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정에게도 도시소설이 있었다

「따라지」, 사직골 셋방에도 흐르는 아리랑

챗지피티로 만든 이미지


김유정을 떠올리면 많은 사람들은 먼저 농촌을 떠올린다. 《동백꽃》의 산골, 《봄봄》의 촌락, 궁핍하고도 해학적인 농민들의 세계가 먼저 생각난다. 실제로 김유정의 대표작들은 시골을 배경으로 한 작품이 많다. 그런데 김유정에게는 농촌만이 아니라 도시의 가난과 도시 하층민의 삶을 그린 소설도 있었다. 바로 「따라지」이다. 이 작품은 1937년 발표된 단편으로, 사직동 꼭대기의 허름한 초가집 셋방을 무대로 방세를 둘러싼 갈등과 소동을 그린다.


이 사실이 새삼 흥미로운 것은, 김유정 문학의 본질이 사실은 ‘농촌’ 자체에만 있지 않다는 점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김유정이 진짜로 붙들고 있었던 것은 가난한 삶의 현장, 밀려난 사람들의 비애, 그리고 그 와중에도 기묘하게 살아남는 웃음이었다. 무대가 시골이든 도시든, 그의 눈은 늘 가장 낮은 자리의 인간을 향해 있었다. 「따라지」는 바로 그 김유정의 시선이 사직골 셋방으로 이동한 작품이다.


그렇다면 제목인 ‘따라지’는 무슨 뜻일까. 옛 사전에서 ‘따라지’는 먼저 키가 작고 왜소한 사람을 가리키는 말로 설명된다. 국립국어원 자료에 따르면 1920년대와 1930년대 사전에서도 ‘왜소한 사람’, ‘키가 작은 사람의 별명’으로 풀이되었다. 그러나 문학 작품 속에서 이 말은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단지 몸집이 작은 사람이 아니라, 세상에서 한몫 끼지 못하고 밀려난 사람, 보잘것없고 초라한 처지의 사람, 다시 말해 사회적으로 ‘작아진 사람’을 가리키는 뉘앙스가 짙다. 그래서 김유정의 「따라지」를 읽으면, 이 제목은 어느 한 사람의 체격이 아니라 그 셋방에 모여 사는 인물들 전체의 처지를 가리키는 말처럼 들린다. 다들 왜소하다. 몸보다도 삶이 왜소하다. 꿈보다도 형편이 왜소하다.


주인마누라는 악착같이 방세를 받아내려 하지만, 그 또한 생계가 달린 사람이다. 병든 노인은 추하고 성가셔 보이지만, 실은 죽어가는 몸으로 버티는 존재다. 아키코와 영애는 가볍고 요란해 보이지만, 그 역시 불안정한 도시의 밑바닥에서 하루를 연명하는 젊은 여성들이다. 톨스토이는 무능력하고 답답해 보이지만, 어쩌면 근대 도시가 품지 못한 청춘의 초상인지도 모른다. 이들은 모두 서로를 흉보고 밀치고 악다구니를 쓰지만, 사실은 다 같이 시대의 구석으로 밀려난 ‘따라지’들이다.


그 점에서 이 작품은 아주 도시적이면서도 동시에 몹시 아리랑적이다. 아리랑은 단순히 슬픈 노래가 아니다. 원망하면서도 아주 끊어내지 못하는 마음, 밉지만 또 같이 살아야 하는 삶, 울분과 체념과 질긴 정이 한데 얽힌 정서다. 「따라지」 속 인물들도 꼭 그렇다. 서로를 못 잡아먹어 안달하는 듯 보이지만 완전히 남이 되지는 못한다. 싸움판 속에서도 묘한 연민이 남고, 모욕 속에서도 희한하게 삶은 이어진다. 김유정은 그 서글픈 군상을 웃음 속에 담아낸다. 그래서 우리는 웃다가도 목이 멘다.


결국 「따라지」는 김유정이 농촌소설가에만 머무르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그는 도시를 낭만적으로 그리지 않았다. 오히려 도시의 셋방, 병든 몸, 밀린 방세, 구겨진 청춘을 통해 근대의 밑바닥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그 밑바닥에서도 사람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가장 초라한 자리에서도 인간의 희극과 비애는 함께 흐른다는 것을 들려주었다. 사직골 셋방에도 아리랑은 있었다. 김유정은 그 소리를 듣고 있었던 작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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