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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하 Sep 05. 2018

[전시] 내가 사랑한 미술관 : 근대의 걸작전

감성 촉촉 전시회



덕수궁에서 전시 중인 <내가 사랑한 미술관:근대의 걸작전>을 보고 왔다. 국립현대미술관이 개관한 이래로 수집한 근대미술 작품을 총망라하는 전시여서 다른 전시에서 봤던 작품들과 교과서에서 봤던 작품들, 유명한 작품들을 다시 볼 수 있어서 반가웠다! 그만큼 클래식한 볼거리가 풍부한 전시니까 다들 구경 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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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번 전시 동안만 뒷문을 개방한다고 하니 볕 좋고 날 좋을 때 가서 예쁜 사진을 찍으면 좋겠다 나는 혼자 가서 못 찍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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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적으로 너무 좋았던 전시인데 가장 좋았던 작품 딱 두 개만 꼽아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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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첫 번째 그림은 구본웅 작가의 <친구의 초상>이라는 그림. 덥수룩한 수염에 파이프를 물고 있는 그림의 남자는 바로 '이상'이다. 구본웅과 이상은 절친한 친구였는데 후천성 꼽추였던 구본웅과 180이 넘는 장신의 이상이 길을 걸어 다니는 장면은 늘 구경거리가 되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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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둡게 깔린 색감과 눌어붙은 듯한 터치. 눈과 입에 발린 짙은 빨강이 이상의 광적인 천재성과 한데 뒤얽힌 우울과 비극을 열렬히 말해주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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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알게 된 이상과 김환기에 대한 흥미로운 사실! 백억 대 작가로 유명한 김환기. 그런데 김환기의 아내인 김향안 여사는 김환기와 재혼하기 전에 이상과 결혼을 한번 했었다고 한다. 그리고 김향안으로 개명하기 전 본명은 사실 변동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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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동림은 구본웅의 계모의 이복동생이었는데(세상 복잡) 둘은 커피 마시고 문학을 논하다가 사랑에 빠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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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같이 죽을까?

우리 먼 데 갈까?

이것이 상의 사랑의 고백이었을 거다. 나는 먼 데 여행이 맘에 들었고, 죽는 것도 싫지 않았다.

나는 사랑의 본능보다 오만한 지성에 사로잡혔을 때라, 상을 따라가는 것이 흥미로웠을 뿐이다.

김향안/월하의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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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간 좀 로맨틱한 것 같다... 같이 죽자고...? 상대가 이상이라서 그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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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상은 27살에 결핵으로 결국 세상을 떠나고 김향안은 그로부터 7년 뒤 본부인이 있고 딸이 셋이 있는 김환기와 동거를 시작한다. 김환기는 얼마 후 부인과 이혼을 하고 변동림과 결혼하는데 변동림의 집에서 결사의 반대가 있어 그녀는 이름도 성도 버리고 김환기의 성을 따라 이름을 김향안으로 바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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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뮤즈라는 말을 안 좋아하는데 두 명의 불세출의 천재와 사랑했던 김향안이라는 사람의 인생과 그녀의 매력이 궁금해졌다. 수필집을 빌려 읽오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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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그림은

2. 김기창의 정청(quiet listening)이라는 그림이다. (신세계 정청 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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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의 두 여자는 김기창의 첫사랑과 그녀의 동생을 그린 것으로 알려져 있다. 첫사랑을 앉혀놓고 그녀를 그려내던 김기창은 얼마나 행복했을까 실제로 보면 그림의 디테일이 어마어마해서 테이블보의 레이스와 비단 한복의 결이 섬세하게 살아있다. 정말 한 땀 한 땀 사랑하는 마음으로 온 정성을 다해서 그렸다는 생각이 들어 절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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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첫사랑은 언제나 이루어지지 않는 법 결국 김기창의 첫사랑도 미완의 형태로 남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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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사실 정청에게는 청각장애가 있었다. 소리를 듣지 못하는 그에게 전축이란 자신의 장애를 절감하게 하는 상흔 그 자체였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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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쯤 되면 뒤편에 걸린 파도 그림에도 눈길이 간다. 산산이 부서져 흩어지는 파도의 허망함과 덧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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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룰 수 없는 사랑

들을 수 없는 전축

잡을 수 없는 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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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따듯하고 아늑한 색감, 섬세한 필치가 어우러져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잔잔하고 긴 여운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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