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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렌지푸딩 Sep 30. 2015

당신을 보내며

 그녀의 삶 이후 남은 물건은 포대자루 하나를 채우지 못하였다. 너저분하고 촌스러운 옷가지와 산 지 몇 년이 지나 바를 수 없는 화장품, 낡은 서랍장에 묵혀두었던 몇 개의 물건을 모두 넣었는데도 그녀가 남긴 것은 그것뿐이었다. 포대자루를 보는 나의 입으로 한숨이 터져 나왔다. 그것은 그녀의 초라한 삶을 한 눈에 보여 주는 것 같았다. 비좁은 방 안을 몇 번이나 둘러보며 더 버릴 것이 없는지 찾으려 하는 나의 눈에 방바닥 구석에 누워 있는 비가 들어왔다. 손을 뻗어 나는 그것을 집었다.


 낡고 더러운 비는 오랜 세월 학대당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나무로 만들어진 빗자루는  코팅되어 있는 부분이 드문드문 벗겨져 마치 검버섯이 핀 그녀의 피부를 닮았고, 빗자루에 박힌 솔은 그녀의 푸석하고 숱 없는 머릿결처럼 보잘것없었다. 그것은 얼마나 방바닥을 쓸고 다녔는지 시커먼 먼지가 잔뜩 붙은 채, 솔이 가지런한 새 비와는 다르게 자루를 기준으로 오른쪽으로 뻗쳐 있었다. 비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할 듯해 그것을 포대자루에 휙 던져 넣었다.


 그녀는 삶의 무게가 자신을 짓누른다고 느껴져 버거워질 때면 저 비를 손에 들었던 것 같다. 방 한 가운데에 앉아 움직이지도 않고 비로 바닥을 쓸었다. 무릇 청소를 하려 했다면 방 안 구석구석을 돌아다녔어야 했는데 그녀는 그러지 않았다. 그저 좌절한 듯 바닥에 풀썩 앉아서 비에만 시선을 고정시킨 채 그렇게 비질을 해댔다. 학교에서 돌아와 그런 그녀를 볼 때면 뱃속에서 뜨거운 분노가 끓었다. 그래서 인사도 안 하고 방 문 앞에 서서 그녀를 바라보고 있으면 그녀는 한참 뒤에나 빨개진 눈으로 나를 슬프게 올려다보고는 했다, “이제 왔니”하며. 그러면 나는 그제야 그녀를 노려보며 말없이 방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녀의 삶은 언제 한 번이라도 행복한 적이 있었던가. 언제였다고 집어낼 시점이 단 한 번도 없다. 당연히 그녀의 불행 아래에서 나 또한 행복할 수 없었다. 나의 행복이 그녀의 불행 때문에 고개를 들지 못하는 것 같아 매일 밤 그녀를 원망했다.


 비를 던져 놓고 보니 포대자루에 담긴 그녀의 삶이 오롯이 들어가 있는 기분이었다. 입구를 조이고 포대자루를 들어서 바깥으로 옮기려고 물끄러미 바라보는 순간 두려움이 밀려왔다. 포대자루에 든 엄마의 시신이 갑자기 팔다리를 격렬하게 움직이며 꺼내 달라고 소리를 지르면 어쩌나 싶었다. 실신한 사람의 머리채를 쥐듯 포대자루의 입구를 조인 끈을 손에 쥐었다. 한 포대가 채워지지 않을 정도로 그녀의 삶은 야위었지만 내 손이 느끼는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았다.


 마당에 있는 작은 화단 앞에 포대자루를 아무렇게나 던졌다. 새 비를 사야 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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