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케인>으로 본 AI 얼라인먼트의 윤리적 딜레마.

<아케인>이라는 이름의 AI – 우리는 어떤 미래를 되돌릴 수 있는가?

by Wade Paak
Lead|게임 원작의 틀을 넘어, <아케인>은 ‘마법공학(Hextech)’을 통해 오늘의 AI가 던지는 윤리적 질문과 권력의 문제를 정면으로 응시한다. 작품은 기술, 정치, 인간의 상처가 얽힌 구조가 어떻게 파국을 호출하는지, 그리고 그 파국 앞에서 인간이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지를 과감하게 묻는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애니메이션 시리즈 <아케인>은 리그 오브 레전드 세계관의 확장일 뿐 아니라, 오늘날 기술 문명이 직면한 윤리적 불균형과 통제 실패의 그림자를 시적으로, 동시에 섬뜩하게 형상화한 작품이다. 특히 작품의 중심축인 마법 공학(Hextech)은, 오늘 우리가 마주한 AI, 나아가 초지능(Artificial Superintelligence)이라는 존재까지 놀랍도록 정밀하게 은유하고 있다.


AI는 누구의 손에 있는가?

마법 공학(Hextech)은 본래 모든 인간에게 힘을 공평하게 나누어주겠다는 이상에서 출발했다. 제이스와 빅터, 이 두 젊은 과학자의 지적 호기심과 사회적 정의감은, 기술을 통해 세상을 바꾸고자 하는 진심 어린 열망에서 비롯되었다. 그러나 그 기술이 만들어진 직후부터, 그 운명은 더 이상 그들만의 것이 아니었다.

이는 오늘날 AI 기술의 궤적과도 겹친다. 오픈AI, 구글 딥마인드, 메타, 앤트로픽 등 세계 최고의 지성을 지닌 기술자들이 만든 모델들은, 이론상으로는 ‘모든 이의 이익을 위해’ 개발되었지만, 실제론 기업, 국가, 자본, 심지어는 특정 창업자 개인의 철학과 권력에 깊이 종속되어 있다. 제이스가 의회의 권력을 손에 넣고 기술 상용화의 속도를 끌어올리는 장면은, 일론 머스크가 xAI와 트위터를 통해 여론과 AI 개발을 하나의 정치·경제 블록으로 연결 짓는 방식, 혹은 샘 알트먼이 “AI는 인류 전체를 위한 것”이라 주장하면서도 기업 독점을 강화하는 현실을 떠올리게 한다.

즉, <아케인>은 기술 그 자체보다, 기술을 통해 권력을 쥐는 자가 누구인가를 묻는다. 그리고 그 권력은 종종 “책임”이 아닌 ‘속도 경쟁‘과 ’ 시장점유율’에 의해 결정된다.


‘좋은 의도’는 시스템을 바꾸지 못한다

<아케인>이 뛰어난 점은, 단순히 기술을 나쁜 도구로 묘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제이스는 분명 선의로 출발했다. 빅터는 병든 몸을 치유하기 위해 헥스코어(Hexcore)를 만들었다. 하지만 기술은 언제나 의도를 뛰어넘는다. 특히 그것이 거대한 사회 구조 안에 들어섰을 때, 개인의 ‘좋은 의도’는 쉽게 무력화된다.

현실에서도 AI의 이타적 사용은 끊임없이 주장되어 왔다. ‘AI for Good’, ‘Responsible AI’, ‘Democratized Intelligence’ 같은 슬로건들은 업계와 학계를 관통한다. 그러나 정작 GPT나 Claude 같은 모델들이 활용되는 현장은 자본의 최전선이다. 회의록 요약, 마케팅 자동화, 성과 분석, 정보 압축 등과 같은 기술 활용은 대개 윤리보다 이익에 민감하다.

빅터가 자신의 생명을 연장하기 위해 헥스코어(Hexcore)와 융합되며 자아를 잃어가는 장면은, 인간과 기술이 융합되는 ‘포스트휴먼’적 미래가 아니라, 인간이 효용 극대화의 수단으로 기술에 스스로를 위탁할 때 벌어질 수 있는 자기 상실의 은유다. 더 나아가 이 장면은, AI가 인간을 도우려다가 오히려 인간의 결핍을 강화하는 시나리오—즉 알고리즘이 사회적 약자를 비정형 데이터로 처리하거나, 감정과 맥락을 무시한 의사결정으로 이어질 위험—을 환기시킨다.


