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직장인의 하루

by 별빛

인간은 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나는 어젯밤도 새벽 두 시에 잠들었다.


7am. 알람이 울린다. 눈을 감은 채 스누즈를 다섯 번 누르고, 나중에나 발견할 잠금화면 스샷을 몇 장 남기다 7:30am이 돼서야 눈을 뜬다.

온몸이 멍든 것처럼 아프다. 1분이라도 더 자겠다는 의지가 온몸을 짓누른다.


‘출근은 왜 해야 하지?’

자본주의의 심장부에서 그 체계를 부정하는 질문을 던진다. 데일리 팟캐스트를 틀고 에스프레소를 내리며 하루를 시작한다. 세수부터 옷 입기까지 총 준비 시간은 15분. 남은 3분 동안 데운 빵에 크림치즈를 발라 입안에 욱여넣는다.


8:15 am. Hybrid 규정에 묶인 노동자(=나)는 주 3회 출근한다. 섬에 살다 보니 관광객에겐 볼거리, 내게는 생계 수단인 케이블카를 타고 육지로 향한다. 도착하자마자 뛰어간 환승 지하철은 역시 부대끼는 직장인들로 가득하다. 내 마음 그러하듯, 회사 가는 뉴욕 직장인의 길을 지연시키는 사람이나 사물은 욕먹을 각오를 단단히 해야 한다.


뉴욕 회사에 처음 취직했을 땐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나 『인턴』 같은 환상이 있었다. 막상 살아보니 상류층이 아니고서야 렌트 (뉴욕 원베드 평균 렌트비 최소 월 600만 원)를 내기도 버거운 직장인이 그렇게 팬시 하게 입고 다니긴 어렵다 (영화 속에선 옷을 렌트했다지만). 특히 코로나 이후 미쳐버린 인플레이션 탓에 출근길 손엔 도시락이나 보온병이 더 흔하다.


9am. 출근하자마자 하루를 살아내기 위해 커피를 (또) 내린다. 여러 회사를 다녔지만 ‘회사 커피 = 맛대가리 없음’이라는 공식은 어딘가 법으로 규정되어 있음이 분명하다 (참다못해 최근에 이디야 커피봉지 100팩을 샀다).


이직한 지 반년 차, 쉴 새 없이 흘러드는 정보를 캐치하느라 에너지가 급속도로 소모된다. 아침엔 미팅이 줄줄이 잡혀 있어 받아 적고 브리핑하느라 정신이 없다. 일은 흥미롭지만 상사가 너무 힘들어 미니 심장마비의 연속인 요즘. 회사 생활을 하면 별의별 사람을 만난다지만... 초반엔 독설을 견디기 어려워 주 3일 화장실칸 안에 쪼그리고 앉아 울었다. 시간이 갈수록 일을 조금씩 따라잡기도 했고, 예상되는 독설에도 면역력이 생겨 눈물의 변기를 마주하러 가는 횟수는 줄었다.


12pm. 직장인들의 점심시간이다. 디렉터가 열일 중인 와중에 누가 먼저 점심을 말 꺼낼지, 굶주린 배를 부여잡고 슬슬 눈치를 본다. 30분 남짓 지났을까, 결국 내 배가 못 참고 꼬르륵거리기 시작한다. 재빨리 뭐라도 입에 넣으러 밖으로 뛰쳐나간다. 점심은 직원 할인이 되는 샐러드바에서 모바일 오더 시킨다. 이따위 풀떼기론 양이 안 차지만, 하루 종일 의자에 앉아 시간을 보내니 최소한의 양심이다.

점심시간은 대개 각자의 자리에서 일하거나 뉴스를 훑으며 보낸다. 밖에서 온전히 한 시간을 채우는 일은 드물다. 팀 헤드가 그러지 않으니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매번 느끼지만 점심시간은 너무 짧다.


2pm. 오늘은 “Good afternoon”으로 시작하는(그리고 그 ‘noon’에 주가가 폭락하는) 파월 연준 의장의 연설이 있는 날이다. 두 시 정각, 5미터 반경의 직원이 모니터 왼쪽엔 영상을, 오른쪽엔 메모장을 켜고 들리는 말을 모조리 받아 적기 시작한다. (문득 궁금해진다. Good afternoon도 적었을까?) 나는 다른 미팅이 있어 듣지 못한다. 괜찮다. 어차피 한두 시간 뒤 요약본이 전체 이메일로 날아온다.

