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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하 Aug 29. 2023

이름은 징후(sign)이다.

박하처럼

로마의 격언 중에 'Nomen est Omen'이라는 말이 있다. 우리말로 번역하면 '이름은 징후(sign)이다', '이름이 모든 것을 말한다' 또는 '이름은 그 사람의 운명이다' 등으로 옮길 수 있다. 사람의 이름에는 그 사람의 삶과 운명을 예지 하는 징후가 있다는 것이다. 결국 이름대로 그 사람의 삶이 흘러간다는 뜻도 된다.




1-1.

이 글을 시작하기에 앞서, 2020년부터 2023년 오늘까지 내가 어떻게 변해왔는지를 말해야 할 것 같다.

왜냐하면 그 '변화'때문에 나는 이 글을 쓰기로 결심했고, 또 앞으로 모든 것에 대한 기록을 성실히 남겨두기로 결심했기 때문이다.




1-2.

'변화'를 짧게 요약하자면

(1) 나는 처음엔 회사원이었는데, 지금은 회사원이자 프리랜서이자 부대표다. 4년 동안 일을 엄청 많이 했다는 뜻이다.


(2) 일이라는 것은 신비롭다. 나는 일을 하면서 새로운 경험을 했다. 나의 바닥과 나의 한계, 나의 동기와 나의 꿈, 나의 과거와 나의 미래, 온전히 나를 알아가는 과정이었다. 나와 관련된 모든 것들을 재정의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3) 돈을 꽤 많이 벌었다. 돈을 많이 벌었다는 사족을 붙인 이유는, (이 주제에 대해서도 나중에 꼭 한번 써보겠다.) 등가교환의 법칙을 이야기하고 싶어서다. 돈을 벌기 위한 행위에 내 모든 시간과 관심을 쏟으면서, 나는 재미가 없는 사람, 말이 없는 사람이 되어갔다.

역설적으로 점점 더 가진 것이 없는 사람이 되었다.




2-1.

그래서  

(1) 언제까지고 바쁘다는 핑계로 글쓰기를 소홀히 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 왜냐하면 앞으로도 딱히 한가해질 것 같지 않다.


(2) 나의 변화를 기록하고 싶었다.

- 이제 일은 나고, 나는 일이다. 워커홀릭이 되었다든가 하는 건 아니다. (아무래도 나는 일하는 것보다는 노는 것을 더 좋아하고, 노는 것보다는 누워있는 것을 제일 좋아한다.)

다만 나는 '일' 속에서 나를 발견하는 법을 배웠고, 그래서 발견한 '나'를 바탕으로 다시 '내 인생'을 어떻게 꾸려갈 것인지 고민하게 되었다. '일'과 '나'와 '내 인생'은 이제 하나의 궤적을 그리면서 나아가게 되었다. 그리하여 이제까지의 나와 내 인생, 앞으로의 나와 내 인생에 대한 기록을 남기고 싶어졌다. 이런 기록들이 언젠가 다시 나의 '일'이 될 것을 꿈꾸면서


(3) 가진 것이 많은 사람이 되고 싶다.

- 한창 자본의 맛에 취해있을 때(?) 나는 사람들과 얘기하는 게 갑자기 어렵게 느껴졌다. 내 머릿속에는 내일 해야 할 일, 다음 주에 제출해야 할 작업물 들이 복잡하게 얽혀있었다. 저번주에 있었던 재밌는 일, 주말의 소소한 취미나 재미 들이 내 머릿속에는 없었다. 감정이나 감각, 자극을 최소화해야 퍼포먼스를 유지 혹은 개선할 수 있었다. 그렇게 주말이면 죽은 듯이 잠을 자야 하는 일주일, 그렇게 매일 새로울 것도 없는 삶


일이 아니면 주식이나 금리, 집값 같은 돈을 벌어들이는 행위들을 생각했다. 그다음에는 반클리프 아펠, 까르띠에, 샤넬 같이 벌어들인 돈을 빠르고 확실하게 써버리는 행위들을 생각했다.   

이대로 살다가는 나의 근본이 소진될 것임을 분명히 알았다.




2-2.

자신의 취미를 꾸준히 개발시키는 것, 그로 인해 독특한 취향의 세계를 구성해 나가는 것은 일반적인 상식으로는 당장에 실용적이라거나, 단기적으로 봤을 때 투자대비 아웃풋이 뛰어나다고 할 수 없다. 그래서 나는 지난 4년간 나를 다채롭게 만드는 경험들을 미루고 미뤘고, 나를 선명하고 독특하게 만드는 생각들을 거의 남기지 못했다.


나는 지난 4년 동안 정말 최선을 다해서 그 누구보다 열심히 살아왔다고 말할 수 있으며, 요만큼의 후회도 남지 않을 정도로 만족하지만


이대로 살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3.  

결론은 "아무리 바빠도 시간을 내서 맛있는 것을 먹고 마시고, 좋은 것을 보고 느낀 것은 글로 남기자."이다.

(이 매거진에는 주로 공간과 경험, 체험에 대한 감상평을 올릴 예정이다. 전통주나 위스키, 전시회, 뮤지컬, 다이닝 등이다.)


그렇게 취미와 취향에 새로운 접을 붙이고, 그리고 원래 알던 것은 더 깊게 사랑하자는 것이다.

사람이던 일이던 나를 힘들게 하는 것은 불규칙적으로 항상 있고, 그렇게 힘든 순간이 올 때마다

내가 느낀 것은 시간과 공을 들여 세운 내 세계의 어떤 부분은 좀처럼 흔들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울함과 자괴감으로 생긴 마음의 균열에 새살을 덧입히고, 어지러운 미열에는 해열작용을 한다는 것이다.


건강한 사람이 되는 것, 균열과 미열에도 튼튼한, 가진 것이 많은 사람이 되는 것은 그래서 꼭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나의 경험들을 촘촘하게 남기고 싶어졌다!




4.

다시 맨 앞의 문단으로 돌아가면 로마의 격언 'Nomen est Omen'은 '이름은 징후(sign)이다'라는 뜻이다.


그때

나의 이름 '박하'를 떠올렸던 것이다.




5.

나는 유난히 박하맛을 좋아한다. 이클립스나 호올스를 벌크로 사서 쟁여두고 핸드백에 한 개씩 넣고 다닌다. 입안이 텁텁하거나 뭔가 입이 심심할 때 한 개씩 먹으면 기분이 좋다. 너무 단맛은 좋아하지 않는 편인데, 쌉싸래한 박하와 단맛이 만나면 담백하면서도 깔끔해진다.

페퍼민트 티도 좋아한다. 티 종류는 원래 따듯하게 향을 즐기면서 먹어야 맛있지만, 페퍼민트 티는 우려내어 차갑게 먹어야 더 맛있다. 티로 마시면 마냥 화하지 않고 구수한 향과 맛이 남는다.

음식점 카운터에서 한 개씩 집어먹을 수 있는 삼각의 박하사탕은 또 그 나름의 맛이 있다. 처음 입에 넣으면 까끌거리는 질감이 재밌다가 입에서 돌돌 돌리다 보면 매끈해진다. 그리고 식감은 단단하지 않고 물러서 깨물면 으스러지는 것이 아니라, 포슬포슬하게 입에서 흩어진다.



'이름은 징후(sign)'라는 말에 의하면

아마도 나는, 그리고 이제부터 성실하게 쓰일 나의 글들은


심심할 때 읽으면 기분이 좋아지는, 너무 달지 않고 적당히 씁쓸하고 담백한

때로는 차갑지만 구수한

까칠하다가도 포슬포슬한



그런 것들이 되겠다.


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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