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맥가 Nov 18. 2020

좋은 개발을 위한 제3의 눈.

통찰력에 대한 이야기

보이는 대로 믿는 것과 믿는 대로 보는 것에는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단순해 보이는 제품. 그 속은 뭔가 다양하고 복잡한 설계가 들어가 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마냥 착해 보이는 겉모습을 지닌 자. 생각과는 달리 잔인하고 괴팍한 인격을 지닌 자일 수도 있습니다. 실제로 우리는 그러한 사례들을 직간접적으로 경험하며 살아왔죠. 아예 없는 게 아닙니다.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우주의 존재를 믿고 있다면 사랑이란 감정 또한 같은 논리로 증명할 수 있다 (영화 - 뷰티풀 마인드)


실무의 나이테가 늘어나며 생각은 점점 두꺼워지고 단단해집니다. 디자인을 하고 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단순 눈에 보이는 것에만 집착하지 않습니다. 어떠한 신념 같은 게 생겨나고 그러한 신념은 점점 강해집니다. 디자인을 너머 개발 프로젝트 전체를 봐요. 나무가 아닌 숲을 바라보듯 말이죠.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들. 그것이 꽤나 큰 가치를 지니고 있다.'


이 생각을 개발 필드에 담게 되면,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한 단어로 정의됩니다. 바로 '통찰력(insight)'입니다. 꽤 많은 작업자들이 '통찰'에 대한 필요성을 망각하고 살아갑니다. 중요함을 알고 있으며, 서로가 서로에게 통찰력 있는 작업자가 되기를 바라고 있지만 정작 본인은 그것과는 점점 거리를 두죠. 이를 증명하기 위해 자주 가는 디자인 카페를 통해 간단한 실험을 진행했습니다. 먼저 아래 기획서를 살펴봅니다.



실험을 위해 두장의 화면 기획서를 준비했습니다. 그리곤 아래와 같이 적었습니다.


"다음 화면 기획서에 대한 시안 작업 시간을 산출해주세요."


조건이 너무 광범위하다는 피드백을 받고, 다음과 같이 전제조건을 추가했습니다.


- 모바일 웹, PC웹에 공용으로 사용할 목적이며 로그인과 회원가입에 대한 기획서는 두장뿐입니다.

- 디자인 퀄리티는 중요하지 않으며, 최대한 빠르게 작업하는걸 최우선 목표로 합니다.


투표를 진행했고 결과는 아래 이미지처럼 나왔습니다.

 


압도적으로 '1일'에 많은 표가 몰렸습니다. 치열한 실무판을 겪으며 일정에 대한 일종의 강박 같은 게 만들어낸 결과일 거라 생각됩니다. 디자인을 하는 자기 자신에게 관대한 일정을 주지 못합니다. 여유가 없죠. 자연스레 뭔가를 자세히 살필 의지 또한 사라집니다. 또한 최우선 목표를 속도에 두었으니 단순하게 공수적인 측면만 따져 일정을 산출했겠죠. 더군다나 로그인, 회원가입 페이지는 거의 정형화되어 매 작업마다 큰 고민을 할 필요가 없었을 겁니다.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라 생각할 수도 있으며, 우리에겐 합리적이며 타당한 여러 이유가 존재합니다.


결론부터 말하죠. 저는 10일 이상에 투표했습니다. 저 이외에 한 명. 어쩌면 그가 제가 위에 언급한 '통찰력'을 지닌 자 일 수 있습니다. 자 그럼 왜 10일 이상이 걸리는지 기획문서를 찬찬히 살펴볼까요? 해당 문서는 현 실무에서 전달받았던 문서이며 몇 가지를 일부러 누락시켜 '함정'을 설치해두었습니다. 사용자 플로우, 로직상 문제를 지니고 있습니다.


*예제에 활용할 목적의 문서이므로 일부를 누락시켜 오류로 만든 부분이 존재합니다.


기획 문서상 문제점


먼저 기획서가 누락된 부분이 보입니다. 기획자에게 전달하기 위해 내용을 정리합니다.

- 아이디/비밀번호 찾기 버튼이 있으나 해당 화면 기획서 누락.

- 약관 동의 부분. 이용약관과 개인정보처리방침에 대한 약관 기획서 누락. 추가 전달 요망.


위 내용에 대한 기획서 또는 문서 추가가 필요해 보입니다. 이제 각 문서의 디스크립션을 읽으며 문제를 찾아봅니다. 치명적인 문제를 갖고 있는 부분 외 사용자 측면, 편리성이나 사용성을 올릴 수 있는 요소 또한 찾아봅니다.


- 회원가입 쪽 기획서를 살펴보니 아이디가 25자까지 가능하다 적혀있다. 아이디 인풋에 클리어 버튼을 두는 것도 좋아 보인다. 더불어 가려진 비밀번호를 볼 수 있도록 기능을 두는 것 또한 건의한다.


desc. 2

- 아이디/비밀번호 불일치 시 경고창을 띄우게 되어있다. 아이디, 비밀번호가 각각 틀렸을 경우를 분리해 경고창을 따로 띄워주는 게 바람직해 보인다. 지금 상태라면 사용자는 아이디가 틀린 건지, 비밀번호가 틀린 건지 알기 힘들다.


- '로그인 시 이전 페이지로 이동'이라 적혀있다. 만약 사용자가 어느 페이지에서건 로그인 창에 접근할 수 있다면, 그리하여 로그인 창을 레이어 형태로 출력시킨다면 '닫기'버튼이 필요해 보인다. 해당 서비스가 하이브리드 앱 형태로 출시된다면 해당 페이지 내 상단바가 존재하지 않아 iOS 사용자는 뒤로 가기를 할 때 불편한 상황을 겪을 수 있다.


