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저녁
얼마 전이었다. 편의점 가판대에서 발견한 작고 귀엽게 생긴 남자아이. 아이는 두리번거렸다. 아이가 두리번거리는 모습을 잠시 지켜본 후 빠르게 고개를 돌렸다. 아이가 눈치채지 않게. 오래 바라보진 않았으니, 아이가 눈치채는 일은 없었다. 난 왜 고개를 돌렸지. 굳이 그럴 필요도 없었는데. 초등학교 3~4학년쯤 되었을까, 한 곳을 주시하던 아이는 다시 고개를 돌려 슬쩍 주위를 둘러보다 진열대를 바라봤다. 편의점에서 아이는 물건을 살 생각이 없어 보였다. 어떻게 그런 추측을 했냐고? 난 그 아이가 앞으로 뭘 할지 알 것 같았으니까.
어찌 모를까? 긴장된 표정, 두리번거리는 얼굴, 연신 카운터를 살피는 눈, 까닥거리는 손가락. 난 눈치가 없는 편이지만 선배로서 가지고 있던 직감이 대번에 눈치챌 수 있도록 도왔다.
잠시 예전 기억을 떠올리고 있다가 아이가 있던 가판대를 바라보니 벨 소리가 나며 아이는 나가고 있었다. 얼핏 보니 두 손은 비어 있다. 하지만 난 아이가 그냥 빈손으로 나간 게 아니라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아이는 알고 있었을까? 이제 CCTV가 있어서 당장은 성공했다고 해도 금세 아이를 특정해 낼 수 있다는 것을. 성공의 희열에 득의양양하여 재범을 준비했다가는 금방 아이의 손은 화가 난 표정의 점장에게 잡혀있을 것이다. 물론 CCTV가 없었다면 아이의 범행은 좀 더 오래갈 수도 있었을 것이다. 마치 나처럼.
옛날 기억은 늘 흐릿하다. 안개가 낀 것 같고 오직 자극적인 기억만 남아있다. 살던 집에 도둑이 들었을 때, 크게 주먹질하며 싸웠던 기억, 모르는 흰 러닝셔츠만 입은 어떤 아저씨가 꼬마였던 나를 무차별적으로 때렸던 기억, 처음 놀이공원에 갔던 기억. 좋든 싫든 여러 기억이 단편처럼 남아있다. 그래서 이 기억도 단편적이고 강하다.
그때
내가 숨 쉬는 것이 느껴졌다. 쿵쾅거리는 심장 소리가 그대로 귀에 박혀댔다. 그걸 아주 잘 느꼈지만, 신경 쓸 새는 없었다. 문방구 주인의 동태를 살피는 데 모든 집중력을 사용해야 했으니까. 나는 초등학교 앞 문방구점에서 너무나도 가지고 싶었던 BB탄을 쏘는 장난감 권총을 훔치는 중이었다. 나는, 어린 도둑이다.
초등학생인 주제에 초범도 재범도 아니었다. 이미 여러 번의 전과가 있었다. 아직 잡힌 적은 없다. 그랬기에 조금씩 대담해졌고 마침내 가장 가지고 싶었으나 부피가 커서 엄두를 내지 못했던 BB탄 권총이 든 종이 박스까지 손을 댄 것이다. 나는 초등학생치고는 덩치가 컸으니까, 박스는 좀 크지만 셔츠 안으로 쓱 집어넣고 나오면 모를 것이다. 물건을 고르거나 사는 애들은 많았기에 아이들이 주변에 뜸할 때를 기다렸다. 인내심을 가지고 아이들이 뜸한 순간을 노려서 박스를 내 셔츠 안쪽으로 밀어 넣었다. 이런, 한 번에 안 들어갔다. 셔츠를 벌리고 배 쪽으로 집어넣다가 셔츠에 걸린 것이다. 식은땀이 왈칵 났다. 문방구 주인 쪽을 슬쩍 쳐다보며 침착하게 셔츠를 더 벌리고 박스를 집어넣는다.
나는 마침내 성공했다. 사려고 했으나 살 게 없어서 아쉬운 표정을 지으며 이것저것 구경하면서 문방구를 나왔다. 천천히 발을 끌 듯이 걷다가 멀어질수록 점점 빨라졌고 마침내 힘차게 뛰어갔다. 몸이 불편했기에 전리품을 금세 셔츠 안에서 끄집어냈다. 해냈다. 마침내 내가 그리도 가지고 싶어 했지만, 생길 리 없을 거로 생각했던 BB탄 권총을 손에 넣었다. 이제 난 애들과 놀 때 꽤 으스대면서 보여줄 것이다. 그 당시 내 생각엔 앞으로 평생 얻을 수 없을 것만 같던, 나의 절도로 만들어낸 성과를.
처음 훔쳤던 게 무엇인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 문방구였을 것이다. 내 범행은 대게 문방구 아니면 동네 구멍가게가 전부였으니까. 그나마 구멍가게는 나중 일이고 몇 번의 절도는 모두 문방구였다. 문방구 아저씨는 언제나 지루한 듯 졸거나 TV를 보고 있었고 내가 가지고 싶은 것은 대부분 문방구에 있었다.
