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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귤 Jan 28. 2017

거침없는 그녀를 만나다.

매기스 플랜(Maggie's Plan)

<매기스 플랜>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Maggie

매기(그레타 거윅)는 섬세하고 배려심이 깊다. 타인이 자신의 도움이 필요하다면 망설임 없이 도와준다. 이 행동은 진심이 깃들어있다. 대가를 바라지 않는다. 오히려 누군가를 도와줄 수 있음에 행복을 느끼고, 더 나아가 책임감까지 갖고 있다. 주위 사람들은 그런 매기에게 "넌 너무 오지랖이 넓어.", "넌 알아서 잘하잖아."라고 반응한다. 나쁘게 말하면 호구 취급을 한다. 점점 매기는 자신의 한계를 느끼고, 다른 사람의 도움이 필요해진다. 하지만 주변 사람들은 '뭐든 알아서 잘하는'매기의 도움 요청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매기를 보고 있자니 '아낌없이 주는 나무'가 생각난다. 아낌없이 주는 나무는 아무런 대가를 바라지 않고 주는 것에서 행복을 느끼는 나무와, 어린아이의 맑고 순수한 마음으로부터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이기적으로 변해가는 소년이 결국은 자신이 등졌던 나무에게로 다시 되돌아 간다는 이야기이다. "옛날에 나무 한 그루가 있었습니다. 소년은 나무를 무척이나 사랑했습니다. 나무는 소년의 행복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아낌없이 내주었고, 소년이 청년이 되고, 노인이 될 때까지 나무는 여전히 그곳에서 아낌없이 자신의 모든 것을 내주었습니다." 그렇게 매기도 노인이 될 때까지 아낌없이 자신의 모든 것을 내주었습니다……. 다행히 영화는 이렇게 전개되지 않는다. 매기는 자각한다. 솔직히 이건 너무 심하잖아! 이럴 줄은 몰랐어!


John

매기는 착하고 남을 도와주려는 천성을 가지고 있지만, 세상 사람 모두를 위해 희생하는 게 아니다. 매기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한정적이다. 그 사랑의 중심엔 '존(에단 호크)'이 있다. 존은 인류학을 강의하는 대학교수로 소설을 쓰고 있다. 우연히 서로를 알게 된 두 사람은 매기가 존의 소설에 정성스럽게 피드백을 해주며 가까워진다. 인생은 타이밍이다. 존이 누군가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할 때, 매기가 나타났다. 에단 호크는 인터뷰에서 존을 이렇게 소개한다. "‘존’은 마음 한구석에 갇혀 있는 인물이에요. 자신의 인생이 아내 ‘조젯’의 그늘에 가려져 있다고 느끼죠. ‘조젯’은 결혼 생활을 통해 자기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얻고 있지만 ‘존’은 길을 잃고 헤매며 인생의 교차로에 서 있는 인물입니다." 그 교차로에서 동행자 매기를 만났다. 목이 마르면 물을 주고, 힘이 들면 할 수 있다고 응원을 해주는 영원한 서포터스 매기를 만난 것이다.


어른 아이인 존은 매기와 결혼한 후, 매기에게 과도하게 의지한다. 어떠한 일 하나를 책임감 있게 처리하지 못한다. 딸 릴리의 '아빠'로서, 매기의 '남편'으로서, 소설을 쓰려는 '자신'으로서 자격미달이다. 이런 존의 역할을 모두 매기가 감당한다. 나눠서 할 몫을 무리하게 혼자 맡으니 과부하가 걸린다. 정작 매기가 해야 할 일을 하지 못하고, 존의 뒤치다꺼리만 하는 셈이다. 존은 모른다. 매기의 노력을 헤아리지 못하고 당연하게 생각한다. 그래서 존은 당당하고 변함이 없다.


Maggie's Plan

매기의 (대담한) 계획은 두 가지다. 첫 번째, 혼자 아이를 낳는 것. 결혼하지 않고, 남편이라는 존재 없이 아이를 낳겠다고 다짐한다. 이를 위해 대학 동창의 정자도 받았다. 그런데 상황은 매기가 계획한 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우연히 시작된 존과의 만남, 예상치 못한 존의 고백, 멈출 수 없는 존과의 사랑, 결혼, 출산, 딸, 가족……. 아내, 엄마, 새엄마로서 매기는 자신이 꿈꾸던 삶을 살지 못한다. 그래서 대담하며 발칙한 두 번째 계획이 시작된다.


존을 다시 전부인 조젯(줄리안 무어)에게 보내는 것이다. 존과 조젯은 이혼을 했지만 지속적으로 연락을 하며 쿨하게 지냈다. 친구사이로 지내자며 헤어진 그들은 성실하게 친구사이를 유지하고 있었다. 매기는 괜찮다고 했지만, 심지어 존은 매기보다 오히려 조젯을 더 세심하게 챙길 때가 많았다. 존에게 매기는 선인장이었다. 정성 들여 보살피지 않아도 잘 자라는 선인장. 매기는 존과 조젯이 다시 만나는 게 낫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상하게 이 결론을 내리기까지 매기는 담담하다. 존보다 자신을 더 사랑할 수 있다는 미래 때문일까?


매기는 자신의 계획을 조젯에게 제안한다. 처음엔 '뭐 이런 사람이 다 있어?'라며 "Leave, leave, leave!"를 외치던 조젯도 결국 매기의 계획에 동참한다. 이렇게 이상한 조합의 공범이 생긴다. '이게 말이 되는 일이야?'라며 어이가 없으면서도 위트 있게 그려져 실소가 나온다. 이 엄청난 계획은 서툴지만 착실히 진행된다. 조젯의 열연, 폭신폭신하게 내리는 퀘벡의 눈, 추운 날씨에 마시는 레드와인, 낯선 곳에서 만나는 익숙함이 성공을 코 앞에 두게 한다.