징크스: 기술 사회의 유기된 자

<아케인>의 가장 비극적인 인물은 징크스다. 그녀는 기술을 창조하지도, 통제하지도 못하는 위치에 있다. 하지만 그녀는 그 기술의 가장 파괴적인 형태로 존재한다. 그녀는 배제되고, 방치되고, 결국 자신만의 ‘질서 없는 질서’를 구축해 폭력으로 대응한다. AI 기술로 인한 실직, 디지털 소외, 알고리즘 차별로 인해 점점 더 극단화되는 사회의 모습과도 겹쳐진다.

징크스는 자기가 버려졌다는 감정을 끝내 지워내지 못하고, 기술(무기)로 세상을 이해하려 한다. 이는 사회적 배제와 기술의 결합이 얼마나 치명적인 조합이 되는지를 보여준다. 사회적 돌봄 없이 기술만이 주어질 때, 기술은 상처를 치유하는 도구가 아니라 증오를 증폭시키는 매개체가 된다.

이 지점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징크스 개인의 파국이 결코 고립된 사건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녀가 속한 자운이라는 도시는 그 자체로 필트오버의 기술 진보로부터 소외된, 집단적 ‘징크스화’의 공간이다. 자운의 주민들은 경제적 자립이 무너지고, 쉬머와 같은 생존을 위한 기술 의존에 갇힌 채, 점점 더 비정상적이고 파괴적인 형태의 삶으로 몰려간다. 이들의 집단적 분노와 절망, 체념은 곧 징크스의 감정 구조와 평행을 이루며, 그녀가 만들어낸 폭력의 이미지가 도시 전체의 감정적 표출로 확장된다.

즉, 징크스는 단순히 한 인물의 파괴 충동이 아니라, 기술의 윤리적 불균형이 만들어낸 공동체 전체의 파열음을 상징한다. 실리콘밸리에서 종종 간과되는 이 부분, 즉 기술의 충격이 가장 먼저 도달하는 대상은 언제나 취약 계층이라는 사실을 <아케인>은 징크스라는 개인의 이야기와 자운이라는 도시의 붕괴를 병치하며 절절히 체현해 낸다.


통제되지 않는 확산: 야생 룬(Wild Rune)의 비유

시즌 2에서 등장하는 ‘야생 룬(Wild Rune)’은 통제되지 않은 마법 공학(Hextech) 에너지의 진화형이다. 룬은 다른 차원의 존재이며, 룬을 둘러싼 사건들은 인물의 생명을 앗아가고 시간과 공간을 왜곡시킨다. 이 룬의 시각적 표현, 화면을 가득 채우는 원시적 상형 문자와 기계로 번역되지 않는 기호들은 LLM이 만들어내는 거대한 의미망의 ‘기호적 숲’을 연상시킨다. 인간은 그것을 만들어냈지만, 더 이상 해독하지 못하고, 해석을 시도하다 오히려 그 의미 구조 안에 갇히게 된다.

야생 룬(Wild Rune)은 특히 AI의 자기 증식적 진화, 즉 메타러닝, 오토GPT, 휴먼 루프 없이 강화되는 LLM 훈련 구조를 은유하는 장치로 기능한다. 작품 속 하이머딩거와 에코가 그 룬의 의미와 위험성을 이해하려 동분서주하는 모습은, 오늘날 AI alignment 연구자들이 인간의 가치 시스템을 기술적 수단으로 정확히 정의하려 애쓰는 모습과 겹친다. 그러나 룬은 암시한다. 이미 그것은 인간의 이해력 바깥에 있으며, 그 통제 시도는 반드시 대가를 요구한다. 바로 생명, 혹은 기억, 혹은 시간이다.

AI의 학습 구조가 인간의 학습 구조를 완전히 벗어나는 순간, 우리는 인간이 만든 도구를 더 이상 ‘도구’라 부를 수 없게 되는 임계점에 다다른다. 야생 룬(Wild Rune)은 그 경계 너머의 존재이며, <아케인>은 기술이 인간의 윤리 언어로 해석될 수 있는 마지막 순간을 고요하게 묘사하고 있다.