하지만 내가 원하는 것들을 가지거나 즐기기에는 항상 용돈이 부족했고, 가족들은 내가 원하는 돈 일부분도 주지 않았다. 아니, 용돈이라는 개념이 따로 없어서 뭐 필요하다고 할 때만 돈을 주셨다. 그래서 항상 부족하게 지냈던 것 같다.
문방구는 보물창고다. 달달하고 시큰한 불량 식품들, 문방구 앞에 조그만 나무 오락기에서는 쭈그리고 앉아 오락 게임을 즐길 수 있었다. 여러 가지로 바꿀 수 있는 뽑기 권, 조립 로봇, 달콤한 하드도 팔고 있었다. 젖과 꿀이 흐르는 천국이 눈앞에 있는데, 난 그것을 구경만 하다 나오곤 했다. 욕구만 많고 가진 게 없는 나는 자연스럽게 내 욕구를 채울 방법을 골몰했다. 그래, 가지고 싶다면 가지면 되잖아? 어째서 그런 식으로 결론이 나왔는지는 몰라도 결론은 빠르게 나왔다. 도덕이니 뭐니 하는 건 조금도 고려치 않았다. 아예 생각도 없었던 것 같다. 어떻게든 되겠지. 처음에는 작고 값싼 불량 식품 한 개. 그리고 두 개. 그리고 또 다른 작은 물품으로 하나. 그렇게 하나둘씩 늘어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내 일탈이 그리 길지는 않았다. BB탄 권총이라는 내 나름대로 가장 큰 범죄에 성공하고 난 후 난 그 이상은 아무래도 무리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래서 문방구에서의 행각은 멈췄다. 더는 무리라고 생각했던 것일까? 그건 모르겠지만 일단 가장 원했던 것을 가져서인지 무언가 거북하고 불편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이번에 마지막으로 먹고 싶은 것 하나만 가져가고 그만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문방구에 비해 아주머니가 운영하던 구멍가게는 한두 번만 일을 벌였지만 여기서 내 마지막 절도를 시도하기로 결심했다. 이번이 마지막이야, 이번이. 어느 정도 익숙하게 과자 하나를 배 쪽 티 안에 집어넣었는데, 들켰다. 순식간에 주인아주머니가 내 손목을 붙든 것이다. 도망치지 못하게 단단히 내 손목을 붙들고 크게 혼을 내셨다. 그분이 하는 말의 내용은 다 잊었지만, 그때 이야기를 듣다가 거울이란 대목에 퍼뜩 놀라 고개를 들고 가게 윗부분에 사각을 비추는 거울을 봤던 건 기억난다. 거울에는 진열대에 있는 내 모습이 있었다.
주인아주머니는 아무래도 저번에 과자를 훔친 게 나인 것 같았지만 설마 했기에 벼르고 있다가 또 시도하길래 잡은 것이라고 했다. 나는 절망에 휩싸였다. 난 이제 경찰 아저씨가 잡아갈 것이다. 감옥에 갇힐 것이다. 학교도 가지 못하고 가족들도 볼 수 없겠지. 이제 내 인생은 끝장날 것이 분명했다. 땀이 뚝뚝 떨어졌고, 몸이 떨렸다. 손목을 잡은 손을 물고 도망을 칠까? 하지만 시도하기엔 위치도 불리했고 하물며 집 근처 동네 구멍가게였다. 아주머니는 내 가족을 알고 있었다. 애당초 집 근처에서 하는 게 아니었는데, 아니, 아니다. 그게 아니었다. 그냥 하지 말아야 했다. 왜 그 생각이 이제야 드는 걸까. 그때였다. 아주머니는 어째선가(이제는 초등학생 아이여서 그랬다는 걸 알지만) 부모님께 밝히지 않을 테니 다시는 그러지 말라며 단단히 일러두는 것에서 그쳤다. 크게 안도하면서 가슴을 쓸어내렸다. 나의 절도는 그 이후로 완전히 멈췄다.
한참 시간이 지난 현재, 나는 그때 문방구의 사장님을 떠올린다. 과연 그 문방구 사장님이 과연 몰랐을까. 처음부터 안 건 아닐지 모르지만 어쩌면 나의 절도는, 사실 알면서도 사장님들의 이해로 넘어가 주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어째서, 그냥 어린 도둑에 불과했을 텐데 봐주셨던 걸까. 지금은 풀 길이 없는 의문일 뿐이다.
나는 도둑이다. 어린 도둑이다. 그리고 어쩌면 주인아저씨와 주인아주머니의 이해로 넘어갔던 건데 그것도 모르고 신이 났던 도둑이다. 그리고 크게 반성하고 회개(?)하여 범죄의 세계에서 돌아온 어린 탕아다. CCTV도 없던 어린 시절, 그저 어른의 이해도 모른 채 내 멋대로 살던 그 시절. 모든 것이 어렸던 그때가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