- 개발자와 쿠키(아이디 저장)에 대한 저장 기간에 대해 논의된 바 있는가? 개발자용 기획서가 따로 전달되는 게 아니라면 이 또한 디스크립션에 포함되는 게 맞다 본다. 개인정보처리방침에도 이를 명시해 두는 게 좋다.


desc. 3

- 아이디/비밀번호 찾기 페이지에 대한 기획서 누락.

- 모바일 320 기준, 기획서대로 UI를 구성했을 때 글자 수 및 버튼 요소가 많아 한 줄에 모두 구성하기엔 영역이 좁을 것이 우려된다.


desc. 5

- SNS 간편 로그인 기능이 설계되어있다. 위에 문의한 바, 애플 앱스토어에 출시할 가능성이 있다면 '애플로 로그인'을 추가해야 한다 생각한다. 애플이 그것을 정책상 강제하고 있는 걸로 알고 있다.


desc. 7

- 간편 로그인 시에는 사용자를 메인화면으로 이동시키는가? 일반적인 로그인 시에는 이전 페이지로 이동시킨다 적혀있다. 사용자 플로우를 통일해라. 예컨대 서비스를 이용하며 특정 페이지에 내가 원하는 정보가 있고, 이에 대한 기능을 더 활용하기 위해 사용자가 로그인을 시도했다면, 로그인 이전 페이지로 이동시키는 게 바람직하다.



desc. 1

- 유효성 체크란에 사용자가 값을 입력하지 않은 Null상태일 때의 문구가 정의되어 있지 않다. '아이디를 입력하세요'등의 문구를 기획서에 명시해라. 또한 4~25자의 영문 소문자라 적혀있는데 숫자나 특수문자가 포함 가능한 것인가? 특히나 숫자는 영문과 함께 아이디를 생성하는 데 있어 좋은 조합이다.


desc. 2

- 일부 특수문자만 가능하다 적혀있다. 정확하게 정의해줘라. 일부 특수문자는 무엇을 말하는 건가?


desc. 4

- 닉네임. 일반 회원가입은 위 문서처럼 진행한다 치더라도, 간편 회원가입 시 닉네임은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SNS로 가입 프로세스 중간. 닉네임만 따로 입력받는 구간이 필요해 보인다.


구글 AD

- 회원가입 페이지 내 외부 광고를 노출하는 걸 본 적이 없다. 몇 달러의 광고 수익이 1명의 회원보다 가치 있는가? 제외할 것을 건의한다.


desc. 5

- 약관 동의에 대한 페이지 누락은 위에 언급했다. 추가 바란다.

- 만 14세 이상이 필수 체크 값으로 잡혀있다. 유니크한 인증수단(이메일, 전화번호)이 기능에서 누락되어 있는데 사용자가 14세 이상임을 어떻게 체크할 것인가? 인증수단이 누락됨에 따라 비밀번호 찾기 기능 또한 무용지물이 되었다.


결론


위와 같은 검토 결과로 인해, 개인적으로는 '작업 불가' 판단을 내렸습니다. 기획서 재검토를 요청하며 되돌려 보냈고 그에 따라 일정 산출 역시 진행되지 않게 됩니다. 상상해봅니다. 아무 생각 없이 단순 디자인만 따져 작업을 진행했고 프런트 개발자에게 시안을 전달했다면, 위의 업무. 결국 돌아오지 않았을까요? 게다가 위 공정 중 SNS 로그인은 어느 정도 기능이 개발되고 나서 네이버나 카카오 측에 캡처이미지와 문서를 넘겨 승인을 받는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보통 7일 정도 소요됩니다. 그리고 나서야 해당 업무가 종료되었다 말할 수 있지요.


"이 정도쯤이야"라며 단순하게 접근하고 진행했다가 다음 업무에 차질이 생겨 여러 사람이 곤란한 상황에 처하게 되지 않았을까요? 통찰력. 물론 경험에 비례하게 늘어납니다. 허나 경험보다 개인의 의지로부터 생겨나는 경우가 더 많다 생각됩니다. 보려 하면 보입니다. 뭔가를 자주 사용하면 내가 그것을 만드는 메이커가 아니라도 개선되어야 할 부분과 불편한 부분을 알게 됩니다. 각 포지션 작업자가 각자의 시간을 들여 문제를 찾아 나간다면 보다 좋은 제품을 만들 수 있습니다. 오류나 실수를 줄여 보다 정확한 일정 내에서 프로젝트를 완수할 수 있습니다.


누군가에게 묻습니다.

"동전을 던져 나올 수는 있는 경우의 수는 몇 가지 일까?" 보통의 사람이라면 '앞' 또는 '뒤'라는 답을 내놓습니다. 허나 우리는 조금 달라야 한다 생각합니다. 동전이 수직으로 서는 경우, 너무 높이 던져 그 결과를 아는데 많은 시간이 걸릴 경우. 어디엔가 잘못 떨어져 결과 조차 확인하기 힘든 경우 등을 말이죠.


때론 몇 명이 뭉쳐 생겨난 통찰력과 집단 지성이 수백, 수천 명의 사용자 경험을 예측하거나 그에 맞먹는 피드백을 주는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시간에 쫓기고 하루하루 빠듯하게 업무를 보내고 계시는 거 알고 있습니다. 저도 그렇게 지내왔고 단순히 빠르고 이쁘게 디자인하는데 많은 공을 들였습니다. 지나고 보니, 그리고 이제야 방법을 달리하고 보니 서로가 덜 스트레스받고, 더 좋은 결과가 나오는 듯해서요. 글을 읽는 지금, 한번 고민해주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읽어주셔서 고마워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