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리팩스에서의 삶
그 당시 초등학교 4 학년이였던 저의 삶의 방향이 조용히 틀어졌습니다.
익숙했던 거리, 반복되던 하루들,
작은 것까지 설명하지 않아도 알아주던 사람들.
모두 뒤로하고,
지도 한쪽 끝에 있는 도시 할리팩스로 오게 되었습니다.
이곳은 캐나다 동쪽 끝에 있는 바닷가 도시입니다.
조용하고 바람이 자주 붑니다.
가끔은 바람 소리만 들리는 날도 있어요.
그럴 땐 마음도 따라 조용해집니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땐
내가 투명한 사람처럼 느껴졌습니다.
복도 한쪽에 서 있기만 해도
나를 아무도 보지 않는 것 같은 기분.
말을 걸어야 할지,
눈을 마주쳐도 괜찮을지,
모든 게 조심스러웠습니다.
영어로 질문을 받는 순간엔
심장이 한 번 ‘쿵’ 하고 내려앉았습니다.
내가 아는 단어가 맞는지,
지금 이 표정이 어색하지는 않은지.
머릿속에서만 수백 번 연습한 문장들이
입 밖으로는 좀처럼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 낯섦 속에서, 저는 천천히 나를 알아가는 중이었습니다.
매일을 살아내다 보면
언젠가 익숙해지는 순간이 찾아옵니다.
그건 갑자기 오지 않고,
아주 사소한 장면들에 숨어 있더라고요.
누군가의 인사에 나도 모르게 웃게 되었을 때.
같은 농담에 같이 웃을 수 있게 되었을 때.
어느 날, 친구가 말했습니다.
“너 진짜 웃겨. 너랑 있으면 기분 좋아져.”
그 말 한마디가 오래 마음에 남았습니다.
익숙해진다는 건,
어쩌면 내가 누군가의 일상 속에 들어왔다는 증거일지도 모릅니다.
요즘은 미래에 대해 자주 생각하게 됩니다.
비자 문제처럼
어떤 결정이 내 손 밖에서 이뤄지는 일들.
그 앞에서는
아무리 오늘을 잘 살아도
한 발짝 뒤로 물러나게 되는 감정이 생깁니다.
‘어떡하지?’
‘무슨 일이 생기면, 어디로 가야 하지?’
정해진 게 없다는 사실이
불안과 맞닿아 있을 때,
마음은 쉽게 흐트러지곤 합니다.
하지만 생각합니다.
불안도 삶의 일부라고.
내가 자라는 과정 중 하나라고.
예측할 수 없는 미래 속에서도
내가 나답게 걸어가는 법을
조금씩 배워가고 있습니다.
가끔은 사람들 앞에서 웃고,
집에 돌아오면 멍하니 창밖을 바라봅니다.
그런 제 모습을
저는 ‘나무’ 같다고 생각합니다.
햇빛이 따뜻한 날은 웃고,
비가 오는 날은 조용히 자라고,
아무 일 없는 날에도 그 자리에 서 있는.
지금 이 시간을 ‘버티는 시간’이 아니라
‘단단해지는 시간’으로 받아들이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오늘도 저는
작게 웃습니다.
그게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예쁜 방식이니까요.
눈이 오는 날의 고요함,
점심시간에 나누는 친구들과의 수다,
익숙해졌지만 여전히 낯선 학교,
그리고 불쑥 떠오르는 한국의 기억들.
그 모든 순간들을
브런치에 천천히 써내려가 보려 합니다.
누군가에게는 작은 공감으로,
또 누군가에게는 조용한 위로로 닿을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우리 모두,
자기만의 속도로 잘 자라가고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