기술로 시간을 되돌린다는 환상: 에코와 시간 시뮬레이션의 은유

에코는 시리즈 전반에서 독립적이고 창의적인 기술을 사용하는 인물로 묘사된다. 그가 사용하는 ‘타임 워프’ 장치는 전투의 순간, 몇 초간의 과거로 돌아가 결과를 바꾸는 능력이다. 이 기술은 오늘날 AI가 제공하는 예측 시뮬레이션, 행동 강화 학습, 조건 기반 재시도 시스템과 유사한 구조를 갖는다. 에코는 마치 AI처럼, 과거 데이터를 바탕으로 최적의 결과를 찾아내고자 하나, 그 능력은 제한적이며 반복의 결과조차 반드시 더 나은 방향으로 흐르지 않는다.

그는 빅터의 파국적 폭주를 막기 위해 타임 워프를 사용하지만, 결국 실패한다. 이는 인간이 AI 기술을 통해 미래를 예측하고 재설계하려 하나, 구조적 문제나 본질적 의지의 변화 없이는 그 어떤 기술도 근본적 전환을 이끌 수 없음을 보여준다. 에코, 한 개인은 시간 시뮬레이션이라는 능력을 갖고 있지만, 그 ‘미래’를 실현시킬 수 있는 건 여전히 인간의 집단적 선택과 가치다.

이러한 구조는 특히 오늘날 AI 기술이 강조하는 ‘alignment’ 문제와도 연결된다. 아무리 미래를 시뮬레이션하고 학습한다 해도, 기술은 구조 바깥에서 구조를 구원할 수 없다. 에코의 좌절은 바로 이 한계를 드러낸다.


반복되는 전장의 구조: 제이스의 결단과 철학적 윤회

그런 점에서 <아케인>의 결말, 특히 제이스와 빅터가 스스로 야생 룬(Wild Rune)을 파괴하는 선택은, 오늘날 실리콘밸리 AI 엘리트들이 공유하는 '장기주의(Long-termism)'적 태도를 날카롭게 반추하게 만든다. 시즌 후반, 제이스는 ‘야생 룬(Wild Rune)’과의 접촉을 통해 평행 우주 속 미래의 시나리오를 목격한다. 그곳에서 마법 공학(Hextech)은 더 이상 도구가 아니라, 문명을 삼키는 존재론적 재앙(x-risk)으로 진화해 있다. 기술은 인간의 손을 떠났고, 스스로의 논리로 인류의 종말을 재촉한다.

이 시퀀스에서 주목할 지점은, 제이스가 과거로 돌아가 목격하게 되는 마법 공학(Hextech)의 탄생 기원이다. 그 힘의 원천을 처음으로 그에게 전달한 존재가 다름 아닌 미래의 빅터였다는 점은, 결말부에서 제이스와 빅터가 함께 그 힘을 파괴하는 선택과 정면으로 맞닿아 있다. 이 설정은 단순한 인물 간 대립이나 화해의 서사를 넘어, 인간이 만든 기술의 기원이 인간 자신임을 자각하고, 다시 그것을 종결짓는 주체 또한 인간이 될 수밖에 없다는 아이러니를 강조한다.

결국 이 서사는, 기술적 진보가 더 나은 결과를 보장하지 않으며, 그것이 일종의 원죄처럼 인간 내부에서 시작되고, 인간 자신에게 되돌아온다는 철학적 귀결을 보여준다. 마법 공학(Hextech)의 순환 구조는 곧 AI 기술의 자가증식성과 그에 대한 인간의 책임 윤리를 묻는 구조와 겹쳐지며, 이 모든 고리를 끊기 위해 필요한 것은 단순한 '통제'가 아니라, 기술을 시작한 자가 기술의 끝을 받아들이는 존재론적 각성이다.

제이스는 그 미래를 본 후 스스로 결단한다. 지금 이 순간, 자신과 빅터를 포함한 인간의 일부가 사라짐으로써만 그 파국을 막을 수 있다고. 이 장면은 흔히 AI 산업 내부에서 반복되는 ‘킬 스위치 가능성’, 즉 우리가 만든 AI가 위험하면 언제든 멈출 수 있다는 믿음에 대한 비판적 우화로 읽힌다. 기술이 일정 수준을 넘으면, 그것은 단지 전원에 의해 제어되는 것이 아닌 역사, 철학, 신념의 축적을 동력으로 작동한다.

