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시간이고 글 쓰는 걸 좋아한다. 오랜 시간을 들인 것 치고의 결과는 귀여운 몇 줄들 뿐이지만.
무언가를 글로 남기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 쓰는 건 단숨에 쓸 수 있지만 그걸 수정하고 덧붙이는데 최소 두세 시간을 쓴다. 요 며칠 밤새도록 책만 읽다 보니 나도 글을 쓰고 싶다는 마음이 솟구쳤다. 더군다나 (아직 책에서 헤어 나오질 못했는지) 모든 행동이나 사건들이 머릿속에 지문처럼 떠오르기 시작해서 ‘내가 드디어 미쳐버린 건가 싶었다.’ —처럼 n인칭 시점으로.
이 현상을 친구한테 설명하려고 나의 실화 하나를 공유했다.
——
새벽 5시. 우리는 스페인의 오래된 광장이자 역사적인 길의 시작점에 있었다.
"여기까지네"
"왜 이렇게 아쉬운지 모르겠어. 겨우 삼일 남짓이었는데"
"꽉 채웠잖아. 정들기에 충분한 시간이지. 그리고 또 볼 거잖아, 너무 아쉬워하지 마"
"마지막으로 한 번만 안아보자"
안는 순간 확신했다. 뉴욕에 돌아가서도 지금을 그리워할 거란 걸
얘기를 더 나누고 싶었지만 나는 시간이 얼마 없었다.
마음이 물었다. ‘귀국표를 포기하고 며칠 더 있을까?’
머리가 답했다. ‘각자 이어가야 하는 삶이 있어. 감정에 쉽게 휩쓸릴 수 없는.’
까치발을 들었던 나의 발 끝이 바닥에 닿았고 마주 본 그에게 살짝 웃어준 뒤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다. 지난 며칠간 매일 걸으며 익숙해진 그 길이 어색하게 느껴졌다.
뒤돌아보면 안 돼.
뒤돌아보면 안 돼.
내 뒷모습이 어둠에 가려 안 보일 때까지 그가 나를 응시하는 게 느껴졌지만 뒤돌지는 않았다.
그렇게 또 하나의 작은 이별이 생겼다.
(외전. 6개월 뒤에 한국에서 만나서 성수동 빵집 뿌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