고금리 시대. 연준의 금리 결정 여부로 뉴스가 쏟아진다. 금리 인상 여파를 잠시 떠올리다 고개를 한 번 흔들고 다시 모니터로 돌아간다.

‘아… 그나저나 내가 뭘 하고 있었더라?’


3pm. 사내 중요한 데드라인이 다가올수록 모두가 예민해지니 거슬리지 않도록 말과 행동을 조심한다. 에너지 레벨을 저절전 직장인 모드로 바꾸고 무표정으로 일한다. 옆에서 명령이 끊임없이 떨어지고, 줄 미팅을 하다 보니 시간이 정신없이 흐른다. 엑셀이 한순간에 꺼지지 않도록 조심조심 다룬다. Ctrl+S는 습관이라 작업물 손실 위험은 낮다. 외려 어그러진 수식을 그대로 저장했다가 통으로 날리는 경우가 더 많다. 그럴 때마다 무음으로 ‘fuck’을 읊조린다.


4:30 pm. 재무책임팀을 상대로 우리가 만든 보고서 관련 프레젠테이션을 할 때마다 심장이 떨리고 머릿속이 하얘진다. 그 프레젠테이션은 매 달 있고 나는 매 달 속으로 빈다. '나 시키지 마라, 제발.'

하... 뽑혔네.

노트패드를 켜고 스크립트를 쓴다. 중얼중얼 읽고 수십 번 고친다. 집에 가고 싶다.


6pm. 상사가 “너무 늦게까지 일하지 말고 내일 아침에 보자”를 시전 하며 퇴근한다. 내일까지 끝내려면 밤을 새야 한다. 상사가 떠나자마자 한숨을 몰아내 쉬며 마음속에 새겨 둔, 출처 모를 문장을 되새긴다.

["다 잘될 거야"보다 "망하면 어때, 시발"이 더 위로가 된다.]

누가 쓴 지는 몰라도 같이 술 한잔하고 싶다.


7pm. 프로 야근러의 잡생각이 시작된다.

어릴 적엔 직장인들이 컴퓨터로 뭘 그렇게 하는지 궁금했다. 직장인이 된 지금도 풀리지 않는 궁금증이 있다. 회사의 미래를 볼 때 향후 1~2년 전망과 관련 분석은 분명 필요하지만, 3년 후를 전망하는 코멘트는 불확실함이 너무 커서 정말 도움이 되나 싶은 생각을 떨칠 수 없다. 지난 3년을 돌아보면, 우리는 팬데믹도, 저금리에서 인플레이션·고금리로의 전환도 예측하지 못했다. 즉, 우리는 이 지랄 맞은 변동성의 반에 반에 반도 예측하지 못할 것이다. 그럼에도 이게 프로세스로 자리 잡았다는 건, 이렇게 많은 인력을 쓰더라도 회사엔 어떤 식으로든 유의미하다는 뜻이겠지. 워낙 큰 회사이기도 하고. 가만 생각해 보니 대기업의 overhead(간접비)에 속한 직원 주제에 선 넘은 생각이다.


8pm. 배고프다. 눈도 아프고 숫자도 눈에 안 들어온다. 같은 라인을 반복해 읽는다.

아무래도 안 되겠다. 집에 가서 하자.

회사 밖을 나오니 밤공기가 뺨을 어루만진다. 관광지와는 조금 동떨어져 조용한 곳이라 늦게까지 장사하는 상점들의 간판 불빛들 만이 일렁인다.

왠지 자유가 된 듯한 순간을 더 느끼고 파, 지하철 대신 케이블카 타기를 택한다.

집에 가는 길은 늘 터덜터덜 천천히 걷는다. 아침의 기력을 다 써버린 탓도 있지만, 일만 하다 밤이 되어버린 게 아쉬워서다.

열몇 블록을 걸어 아침과 대조되는 텅 빈 케이블카를 탄다. 흘러넘치는 생각을 잠재우려 최대한 먼 곳에 초점을 두고 멍하니 창 밖을 바라보니 눈에 담기는 것들.

잠들지 않는 도시의 원흉인 야근 중인 사무실의 형광등, 꼬리에 꼬리를 무는 차들의 붉은 브레이크등, 끝없이 줄지어 선 노란 가로등.


유독 힘들었던 날엔 ‘패닉의 달팽이’를 튼다.

‘집에 오는 길은 때론 너무 길어/ 나는 더욱더 지치곤 해.’

