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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의 틈새

by 별빛

화자와 청자 모두 위로와 투덜댐 사이 어딘가에서 균형을 잡고 있었다. 어느 한쪽이 우세했다면 피곤했을지 모르지만, 그 경계 위에서 주고받는 말들은 묘하게 편안했다.

“이 정도 생각쯤은 나눠도 괜찮겠지” 하는 마음으로 이어가던 대화 속에서 모처럼 실소가 연속으로 터졌다.

빈틈만 보이면 농담을 던지고 싶어 머릿속으로 예상 답변과 드립을 미리 배열하다 보니 잠시 두뇌가 과부하에 걸리기도 했다.


곧 여행을 떠나는 그가 이미 그곳을 다녀온 내게 물었다.

“그곳은 어땠어요?”


감아둔 시계태엽을 풀자 기억들이 자석처럼 달라붙으며 그날이 다시 살아났다. 밀려드는 감정들 중 일부를 꺼내어 조심스레 묘사했다.


곧 이어진 질문.

“지나온 여러 시절 중, 어느 때가 가장 좋았어요?”


각 시절의 시계태엽을 풀며 생각했다.

‘그땐 이게 좋았지만 저게 힘들어서 싫었지.’

계속되는 양가감정의 망설임 속에 공백이 길어져 질문을 되돌렸다.

“혹시 먼저 얘기해 줄 수 있어요?”


나와는 비교도 안 되게 치열한 삶을 보낸 그 역시 고민하며 인생의 굴곡들을 나열하더니 이내 결심한 듯 말했다.

모든 시기가 다 좋았다고. 힘들었지만 다시 살아봐도 괜찮을 거라고.


지나온 삶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그의 태도 앞에서 무슨 말을 더할 수 있을까. 앞전에 망설이던 나의 속마음이 부끄러워졌다.


단단히 쌓아둔 벽돌 틈 사이로 이어지는 대화 속 나는 어른이기도 했고 아이이기도 했다.

어떤 말은 삶을 비추는 작은 거울 같았고,

어떤 말은 유치하기 짝이 없어 이걸 2절까지 해야 할지 고민했다.


숨통이 트였다. 내가 이런 대화를 얼마나 그리워하고 있었는지를 깨달은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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