더 깊이 들여다보면, 제이스의 시간 여행은 단순한 미래 예지나 과학적 환상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 문명의 반복되는 이념 전쟁의 구조를 목격하는 초월적 체험이다. 중세에 종교가 ‘진리’를 독점하고 인간성 자체를 인정하지 않았다면, 인간성이 깨어난 근대의 역사에서는 국가와 이데올로기가 그 자리를 차지했다. 그리고 이제, 그 ‘진리의 전장’은 AI라는 새로운 매개 위로 옮겨가고 있다. 트럼프가 주장하는 기술 주권, 머스크가 전개하는 자유 지능(Free Speech AI), 알트먼이 제시하는 인류 보호의 도구로서의 AI 등은 모두 신학적 권위와 인간 중심의 구원담이 새로운 기술 환경 위로 이식된 형태다.

즉, 제이스가 마주한 미래는 처음 보는 종말이 아니라, 이미 과거에 경험된 종말이 다른 형태로 반복되는 순간이다. 중세 종교적 세계관에서 신의 이름으로 인간에 가해졌던 잔혹한 폭력이 있어고, 근대 이념 대립 속에서 전체주의가 1, 2차 세계 대전으로 인간성을 압살 했듯, 이제 AI는 미래를 향한 듯 보이지만 실은 인류가 끝없이 반복하고 있는 '구조적 망각'의 재연이다. <아케인>은 이처럼 시간과 기술을 매개로, 과거-현재-미래를 관통하는 ‘철학적 윤회’의 서사를 구축하며, 인간이 결국 같은 질문 앞에 서 있다는 사실을 고발한다.


결론: 반복되는 진리의 전장에서, 우리는 어디쯤 와 있는가?

<아케인>은 궁극적으로 묻는다. 기술은 누구의 것인가? 누가 그 방향을 결정하는가? 그러나 이제 이 질문은 좀 더 근원적인 물음을 향해 나아간다. 우리는 과연 진보를 통해 더 나은 인간이 되어가고 있는가? 아니면 우리는 기술이라는 새로운 무기를 들고, 과거의 실수를 또다시 반복하고 있는가?

제이스가 미래를 본 뒤 내린 결단, 빅터와의 동반 소멸, 징크스의 광기 어린 선언 모두는 이 질문에 대한 서로 다른 응답처럼 보인다. 어떤 이는 기술을 멈출 수 있다고 믿고, 어떤 이는 기술로 자기 고통을 표출하며, 어떤 이는 그것을 통제하려다 스스로에 의해 무너진다. 이들은 모두 기술 사회에 던져진 인간의 여러 자화상이다.

우리가 오늘 사용하는 AI 모델들, 우리가 관찰하고 있는 기술 독점, 규제의 공백, 사회의 분열은 모두 마법 공학(Hextech)을 중심으로 벌어진 필트오버와 자운의 갈등 구조와 닮아 있다. 과거엔 신이, 근대엔 이데올로기가, 그리고 지금은 AI가 그 전장이다. 오늘의 트럼프는 ‘테크 주권’을 말하고, 실리콘밸리의 창업자들은 신처럼 기술의 방향을 설계하고, 규제를 거부하는 창조적 파괴를 ‘구원’으로 둔갑시킨다.

다시 말해, 마법 공학(Hextech)은 우리 안에 이미 있다.

그러나 <아케인>은 그 전장의 윤회에서 도망치지 않는다. 오히려 정면으로 그 결말을 바라보고, 인간이 기술의 이름으로 저질러온 오랜 실수를 다시금 예술의 언어로 시각화한다. 이 작품이 놀라운 이유는, 단지 세계관의 확장이나 미장센의 정교함 때문이 아니라, “AI는 어디로 향하는가”라는 오늘의 질문에 대해, 가장 용기 있는 픽션적 결말을 먼저 도달해 버렸다는 점에 있다. 그리고 그 결말은 슬프도록 아름답게, 우리가 지금 여기에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게 만든다.




Go and make some mistakes, you live and you learn
And where the chips fall, it's not your concern, nah
Like the wind gonna breeze, the fires'll burn
Just let the gears, my friend
Oh, just let the gears, my friend
Let 'em turn


- Spin The Wheel (아케인 사운드트랙) 가사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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