인생이 항상 무탈하길 바란 건 아니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뜻대로 안 되는 것에 부딪힐 때마다 나는 하염없이 쪼개져 곧 밟히거나 파도에 휩쓸릴 작은 모래알이 된다.

나이와 달리 내가 삶을 헤쳐 나가는 능력이나 견뎌냄을 보면, 나는 참 애매한 어른이다. 코흘리개 시절 정의한 어른은 지금처럼 매주 눈물로 밤을 지새우는 약한 존재가 아니었다. 어려운 일도 척척 해결하는, ‘look up to (존경심을 갖고 보고 배움)’ 할 수 있는 존재였다. 더불어 집도, 차도, 가족도 있는. 그러니 여전히 막연한 두려움을 안고 사는 지금의 나는 그때 정의한 ‘어른’에 부적격하다는 생각에 나를 끊임없이 의심한다. 기회주의·성과주의·자본주의 도시에서 사회생활을 겪어 봤음에도, 이 험난한 세상을 어떻게 헤쳐 나가야 할지 아직도 모르겠다.

어른에게도 어른이 필요하다.

나는 그 잔소리가 필요하다.


집에 다 와 간다. 배를 채우겠다는 생리적 욕구에 발걸음이 빨라진다.


9pm. 집에 오자마자 신발과 가방을 내던지고 냉장고로 달려간다.

‘치킨을 먹을까, 샐러드를 먹을까? 치킨은 살찌는데… 아니야, 오늘 열심히 일했잖아. 그리고 또 일할 거니까.‘

정신승리한 답정너가 전자레인지에 치킨을 넣고 데운다.

1:00, 0:59, 0:30, 0:15, …. 1분이 생각보다 기네.

문득 오늘 물을 한 모금도 안 마셨다는 걸 깨닫고, 의무적 수분보충을 위해 냉장고를 다시 연다. 그렇게 제로 콜라를 꺼내 마신다. 인생이 원하는 대로 흘러가지 않는 건 어쩌면 이런 자잘한 모순적 행동에서 비롯되는 걸지도 모른다.

치킨을 뜯으며 오늘의 사건·사고 브리핑을 본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다는 breaking news에 이어 연달아 발표되는 EU 입장, 미국 입장, 주요 나라들의 개탄스럽다는 입장.

전쟁이라. 이 모든 것의 근원은 욕심일까. ‘고작 나‘로선 이해할 수 없다. 경제적 배경을 검색하다가 이내 포기한다 (결국 나중에 찾아보긴 했다). 지금은 지식의 shortage보다 내 하루의 shortage 더 급하다.


10pm. 샤워도, 설거지도, 내일 출근 준비도 해야 하지만 일이 급해 다시 컴퓨터 앞.


1:30 am. 졸려 죽을 맛. 나머진 일찍 일어나서 하자. 나는 기꺼이 ‘먹고 누우면 지는 게임’의 패자가 되기로 한다.


2am. 아쉽다. 이렇게 허무하게 하루가 저무는 게 아쉽다. 직장에선 고군분투했지만, 나 개인의 삶은 없었던 아쉬운 하루들이 쌓여 1년이 됐고 몇 년이 됐다. 줌인해서 하루를 보면 내 하루는 한 치 앞도 모르는 요즘의 주식시장 같고, 줌아웃해서 연 단위로 보면 이런 쳇바퀴 같은 일상이 날 평범한 무채색의 직장인으로 만든다. 긍정적으로 보자면 눈에 띄지 않는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역할, 즉 엑스트라 역할을 톡톡히 해내는 중이다.


현재. 내가 느끼는 뉴욕살이는 혹독하다. 동시에 낭만이다. 혹독과 낭만 사이의 좌표는 현재 업무 강도에 따라 시시때때로 움직이겠지만, 요점은 이곳에서 ‘빡세게 살기 위한 필수 요소’를 배제하고 ‘감성 넘치는 뉴욕살이’만 골라 느낄 순 없다는 것.

그래도 주말만 되면 여기저기 파헤치며 애정을 쏟는다. 세일즈 택스 (8.8%)와 팁 (20%) 앞에선 마음이 빠르게 식지만.

이 도시의 미친 물가를 겪고도 아직 생존해 있음에, 오늘의 나를 토닥인다.

이곳에서 살아냈으니 어디서든 살아낼 수 있을 것 같은 기분도 든다.


벌써 가을이 다 갔다.

뉴욕은 가을이 제일 예쁜데. 일–집–일–집 하느라 단풍은 구경도 못했다.

아무렴,,

고생했다. 오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