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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니따 Aug 09. 2016

말 잘 들으면, 엄마 만날 수 있는 거죠?

일곱 번째 영화 <아저씨>


옆집에 누가 사는지 모르는 세상, 이웃사촌이라는 말은 이제 옛말이 됐습니다. 아이들은 어린이 집과 학교, 학원에, 어른들은 직장에 가고 각종 모임에 참석하다 보면 이웃은커녕 가족조차도 얼굴보기 힘든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인지 이제는 이웃에 누가 죽어도 시체 썩는 냄새가 나지 않는 이상 알기 힘듭니다. 옆집 사람이 죽어도 모를 만큼 서로에 대해 무관심해져 버린 세상에서, 옆집 소녀를 구하기 위해 목숨을 건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영화<아저씨>의 주인공 차태식입니다.

 





내 이웃을 소개합니다


“아저씨 별명이 뭔 줄 알아요? 전당포 귀신이요. 내 별명은 뭐게요? 쓰레기통이요. 이모가 그러는데 엄마가 나 임신했을 때 쓰레기통을 뻥 차서 발가락이 부러졌대요. 그 때부터 계속 쓰레기 통.... 웃기죠?”


사고로 아내와 뱃속의 아이를 잃은 뒤, 혼자 전당포를 운영하는 차태식이 유일하게 대화를 나누는 사람, 옆집 소녀 소미입니다. 술집에 다니며 마약에 찌든 엄마와 단 둘이 사는 소미는 언제나 사람들의 오해를 받습니다. 가방을 만졌을 뿐인데 훔쳤다는 소리를 들은 소미는 태식에게 도움의 눈길을 보내지만, 태식은 모르는 척 그냥 지나칩니다.

 

거지라고 놀린 뚱땡이 새끼보다 아저씨가 더 나빠요.... 그래도 안 미워요. 아저씨까지 미워하면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한 개도 없어....

 

이런 아저씨가 미울 만도 하지만 소미는 태식을 용서합니다. 태식마저 없으면 기댈 곳이 하나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미안하다는 말을 하지도 못했는데 소미가 사라지는 일이 벌어집니다. 소미의 엄마가 마약을 빼돌렸다는 이유로 소미를 납치한 것입니다.



건드리지 말았어야 했다

 


니들은 내일만 보고 살지? 내일만 사는 놈은.... 오늘만 사는 놈한테 죽는다. 난 오늘만 산다. 그게 얼마나 지랄 맞은 건지 내가 보여줄게....

 

옆집 아저씨 태식은 소미의 엄마와 소미를 구하기 위해 범죄 조직과 거래를 시작합니다. 물건만 전달해 주면 소미를 만나게 해주겠다던 범인, 하지만 돌아온 것은 소미 엄마의 주검뿐이었습니다. 전직 특수요원이었던 태식은 인맥을 동원해 납치된 아이들이 있다는 개미굴을 찾아갑니다. 그리고 거기서 차마 눈뜨고 보지 못할 광경을 목격합니다. 개미굴에 팔려간 아이들은 마약을 만들고, 운반하는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거기에 더해 쓸모 없어진 아이들은 수술대 위에서 장기를 적출 당하며 생을 마감했습니다. 이에 분노한 태식은 말합니다.


 

소미를 찾아도 너희 둘은 죽는다


 

결국, 이 말은 현실이 됩니다. 옆집 아저씨 태식은 범죄 조직을 소탕하고, 소미를 개미굴에서 구출하니까요.

 

 

아저씨를 기다리는 수많은 소미들

 

영화 속 소미는 옆집 아저씨 덕분에 기적적으로 개미굴에서 탈출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이웃을 가지고 있지 않는 현실 속 수많은 아이들은 지옥 같은 삶을 살고 있습니다.

 

베트남 소년 히엔은 낯선 사람의 손에 이끌려 10살 때 영국에 건너왔습니다. 히엔은 고아였기 때문에 삼촌이라고 주장하는 이 남자를 따라갈 수 밖에 없었습니다. 영국에 도착한 히엔이 알 수 있었던 사실은 이 곳이 어딘지 모르지만, 자신이 여기에서 일을 하게 될 거라는 것뿐이었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영국 생활, 청소며 설거지며 시키는 일은 다했지만, 결국 삼촌이라는 사람은 히엔을 버렸습니다. 한 순간에 영국에서 노숙자가 된 히엔에게 또 다른 사람들이 접근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히엔을 대마초 농장에 넘겼습니다.


