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저녁
거짓말을 잘하고 싶은가?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거짓말을 잘할지를 고민해야 한다. 정답은 진실 속에 한 방울의 거짓말을 떨어뜨릴 것. 거짓말의 농도가 한 방울쯤 된다면 충분히 진실 속에 가려진다. 그런 거짓말은 좀처럼 집어낼 수 없다.
물론 약간의 스킬은 필요하다. 아무리 진실 속이라도 빤히 보이는 뻔한 수준의 거짓말을 섞으면 곤란하다. 일상 이야기를 하면서 뜬금없이 상대방을 헐뜯거나, 어제 집에서 해 먹은 저녁이 고급 스테이크라고 한다면 어떨까? 생뚱맞은 거짓말은 진실 속으로 가리려 해도 어색해진다. 그런 건 불가. 자연스러움이 최고다.
처음 거짓말을 한 것이 언제인지는 기억하지 못한다. 사람은 살면서 많은 거짓말을 하고 나 역시 그랬으니까. 가장 옛날 기억을 끄집어내자면, 어릴 적 핫도그와 케첩이 생각난다. 다섯 살 때였을까, 핫도그의 케첩이 맛있어서 할머니가 핫도그를 사주면 케첩만 다 핥아 먹고 핫도그에 케첩을 안 뿌렸다며 더 달라고 했다. 한두 번은 꼭 그렇게 뻔한 거짓말을 하며 더 뿌려달라고 했는데, 할머니도 핫도그 장사 아주머니도 그런 나의 뻔뻔함에 오히려 한참 웃으며 케첩을 뿌려주곤 했다. 케첩은 종종 내 손가락을 타고 뚝뚝 흘러내리곤 했던 게 기억난다.
또 하나. 우리는 거짓말을 말로만 전하는 게 아니다. 직접 대면할 때는 말에서 오는 떨림, 직접 바라보지 못하는 눈, 처진 어깨, 긴장감을 감추지 못하고 떨거나 비비는 다리, 어찌할 줄 몰라 뒤로 감추는 손, 온몸으로 거짓말을 드러낼 수 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거짓말을 잘하는 비결은 자연스러울 것. 그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어릴 적 나는 할머니가 어떻게 그렇게 내가 하는 거짓말을 잘 알아채는지 신기하기 그지없었다. 지금은 그 이유를 알 것 같다. 내가 긴장할 때 버릇 같은 것들이 있기 때문이다. 나이가 든 지금은 상당수가 없어졌는데, 예전에는 땀도 좀 흘리고 눈도 못 마주치고 손을 뒤로 감추는 등 나의 버릇이 너무 빤히 보였을 것이다. 어떤 것은 모른 척하기도 했고 어떤 것은 크게 혼내기도 하셔서 나는 쉽게 거짓말을 하지 못했다.
이제 거짓말을 자연스럽게 할 준비가 되었는가? 그렇다면 거짓말의 농도를 좀 올려도 좋다. 한 방울이 아니라 몇 방울로, 또는 그 이상으로. 거짓말에 따라 2:8의 비율까지 올려도 무방할 수준이 된다. 다만 2:8을 넘어가는 건 권장하지 않는다. 너무 많은 거짓말은 말하는 본인이 거짓말과 진실을 제대로 섞지 못하고 어색함을 남길 여지가 커진다. 농도 짙은 거짓말은 상대방의 가슴에 분명한 흔적을 남기니까.
너 그 애랑 어울리지 말라고 했어? 안 했어? 할머니는 다그친다. 내가 너무 순진했다. 청소년이라 불리는 나이가 되어서 내가 만나는 친구에 대하여 속속들이 말한 게 문제였다. 그러다 보니 할머니는 내가 집에 늦게 들어오는 이유로 한 친구를 특정해 낼 수 있었다. 내게 친구는 모든 것이었고 친구를 욕하는 할머니는 나를 욕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나와 할머니는 자주 다투었고 그 이후로 친구에 관해서는 항상 거짓말로 일관하곤 했다. 거짓말도 하다 보니 늘어서 나중에는 제법 자연스러워졌다. 할머니는 심증은 있었지만 더는 추궁해서 알아내진 못하셨다.