완전 범죄가 될 수 있었지만, 매기 친구의 술주정으로 인해 존이 모든 사실을 알게 된다. 감히 어떻게 나에게 그런 죄책감을 느끼게 하냐고 화를 내곤 집을 나간다. 전개과정이 조금 달라졌지만, 결과는 원래 계획과 비슷하다. 존이 매기 곁에서 사라졌다. 덕분에(?) 매기와 조젯은 더 깊은 유대관계를 얻는다. 매기는 담담하고 자연스럽게 늘 해왔던 생활을 지속한다. 이와 중에 조젯은 존과 다시 서로가 인연임을 확인한다.


유쾌하고 사랑스러운 막장

영화를 보기 전, 한 누리꾼의 한 줄 평을 봤다. 「하여튼 미국인들 쿨병은 알아줘야 해.」 과연 얼마나 할리우드 같은 내용이 펼쳐질지 기대됐다. 결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세련된 막장 아침드라마를 본 느낌이었다. '설마'가 현실로 이루어졌다. 하지만 불쾌하지 않았다. 시놉시스를 보고 "또 불륜이야?"를 외치게 했는데, 불륜이지만 미화가 없었다. 흔히 불륜 소재는 '남이 하면 불륜, 내가 하면 로맨스'로 그려진다. 하지만 <매기스 플랜>의 불륜은 '남이 해도 불륜, 내가 해도 불륜이다.' 전부인 조젯의 책 출판으로 존과 매기의 불륜을 만천하에 간접적으로 까발리고, 조젯이 매기를 향해 실제로 불륜을 논하기도 한다. 그런 상황에서 매기는 감정적이지 않다. 맞는 말이니까 수긍한다. 피해자인 척 하지 않는다.


보면 볼수록 매기가 안타까우면서 유부남과 바람 난 여자가 죗값을 치르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역시 남자를 잘 만나야 해. 아무리 그래도 유부남을 만난 건 잘못했어.' 그러다가 이런 생각이 들었다. '매기도 잘못하긴 했지만, 가장 나쁜 건 존이지. 전부인의 그늘에 스스로가 갇혀 들어가 힘겨워하고, 극복하려고도 안 하고 피하려고만 했잖아.' 타이밍 나쁘게 매기가 존 앞에 나타난 게 안타까웠다. 책임감 없이 피하려고 하는 존의 모습은 매기와의 결혼생활에서도 똑같이 나타났다. 사람은 변하는 게 아니라 점점 성장하는 것이라고 하던데, 존은 변화도 성장도 겪지 않았다. 그런 존에게 매기의 계획은 적절했다. 그 정도 취급을 받아도 될 사람이 아닌가! 이를 증명하듯 존은 열심히 낚여주었다. 이 막장 드라마가 이토록 유쾌하게 받아들여지는 이유는 각 요소에 수긍이 되기 때문이다. "그래. 그럴 만하다."라고 실소가 나온다.


매기는 비참하지 않다. 그녀의 태도는 당당하고 희망적이다. 영화의 시작부터 끝까지 한결같은 톤을 유지한다. 그녀는 자책하지 않고, 후회하지 않는다. 남 탓을 하며 비난하거나 자기합리화도 하지 않는다. 매기는 영화 속 그 누구보다 독립적이고 강인하다. 자존감이 아주 높아보인다. 이런 면이 이 영화를 더 유쾌하고 사랑스럽게 만든다. 매기, 존, 조젯의 기묘한 관계가 유지되고 발전될 수 있었던 건 매기의 높은 자존감때문이다. 자신에 대한 믿음과 사랑이 있기때문에 가능하다. 그렇기때문에 더욱 자신의 소중한 사람에게 아낌없이 줄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자기 자신이 풍족한 사람이기에.


그런 매기의 모습을 닮고 싶다. (물론 유부남을 만난 것은 동의 할 수 없다.) 나 자신을 충분히 믿고 사랑할 수 있기를, 내게 소중한 사람에게 진심을 담아 표현할 수 있기를, 비관적인 미래보다 희망을 꿈꾸기를! 고정관념의 틀에서 우울해하지 않기를!


+ 매기의 친구 토니가 했던 말도 떠오른다. 토니는 매기에게 말한다. "넌 너무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사랑을 하려고 해. 원래 사랑은 비윤리적이고 소모적인 거야." 사랑에 있어서 따지지 않고 자존심을 부리지 않고 싶다. 물론 이것 또한 나 자신을 얼마나 믿고 사랑하느냐에 따라 달렸다.


인상적인 장면

캐나다 퀘벡에서 조젯과 존이 눈이 가득 쌓인 산에서 일행을 놓친 장면. "도와주세요! 프랑스계 캐나다인들!"이라고 외치는 존과 그 뒤에서 "흐허어엉" 우는 조젯의 모습이 예술이다. 이 모두 조젯의 계략인 것 같지만, 웃긴 건 웃기다.

문제의 캐나다 퀘벡!


New York Romance

<매기스 플랜>의 배경은 뉴욕이다. <비긴 어게인>처럼 뉴욕의 모습이 낱낱이 나오진 않지만, 다른 영화에서 보지 못했던 뉴욕의 소소한 일상을 훔쳐볼 수 있다. 주요 장소는 맨해튼의 유니온 스퀘어(Union Square)의 그린 마켓, 뉴욕 그리니치 빌리지에 있는 워싱턴 스퀘어 파크(Washington Square Park), 퍼블릭 인게이트먼트학교(The New School for Public Engagement), 프로스펙트 파크(Prospect Park)이다.

Washington Square Park

 



Magg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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