘(Mi)’였는데, 그는 이를 라틴어로 슬픔, 기근을 뜻하는 ‘Fames’와 ‘Miseria’에 연결하여 지상의 고통을 상징한다고 해석했다.


이로써 케플러는 과학과 신비주의를 아우르는 자신만의 ‘천상의 화음’을 완결시켰다.


1630년, 58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으며, 그의 묘비에는 “나는 하늘을 측정했노라, 이제는 지구의 그림자를 측정하노라. 마음은 하늘을 향했고, 육신은 땅에 쉬노라”라는 글이 새겨졌다고 전해진다.


이제 생각해 본다.


내가 나에게 정한 허용오차는 과연 불변의 상수(常數)인가? 하늘로부터 부여받은 재능으로 인생의 화음을 완성해 가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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