나이를 먹으면서 할머니와는 점점 말하지 않게 되었다. 말하지 않으니 딱히 거짓말을 할 필요는 없었지만 무언가 할머니가 따지고 들만한 것들은 제대로 말해주지 않았다. 나는 나이를 먹으며 적당히 영리해졌고 능숙해졌다. 그러면서도 마음 한구석에는 어딘가 불편함이 있었다. 처음엔 할머니와 부딪히고 싶지 않아서였는데, 그냥 다투고 싶지 않아서였는데,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이상적인 거짓말은 서술한 대로 한 방울의 거짓말이지만 현실적이진 않다. 그렇다면 적당한 거짓말은 어느 정도가 좋을까? 현실적인 황금비라면 1:9를 추천한다. 현실적으로 10분의 1쯤 되는 거짓말을 진실의 수조에 떨어뜨려 희석할 수 있다면 상대방은 쉽게 눈치채지 못할 것이다. 나는 이 방식을 주변 사람들에게 추천했고 친구나 지인들이 실제로 써먹어 본 결과 효과적으로 쓸 수 있었다며 만족해했다. 누군가에게 거짓말이 필요하다면 당신도 써먹어 보라.
할머니의 폐섬유증은 이제 단단해져서 숨쉬기가 곤란한 지경에 이르렀다. 노환. 노환 때문이었다. 노환은 질병이 아니다. 노쇠한 몸이기에 온갖 질병이 동시다발적으로 공격하여 손쓸 새도 없이 빠르게 악화하는 걸 노환이라 부를 뿐이다. 그중 폐섬유증이 가장 대표적으로 할머니를 괴롭혔고 할머니는 2년간 병원을 오가며 투병하셨다. 그러다가 이제 한 달도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때 병원에서 할머니와 제대로 말할 기회가 생겼는데 할머니가 아주 좋아졌다고, 잠시 퇴원해도 될 것 같다고 말씀드렸다. 예전에 내가 해주면 우리 손주가 끓여준 짜파게티가 제일 맛있다고 하시던 그 짜파게티를 다시 끓여주겠다고 했다. 전처럼 덜어주지 말고 다 드시라고도 말씀드렸다. 어차피 그렇게 말해봤자 여전히 절반을 덜어 내게 주겠지만.
내 말을 들은 할머니는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이셨다. 나는 마침내 곧 돌아가실 것 같다는 말만 제외하고 모든 진실을 섞어 거짓말을 성공시켰다. 할머니는 끝까지 알지 못했으리라. 실제로 잠깐 퇴원하기도 했지만, 몸이 너무 안 좋으셔서 끝내 짜파게티를 끓여주지 못했다. 그리고 한 달 좀 넘은 시간이 지난 후 응급으로 병원에 다시 들른 할머니는 일주일 뒤에 돌아가셨다. 돌아가시고 나서 나는 잠깐 의문이 들기도 했다. 과연, 할머니가 본인이 곧 떠날 것임을 모르셨을까.
돌아가신 다음 날 꿈에 할머니가 나왔다. 나는 할머니에게 고백했다. 사실은 다 말하고 싶었다고. 학교 다녀오면 재잘재잘 그날의 일들을 말해주는 그런 손주가 되고 싶었다고 말했다. 또 그동안 괜히 꿍하니 말도 잘 안 하고 있어서 미안했다고 했다. 요리도 제대로 할 줄 몰라서 라면이랑 짜파게티나 겨우 끓이는데 짜파게티 맛있게 먹어줘서 고맙다고 했다. 나는 주저리주저리 말이 많았지만 어째선지 꿈에 나온 할머니는 말없이 미소 지으며 고개만 끄덕였다. 그러고 아침에 일어나서 눈물을 훔쳤다. 어쩐지 꿈인데도 생생해서 지금도 제대로 기억하고 있다. 참으로 진한 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