 

농장에서 히엔은 대마초를 길렀습니다. 안전 장비도 없이 살충제를 뿌리고, 대마초 잎을 말릴 때를 제외하고는 농장 밖을 나가지도 못했습니다. 끊임없는 협박과 폭행으로 도망은 꿈도 꿀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세상과 격리된 채 농장에서 노예와 같은 삶을 살았습니다.


제가 기르는 게 정확히 어떤 작물인지는 몰랐지만, 돈이 된다는 것만은 알 수 있었어요. 일한 대가로 돈을 받은 적은 없어요. 그곳에 있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도 돈이 아니라 두려움 때문이었어요.

 

더 충격적인 사실은 히엔의 이야기가 특별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히엔은 영국에서 노예와 같은 생활을 하는 3,000명의 베트남 아이들 중 한 명일뿐입니다. 인신매매로 영국에 들어오는 사람은 한 해에 1만 3천 명 정도 추정되는데, 이 중에 1/4가량이 아이들입니다. 그리고 많은 수의 아이들이 베트남에서 들어옵니다. 유엔 마약 범죄 사무소에서는 매달 30명의 베트남 아이들이 불법적으로 영국에 온다고 추정하고 있습니다.


 

아이들은 범죄 조직에게 매우 중요한 자원입니다. 아이들은 몇 번 겁을 주면 쉽게 붙잡을 수 있을뿐더러 격리시키기도 쉽습니다. 자신에게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도 잘 모르죠. 그래서 자신들이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경찰에 신고할 확률도 낮습니다

 

더 큰 문제는 아이들이 영국으로 오는 과정에서 엄청난 빚을 떠안는 다는 것입니다. 인신매매 범들은 영국까지 오는 비용을 아이들에게 지웁니다. 어떤 아이들의 경우, 영국에 도착하자마자 우리 돈으로 3,600만원에 달하는 빚을 지게 됩니다. 그리고 아이들은 빚을 다 갚을 때까지 노예처럼 노동력을 착취당하며 일을 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상황은 어떨까요?

 

유엔에서 정한 기준으로 보면, 우리나라는 마약 생산이나 유통이 쉽지 않은 마약청정국에 속합니다. 마약청정국의 기준은 인구 10만 명당 마약 사범이 20명 미만인 경우로, 우리는 1만 2천 명 이상의 마약 사범이 적발 된다면 이 지위를 잃게 됩니다.

 

하지만, 더 이상 안심할 수 없습니다. 2015년 적발된 마약 사범은 총 1만 1,916명으로 마약청정국 지위가 위협당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일 년 사이 19.4%나 증가한 수치이기 때문에 더욱 심각한 상황입니다.


 

올해, 중국동포 17살과 19살 소년이 신발 밑창과 속옷에 필로폰을 숨겨 국내에 들여와 붙잡힌 사건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마약을 몸에 지니고 있었기 때문에 뒤뚱뒤뚱 거리는 걸음새가 이상하기는 했지만, 미성년자라는 이유로 공항 검색대를 무사히 빠져나올 수 있었습니다. 이들의 사연이 알려지게 된 건 누군가 경찰에 알렸기 때문이었습니다.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마약은 버젓이 국내를 돌아다니고 있었을 것입니다.

 

이렇게 국내로 들여온 마약은 누구에게 가는 것일까요? 대검찰청 강력부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14년 적발된 마약 사범 중 100명 이상이 19세 미만의 청소년 이었다고 합니다. 전체 비율로 따지면 약 5%에 달하는 수치입니다. 2010년 35명에 비하면 3배 이상 증가한 셈입니다.

 

마약 운반과 밀매에 청소년이 많이 가담하게 이유로 SNS가 지목되고 있습니다. 마약운반책 모집과 마약 판매 광고가 SNS에 버젓이 나돌면서, 청소년들의 호기심이 증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모른 척 해서 미안해”

 

태식이 마지막에 소미에게 한 말입니다. 가방을 훔쳤다는 오해를 받았을 때, 소미를 도와주지 못한 것에 대한 사과를 이제야 한 것입니다. 꿈을 빼앗긴 채 일터로 향하는 아이들 1억 6,800만 명, 그 중에 절반이 마약 밀매나 성매매, 소년병, 채무를 담보로 강제로 일을 하는 가혹한 형태의 아동노동을 하고 있습니다. 이 아이들이 자신의 삶을 살 수 있도록 우리도 이제는 좋은 이웃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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