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에서 맛있는 고구마가 도무지 안 보여 어디 가야 살 수 있는지 물어본 적이 있다. 예상 밖의 답이 돌아왔다.
“아직 제철이 아니라 잘 안 보일 거예요.”
검색해 보니 고구마의 수확철은 가을. AI가 세상을 휩쓰는 시대에도 과일과 채소는 여전히 제철의 법칙을 따른다. 하긴, 제철에 난 것이 수확량도, 맛도 낫겠지.
원래도 좋아하던 가을인데, 입 안 가득 고구마를 우물거리며 다음 고구마의 껍질을 까고 있는 내 모습이 그려졌다.
그러고 보니 딸기의 철은 겨울이었던가. 처음으로 제철에 맞춰 과일을 먹어 보고자 하는 욕심이 생겼다. 겨울 냉장고를 딸기로 가득 채워 놓고, 동면에 들기 전 만반의 준비를 한 땅다람쥐 같은 미소를 짓는 내가 그려졌다.
요즘은 미래를 그리는 게 버거워 손을 놓은 상태였다. 좌절감이 나를 집어삼킬 때마다 대화나 글쓰기로 벗어나 보려 했는데, 지금 제철 과일과 채소 하나로 가을과 겨울을 단숨에 그렸다. 원래도 아주 사소한 것들 (맛있는 거 먹기 포함)에 쉽게 행복을 느끼긴 한다만… 나는 생각보다 더 단순한 사람일지도 모르겠다.
가라앉기만 하는 나에게 지쳐 더 빨리 무너질 줄 알았는데, 의외로 잘 버티고 있다. (적어도 이젠 딸기를 먹으려면 겨울까지는 버텨야 한다.)
조만간 나의 고독한 해외살이를 지탱하는데 한몫하던 가까운 사람이 곧 뉴욕을 떠나지만, 어쩌면 또 다른 이와 가까워질지도 모른다는 긍정회로를 슬픔이 닥치기 전에 일단 돌리고 본다. (물론 집 밖을 나가야겠지)
어제 밖을 나갔다가 좋아하는 복숭아가 파격세일 하길래 잔뜩 담아왔다. 역시나, 지금이 복숭아 제철이란다.
기다리던 계절은 동시에 지금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