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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하 Nov 29. 2018

[전시] 안녕 엉망

18.11.25_일민미술관_<엉망>

지난 일요일, 일민미술관에서 열렸던 전시 <엉망>을 보고 왔다. 그날이 전시 마지막 날이었는데 전끝사들이 상당히 많았다.
전끝사는 '전시가 끝날 때만 추진력이 생기는 사람들'의 줄임말이다.




1. <엉망>은 대중문화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방대한 수집벽으로 유명한 작가 Sasa [44]의 개인전이다.



2. <엉망>은 작가가 20여 년 동안 편집증적으로 모은 물건들을 이용해 자신이 살아온 시대와 문화를 통찰력으로 엮어내는 아카이브에 기반한 전시다.



3. 김무성은 처녀자리다. 처녀자리는 감정표현이 서투르지만 정이 많다. 또 스케이터 김동성의 생일은 2월 9일이라서 이구동성으로 외우면 된다(...) 

2018년 혜성처럼 등장한 유행어 tmi는 too much information의 줄임말이다. 보통 "응~ tmi"의 용법으로 쓰이고 위에 나열된 정보가 tmi의 대표적인 예다.

그러니까 tmi란 이렇게 내가 왜 이런 것까지 알고 있지 싶은, '몰라도 되는', '알고 싶지 않은' 정보를 뜻한다. 단적으로 말하면 <엉망>은 본격 tmi 전시회이다. 우리는 생면부지의 작가가 2016년 11월 25일에 저녁으로 이품에서 삼선간짜장을 먹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것도 모자라서 작가가 지난 5년간 자장면을 341그릇 먹었고, 버카는 5년 동안 852번 사용했다는 사실까지
 
하하 참내


감나무집 진짜 엄청 많이 감
작가의 최애 맛집인 듯


처음엔 좀 당황했다. 이게 그 유명한


'일단 유명해져라 그럼 당신이 똥을 싸도 사람들이 박수를 쳐줄 것이다'인가?

(tmi : 그런데 실제로 앤디 워홀은 이런 말을 한 적이 없다고 한다.)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일단 2층으로 가서 전시를 계속 본다. 2층에는 작가가 10년간 소비한 4024개의 음료가 신명 나는 국힙과 함께 전시되어 있다.

(tmi :  e sens의 꽐라와 사이먼 도미닉의 밤을 걷는 소리꾼이 나올 때 어깨춤을 추고 싶었던 것을 참느라 혼났다. 작가의 국힙 짬바를 느낄 수 있었다.)

이 지점에서야 나는 작가의 전시의도를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극단적일 만큼 광적인 편집증이 낳은 10년 치 술, 물, 우유, 주스병은 그냥 그 자체로 절경이고 장관이었다. 



(... 이거... 갖고 싶어...)



4. 현대의 기업들은 우리를 소비자라 부릅니다. 구글 같은 기업은 우리를 빅데이터의 한 점으로 봅니다. 정당은 우리를 유권자로 여깁니다. 우리의 개성은 몰각되고 행위만이 의미 있습니다.


우리가 더 이상 물건을 사지 않고, 인터넷에 접속하지도 않으며, 투표에도 참여하지 않는다면 그들에게 있어 우리는 존재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가 됩니다.


                                    -김영하의 <읽다> 중



김영하는 현대사회의 주요한 특징으로 익명화된 개인의 몰개성화를 짚어냈다. 그에 의하면 우리는 이 사회에서 '실재'한다고 보기 어렵다. 그러나 우리는 물건도 사고 인터넷에도 접속하며 투표도 하므로 부재한다고 보기도 어렵다. 이렇게 우리는 부재와 실재, 어드메에서 떠돌면자신존재시키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다.


작가 sasa는 바로 이 점을 가장 효과적으로 폭로하기 위한 수단으로써 '카드 명세서'와 '통화기록', '구글 로드뷰'등을 사용한다. 디지털 시그널과 거대 자본에 의해 지워진 나의 실재를 증명하기 위해 오히려 극단적으로 디지털을 이용하는 아이러니함에서 오는 짜릿함이란


우연히 찍힌 나



5. 3층에서는 작가의 남다른 여행기록을 구경할 수 있다. 그는 여행지에서 사부작사부작 주 워모는 너저분하고 하찮은 물건들을 주렁주렁 모아놓고 그것들에 대해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늘어놓거나(뉴욕), 자신이 이동한 루트를 거리뷰로 찍고 이동 동선을 마크해놓은 거대 지도를 펼쳐놓거나(도쿄), 한국 곳곳에 존재하는 가지각색의 코펜하겐을 찾아서 사진을 찍고 기록하는 등으로(코펜하겐) 자신만의 방식으로 여행지를 재구성하고 추억을 독특하게 구조화시켜낸다.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각 도시에 대한'여행 지시문'이었는데, 내가 아닌 누군가의 시선과 생각으로 낯선 공간을 탐험할 수 있다는 것이 이질적이고 신선하게 느껴졌다.

 

작가의 지시문에 따라 서울여행을 다녀온
관람객들의 참여의 흔적

작가가 코펜하겐 여행을 다녀온 뒤 한국에 있는 온갖 코펜하겐이란 코펜하겐은 다 다녀와서 찍은 사진들 너무 귀여웠다.

여기는 "코펜하겐 호프"


보스턴 여행의 지시문





6.

전시에서는 오랫동안 못 봤던 반가운 얼굴도 만났다. 그리고 전시 종료 50분을 남기고 굿즈 판매대로 내려왔는데 , 그들이 나누는 대화로 미루어보아 아마도 Sasa [44] 작가로 추정되는 사람이 다른 지인들과 있었다. 지인들은 이번 전시는 근 10년간 최고의 전시였다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고 44 작가는 그녀들에게 비매품이라면서 국힙 100이라고 쓰인 테이프 하나씩을 건넸다. 부러웠다.

카페로 와서 작가 사진을 찾아봤는데 진짜 작가였다ㅋㅋㅋㅋ 늑장을 부린 덕에 진짜 작가도 보고 이래저래 재밌는 경험을 했다.

참 영특하고 독특한, 재밌는 전시였다.




3달간의 출퇴근길에

엉망... 엉망은 내가 제일 엉망이지...

를 읊조리게 만들었던 정다운 '엉망'현수막이 내려지게 된다니 아쉽다.


안녕

엉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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