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5화. 역설의 공간

사과라는 문장, 그 너머의 진실

by 자신을사랑하기

제35화. 역설의 공간: 가해자를 반기는 예산, 피해자를 외면하는 빈방

학교폭력 행정의 이면을 들여다보면 기묘한 숫자의 역설을 마주하게 됩니다. 시스템은 가해자를 '교정'하고 '수용'하는 데는 막대한 예산과 인력을 쏟아붓지만, 정작 피해자의 찢겨진 일상을 '복구'하는 데는 상대적으로 인색하거나 무관심합니다. 행정의 종착역이라 불리는 '강제전학(8호)' 처분이 내려질 때, 교육 현장에는 이 비대칭적인 정의의 민낯이 가장 노골적으로 드러납니다.


01. 가해 수용교를 향한 '무마'의 예산

가해 학생이 강제전학을 가게 되면, 그를 받아주는 학교는 예기치 못한 폭탄을 떠안은 듯한 긴장에 휩싸입니다. 행정은 이 거부감과 부담을 잠재우기 위해 일종의 **'무마용 인센티브'**를 제공합니다. 가해 학생의 지도 비용이라는 명목으로 내려오는 **'학생지도 지원비'**는, 사실상 기피 대상인 학생을 받아준 학교의 불만을 다독이고 행정적 마찰을 줄이기 위한 보상금에 가깝습니다.

가해 학생이 교육의 끈을 놓지 않도록 관리하는 것은 국가의 책무입니다. 하지만 이 '당연한 책무'를 수행하기 위해 학교를 돈으로 설득하고 무마하는 사이, 우리는 묻게 됩니다. 왜 피해 학생의 상처를 어루만지는 데는 그토록 인색합니까? 가해자는 국가의 안내와 예산 지원 속에서 '선생님과 친구가 있는 새로운 공간'으로 연착륙을 시도하는데, 피해 학생은 그 어떤 전용 시설의 안내도 받지 못한 채 거실 구석으로 유배됩니다.


02. 출석은 '인정'되지만, '공간'은 박제된 현실

행정 시스템은 피해 학생에게 '결석해도 불이익을 주지 않겠다'는 시혜적인 태도를 보입니다. 하지만 부모님들이 절망하는 지점은 '출석 일수'라는 서류상의 숫자가 아닙니다.

"출석은 인정해 준다는데, 그럼 우리 아이는 하루 종일 집에서 혼자 무엇을 해야 하나요? 가해 학생은 전용 시설에서 선생님의 지도를 받으며 새로운 관계를 맺는데, 왜 피해자인 우리 아이는 컴퓨터 앞에 혼자 앉아 병원 천장만 보고 있어야 합니까?"

행정은 '출석'이라는 결과는 보장해 주지만, 그 시간을 채워야 할 **'사회적 공간'**은 보장해주지 못합니다. 가해자는 국가가 마련한 촘촘한 대안 교육 시설(Wee센터, 위탁 기관 등)로 안내받으며 사회적 관계를 이어가지만, 피해 학생 전용 치유 학교나 시설은 전국을 뒤져도 손에 꼽을 정도입니다. 종이 위에서는 '출석 중'인 아이가 실제로는 사회적으로 '실종'된 상태. 이 기만적인 공백이 바로 우리가 마주한 행정의 비정함입니다.


03. 공간의 비정함: 가해자의 '선도실'과 피해자의 '복도'

공간은 메시지를 던집니다. 가해자를 위한 전문적인 교육 공간이 잘 갖춰져 있을수록, 그곳에 초대받지 못한 피해 학생은 소외감을 느낍니다. 예산이 투입된 세련된 가해자 프로그램실 건너편에, 낡고 차가운 대기실에서 떨고 있는 피해 학생의 모습은 우리 시스템이 가진 '정의의 민낯'을 보여줍니다.

피해자를 위한 전용 치유 공간과 프로그램에 더 과감한 예산이 투입되어야 하는 이유는, 공간의 품격이 곧 피해 학생이 느끼는 **'존엄의 회복'**과 직결되기 때문입니다. 부모가 증명서를 떼러 다니지 않아도, 신고 즉시 전문 치유 팀이 아이의 손을 맞잡아주는 시스템. 가해자를 위한 교육 기관보다 더 따뜻하고 품격 있는 피해자 전용 회복 센터가 마을 곳곳에 자리 잡는 것만이 이 역설을 끝낼 수 있는 유일한 길입니다.


04. '보호'의 정의를 다시 쓰다: 공간의 약속을 향하여

진정한 행정적 정의는 가해자의 격리나 수용교를 향한 금전적 보상에서 완성되는 것이 아닙니다. 피해자가 가해자보다 더 '좋은 공간'에서 '더 많은 지원'을 받으며 회복할 때 비로소 완성됩니다. "네 출석은 인정되니 안심해라"라는 행정적 회피보다, **"네가 학교에 오지 못하는 동안에도 국가가 마련한 이 따뜻한 치유 학교가 너를 기다리고 있단다"**라는 실질적인 공간의 약속이 필요합니다.

피해자의 배움과 관계가 멈추지 않도록 예산과 공간의 비대칭을 허무는 것, 그것이 우리가 잃어버린 '보호'의 진짜 의미입니다. 가해자를 반기는 풍성한 예산 뒤에 피해자를 외면하는 빈방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기를 소망합니다. 모든 행정의 출발점은 상처 입은 아이의 '빈자리'를 채우는 온기여야 하기 때문입니다.


[나를 향한 물음]

우리는 지금 가해자를 '수용'하기 위해 쓰는 예산만큼, 피해자가 '숨 쉴 공간'을 마련하는 데 마음을 쓰고 있나요?

행정적 편의를 위해 피해 학생에게 '출석 인정'이라는 서류상의 권리만을 던져주고 있지는 않나요?

우리 사회가 마련한 '보호'라는 방패가, 정작 피해 학생에게는 거실 구석이라는 '유배지'가 되고 있지는 않나요?

본 도서는 작가의 개인적인 경험과 성찰을 바탕으로 작성되었으며, 전문적인 법률적 조언이나 심리 치료를 대체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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